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여가활동으로 행복을 되찾자

우재룡의 한국형 은퇴준비

은퇴를 맞이한 중년들에게 가장 준비가 덜 되어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노후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러 연구기관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은퇴자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여가활동과 자원봉사다.
우재룡 한국형 은퇴설계연구소 소장


베이비부머 중 여 가활동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 중년층은 고도 성장기 산업화의 핵심으로 활동해왔기 때문에 쉬는 것을 죄악 시 하거나 미안해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대부분 등산, 골프, 여행을 여가활동으로 꼽고 있지만 제대로 된 여가계획을 수립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은퇴 후 수십 년간 상당한 재미를 제공하는 사회봉사 같은 수준 높은 여가활동에 대한 개념은 아직 국내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선 여가활동(entertainment)과 자원봉사(volunteer)를 합쳐 볼런테인먼트(voluntainment)라는 신조어를 만들 정도로 의미 있는 여가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다. 가벼운 소일거리에 치우친 우리의 은퇴 후 여가활동을 외국처럼 좀더 의미 있는 진지한 활동으로 한 단계 높일 필요가 있다.

문화관광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국의 50~60대들은 매일 4~5시간의 여가를 즐기며 그 비용으로 한 달 평균 13만~19만 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활동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소요되는 비용이 크지 않은 셈이다.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이 베이비부머의 대표 격인 50대들의 여가활동을 조사해보니, 그들은 종교모임, 스포츠와 야외활동, 문화활동 순으로 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들의 여가활동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TV시청이나 등산 같은 가벼운 휴식활동을 가장 많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TV시청은 나이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시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중장년부터 TV를 많이 본다는 사실은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친목이나 종교활동과 같은 모임형 활동에 머무르는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론 다른 여가활동보다 여행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서 너무 한쪽 방향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종합하면 자기계발이나 사회봉사 같은 진지한 여가활동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여가활동의 활용도

우리는 전통 적으로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수도 없이 손을 봐야 수확을 할 수 있는 벼농사로 인한 영향이 크다고 한다. 서양에선 여가활동이 창의성 발휘에 자양이 된다고 여겨 장려하는 문화가 강하다. 결국 여가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선 정년퇴직을 한 후에도 가능하면 빨리 재취업을 해서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재취업만으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한다고 자신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몇 년 후 다시 맞이하게 되는 퇴직 때 더 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은퇴생활에서 여 가활동은 삶의 여유를 즐기는 도구, 자아를 실현하는 도구,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만약 TV시청, 등산, 여행과 같이 가벼운 소일거리로 은퇴생활을 일관한다면 금방 지루해지고 만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끊임없이 휴식하는 것만큼 큰 벌은 없다는 어느 퇴직자의 푸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그래서 여가활동을 은퇴 후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여가를 새로운 일거리로 만들어내는 현명함을 가져야 된다는 얘기다.

몇 년 전 필자가 은퇴설 계 강연을 할 때 일이다. 이제 갓 50대에 들어선 남성이 매우 열심히 강연을 들으면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외국계 회사의 임원이었는데, 자신의 노후준비 상태를 체크한 후 과감하게 은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나중에 어느 잡지에서 그의 소식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는 조기 은퇴를 한 뒤 비영리단체에서 각종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평소에 취미활동으로 하던 사진기술을 활용해 비영리단체의 여러 행사를 촬영하러 다녔다. 이런 봉사를 하다가 장애인 가족들이 변변한 가족사진을 못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고, 그 후 우리나라 최초의 장애인 전용사진관을 설립했다. 지금은 각종 언론보도 덕분에 국내 유명인사가 되었고, 회사 다닐 때보다 더 보람 있고 활발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 기업인 바라봄사진관의 나종민 사장이다.

나종민 사장의 사례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은퇴 후 여가활동과 사회봉사를 결합시 켰고, 장애인 봉사라는 주제로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 진지하게 여가활동을 계획해 은퇴 후 새로운 인생을 개척한 좋은 사례인 셈이다. 외국에서는 캠핑을 좋아하던 사람이 캠핑스쿨을 열어서 청소년 전용 캠핑장을 발전시킨 사례도 있다. 서핑을 좋아하던 사람이 서핑용품점을 창업을 하기도 한다. 진지하게 취미생활을 발전시키면 은퇴생활이 얼마든지 새롭게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가의 종류

은퇴설계 과정 에서 미국학자 스테빈 교수가 주장한 여가 분류법은 큰 의미를 가진다. 스테빈 교수는 여가를 가벼운 취미여가(casual leisure)와 진지한 취미여가(serious leisure)로 나눈다. 가벼운 여가에는 산책, 등산, 관람, 문화활동 등이 포함된다. 가벼운 여가를 즐기기 위해서는 특별한 훈련이 필요없다. 이런 여가활동은 즉각적인 만족감을 주지만, 비교적 단시간의 즐거움만 얻을 수 있는 활동이다.

진지한 취미여가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여가활동을 자원봉사나 교육에 활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대부분의 여가활동에서 전문가 수준으로 경력을 쌓 아 많은 사람들과 교육과 봉사 등으로 연결되면 이를 진지한 여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지식, 기술, 경험을 획득하고 표현하는 과정에서 일정한 경력을 갖게 되는 활동이다. 난관을 극복하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진지한 여가활동을 통해 결과적으로 장시간 지속되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회봉사, 타인과의 교류, 사업으로 연결되는 확장성을 갖는다.

진지한 여가는 6가 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여가활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도 그 여가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여가활동에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을 쏟아붓는다. 그 결과 특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한다. ▲여가활동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난관을 끈기 있게 극복해 나간다. ▲장기간 여가활동을 하면서 경력을 쌓아간다. ▲여가를 통해 자아실현, 자기만족, 자기표현, 자아 재발견, 성취감 등을 느낀다. ▲여가활동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독특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진지한 여가는 3 가지 형태로 구분되고 있다. ▲첫째는 예술형 여가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아마추어로 활동한다. ▲자원봉사형 여가는 교육, 건강, 종교, 정치, 예술 등에서 보상 없이 자발적으로 도움을 제공한다. ▲교육형 여가는 다양한 연령층을 대상으로 진학, 심리, 동기부여, 취업 등을 교육한다. 진지한 여가활동을 하게 되면 은퇴 후 멋진 생활을 할 수 있다.

여가활동을 바탕으로 좋은 공동체를 확보하고, 자아 정체성을 찾아내고,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은퇴 후 여가생활에 성공하면 건강도 잘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에는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건강까지 포함된다. 그래서 선진국 은퇴자들은 은퇴 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여가활동을 꼽기도 한다.


우재룡 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펀드평가대표이사, 동양증권 자산관리컨설팅연구소장, 삼성생명은퇴연구소장을 거쳐 현재 한국형 은퇴설계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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