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기업들은 지금 인재영입을 위한 전쟁을 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경영위기를 헤쳐나갈 유능한 인재를 찾기 위해 서치펌의 문을 두드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세계 5위 서치펌인 DHR 인터내셔널이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에 나섰다. 이 기업은 인적 네트워크의 다양성을 통해 업계 평균보다 훨씬 빠른 90일 채용 프로세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크리스틴 그레이비 DHR 인터내셔널 회장으로부터 한국 진출 배경과 전략을 들어봤다.
유부혁 기자 yoo@hmgp.co.kr
사진 윤관식 기자 newface1003@naver.com
앨빈 토플러의 책 ‘부의 미래’에서는 부를 결정 짓는 3요소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지식을 꼽았다. 여기서 시간은 속도이고 공간은 지역이며 지식은 분별력이다. 이를 기업의 경영활동에 대입해 보면 넘쳐나는 정보를 잘 분별해 남보다 빠르게(또는 정확한 타이밍) 투자처 또는 시장을 선점하는 것이 중요하단 말이 된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 최고 경영자와 임원들의 몫이다. 임원 인사가 경제계에 이슈가 되는 것은 최고 경영자와 임원 자리 배치를 보면 기업의 향후 경영 스타일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에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시스템이 강조되는 시기에 아이러니 하게도 사람 찾는 일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틴 그레이비 DHR 인터내셔널 회장은 “시스템이나 기술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며 서치펌의 역할을 한마디로 설명했다.
지난 11월7일 한국 사무소를 개설하고 본격적으로 서치펌 비즈니스를 시작한 DHR 인터내셔널(이하 DHR)의 크리스틴 그레이비 회장을 남산과 한강이 보이는 하얏트 호텔 남산룸에서 만났다.
이미 1,000여 개의 헤드헌팅 회사가 난립한 한국 시장에, 그것도 경기가 좋지 않은 때에 진출한 배경부터 물었다.
그레이비 회장은 “경기가 좋지 않아 오히려 돌파구를 낼 경영자와 임원을 찾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특히 한국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 이해와 진입을 위해 성공의 경험과 경륜을 갖춘 임원들을 찾고 있어 충분히 성장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해외 진출에 적극적인 한국 기업들이 해외 진출 경험이 있는 임원들을 찾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경륜을 갖춘 한국 임원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수요도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서치펌 기업이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까? 대개 덩치가 큰 글로벌 기업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으로 현지에 접근하다 고전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DHR만 해도 연간 매출액이 2조 원에 이르는 서치펌 업계 공룡이다.
그레이비 회장은 빙그레 웃으며 “서치펌은 서비스업이다. 서비스는 해당 국가의 산업, 조직 문화 및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지 사정에 밝은 시니어 레벨의 매니저를 채용해 그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고 답했다. DHR 한국 사무소는 한국에서 10년 넘도록 서치펌 업무를 수행해 온 필립 띠로 사장이 맡는다. 또 시니어 직원 3명의 업계 경력을 합하면 60년 이상이 넘는다. 글로벌 기업이지만 한국 시장에 자신을 보이는 이유이다. 크리스틴 회장은 또 “지역 사회 특성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도 계속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링크드인의 성장세와 함께 소셜 미디어를 통한 채용도 붐을 타고 있다. DHR이 주력 분야로 내세운 C-레벨, 이사회 멤버, 부서별 총괄자의 채용에서 소셜 미디어와 경쟁요소는 없는지 또는 활용 사례는 있는지 물었다.
그는 담담하게 “비즈니스영역이 다양해지면서 그에 적합한 인물을 찾는 스킬 역시 늘고 있다. 사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채용시장의 성장세가 걱정 돼 자체적으로 분석을 해봤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의 일을 도와주는 측면이 있었다. 트렌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를 통해선 다각적인 접근은 어렵다. 서치펌의 업무는 이보다 좀 더 깊고 세밀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소셜 미디어 활용을 통한 비즈니스 접목에 대한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
가장 중요한 인적 네트워크 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레이비 회장은 “우선 매핑에 있어서 이직을 원하지 않는 인물까지 채용 시장에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 고객사가 원하는 채용자에 적합하다면 말이다. 미들급 매니저 채용과는 조금 다르다”며 “어프로치와 서치 능력이 우리의 강점이다. 평소에도 지식이나 정보 교류를 통해 성공적인 매칭이 이뤄지도록 계속해서 어프로치 한다. 우리의 최고 강점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고객과 채용 대상자 모두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지원은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한국 진출의 목표를 묻는 질문에는 “결국 1위를 달성할 것으로 믿는다. 이를 위해 매년 20% 정도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보수적인 수치다. 인력을 충원하면 시장 점유율도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지사 설립 전 이미 지난 1년 동안 충분히 한국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는 “정식 오픈 전 이미 목표보다 15%를 초과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난 1년을 통해 느낀 한국 시장의 특징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선진국의 인재 영입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기업이든 성공 경험을 가진 임원을 원하더라”고 답했다.
그레이비 회장 인터뷰에 앞서 열린 지사 설립 기념식에서도 DHR은 채용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타 업체에 비해 프로세스가 신속하고 견고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을 부탁하자 그레이비 회장은 “채용 프로세스는 업계 평균이 120일에서 150일 정도인데 우리는 90일 정도에 끝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DHR만의 단계별 서치를 통해 조기에 채용의 근본 목적에 가장 부합한 후보군을 완성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혹시 서치 단계에서 고용주가 원하는 후보자와 DHR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후보자가 다른 경우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서치펌은 컨설턴트의 업무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의견 조율이 가능한지 회장에게 물었다. 크리스틴 회장은 간단하게 답했다.“기업의 선호에 따른다. 우리는 최종 판단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회사마다 채용의 속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채용 절차에서 평판조회를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도 물었다. 기업 입장에선 실적이나 조직 적합도만큼 중요한 품성이나 성향을 알기 위해 인재 영입 시 평판조회를 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이비 회장은 “굉장히 중요하다. 평판조회를 좀 더 다각화 하기 위해 공개와 비공개 방식으로 나눠 진행한다. 중요한 점은 기술이 이런 과정을 도울 수 있지만 주도하긴 어렵다는 사실이다. 기술은 조직 문화, 성향을 평가할 수 없다. 결국 평판조회 등을 비롯한 서치펌 업무는 기술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해결한다”고 답했다.
DHR이 서치펌 비즈니스에서 특히 강조하고 있는 점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지체 없이 “다양성이다. 다양성 확보는 변하는 채용흐름에 대한 대안이기도 하고 비즈니스의 폭과 고객사의 만족도를 높이기도 한다. 한국 시장 상황 또한 여성임원이 증가하고 외국의 고급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 뒤 “서치를 위해 기업에 대한 연구도 진행한다. 최근에는 CDO(Chief Data Officer)에 대한 리포트도 냈다. 폭증하는 데이터 사이에서 빅데이터를 다루고 해석할 수 있는 임원이 필요해졌다는 내용이다”라고 답했다. 그의 말대로 최근 한국뿐 아니라 여성 임원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포춘 500대 기업을 분석한 결과, 여성과 외국인 직원 등 다양성이 강할수록 조직의 성과가 좋다는 연구결과도 이런 흐름을 뒷받침 하고 있다.
그레이비 회장에게 포춘코리아는 12월 호 커버스토리 올해의 CEO TOP 10을 선정하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했는데, 서치펌 역시 빅데이터를 활용한 서치 단계를 도입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레이비 회장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인물 선정이 매우 흥미롭다. 발전시키면 재미난 비즈니스가 될 것 같다. 소비성향, 리더십을 평가하는 데 좋은 고려 요소라 생각한다. 우리 역시 빅데이터를 통한 분석으로 후보군을 제시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그레이비 회장은 “한국은 인적자원 이슈가 다양하다. 은퇴자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이분들의 마인드가 중요하다. 시스템이 아닌 사람이 베이스인 조직에서 일할 수 있는지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의 임원들이 은퇴해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재취업한다면 업무 노하우를 전수할 기회가 많지만 현실에선 이에 대한 인식 부족 등 어려움이 있음을 살짝 내비친 것이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국 시장에서 성공을 자신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레이비 회장은 “아시아 지역의 글로벌 인재와 글로벌 시각 및 성공 경험을 보유한 한국의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국가간의 인재 이동이 가속화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앞서 필립 띠로 DHR 한국 지사장은 “포춘 코리아 500 기업 및 주요 국내 대기업의 서치를 이미 시작했다. 글로벌 사고방식을 가진 유능한 한국 임원을 원하는 수요가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고도 말했다. 그레이비 회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DHR 네트워크는 전 세계 임원과 인재를 커버하기 위해 노력한다. 12번째 해외 사무소인 한국 사무소 개설로 비로소 전 세계 네트워크가 완성됐다”며 활짝 웃었다.
“아시아 지역의 글로벌 인재와 글로벌 시각 및 성공 경험을 보유한 한국 인력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