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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 터빈에 씌워진 박쥐 킬러의 오명

친환경 풍력 발전의 그림자

태양광과 함께 친환경 신재생에너지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풍력 발전. 그러나 풍력 발전의 이면에는 친환경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생태계 파괴자로서의 모습이 숨어있다.

지난 한 해 미국에서만 풍력 터빈에 의해 희생된 박쥐의 수가 자그마치 60~90만 마리에 이르고 있는 것. 적어도 박쥐와 새들에게 있어 풍력 터빈은 살인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을 막을 방법은 없는 것일까.





풍력 발전 단지를 멀리서 바라보면 네덜란드의 풍차를 보는 듯한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진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풍력 터빈의 주변을 확인해본다면 그 같은 감상적 생각이 일순간에 말끔히 사라질 것이다. 많은 박쥐와 새들의 사체가 널려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풍력 단지 주변을 이동하다가 터빈의 블레이드에 부딪쳐 희생된 녀석들이다.

미국 콜로라도대학 덴버캠퍼스의 박사후과정 연구자인 마크 헤이즈가 지난해 12월 학술지 ‘바이오사이언스’에 개제한 논문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만 풍력발전시설에 충돌해 죽는 박쥐의 수가 적어도 60만 마리에 달한다. 그리고 일부 동물보호단체들은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연간 최소 1,000만 마리, 최대 3,000만 마리 이상의 박쥐와 조류가 희생되고 있다고 추산한다.





박쥐의 킬링필드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박쥐가 풍력 터빈에 희생되는 걸까.

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일반인들의 고정관념과 달리 의외로 많은 박쥐들이 동굴 속이 아닌 나무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으며, 가을에는 짝짓기를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늙은이박쥐는 짝짓기 철이 되면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데 미국 조지아주의 대서양 해안을 출발해 로키산맥 동쪽의 넓은 평원지대인 그레이트플레인스까지 날아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박쥐는 이동 시 나무를 주요 참조점으로 삼는다. 이에 근거해 생물학자들은 수컷 늙은이박쥐가 주변에서 가장 큰 나무의 주변을 돌며 짝을 찾으며, 박쥐의 눈에는 풍력터빈이 바로 그 큰 나무로 인식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렇게 풍력 터빈 주변을 날아다니다가 짝짓기에 몰입해 주의력이 분산되는 등의 이유로 불의의 사고를 당한다는 것이 박쥐의 사망 원인 중 하나라는 게 헤이즈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풍력 터빈이 박쥐의 생명을 앗아가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직접 타격과 압력손상이 그것이다. 직접 타격은 글자 그대로 빠르게 회전하는 풍력 터빈 블레이드와의 충돌을 뜻한다. 대형 블레이드는 길이가 열차 객차보다 길고, 회전속도가 시속 240㎞에 달하는 만큼 작디작은 박쥐가 여기에 충돌하고도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압력 손상은 블레이드가 고속회전하면서 생성되는 압력에 의한 타격을 말한다. 이런 주변 기압과의 압력 차이는 박쥐의 폐를 폭발시켜 버릴 수 있다. 다만 미 국립 재생에너지 연구소(NREL)는 압력 손상의 경우 일부 생물학자들의 지적보다는 위험성이 적다는 분석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또 다른 피해자, 야생 조류


주지하다시피 풍력 터빈의 또 다른 주요 희생자는 야생 조류다. 미국 내에서 연간 40~60만 마리가 풍력 터빈의 제물이 되고 있다며 풍력 발전의 중단을 주장하는 환경단체와 환경운동가들도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정도 숫자는 조류 사망 원인 중 비중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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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조류의 최대 사망원인은 다름 아닌 고양이다. 매년 2억~37억 마리가 고양이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고 한다. 2위는 전력선(송신탑)과의 충돌. 매년 1억7,500만 마리가 그로 인해 죽는다. 3위는 인간에 의한 사냥으로 피해(?)규모는 연간 1억2,000만 마리 정도다.

그럼에도 왜 환경운동가들은 풍력 터빈에 의한 조류 사망 사고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미국 최대이자 세계 최대 풍력발전소의 한 곳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소재 알타몬트 패스 풍력단지가 그런 생각을 품게 만든 진원지다.

1981년에 가동에 돌입한 이 풍력단지에는 현재 4,930대의 풍력 터빈이 설치돼 있다. 그런데 이곳은 캘리포니아 얼룩다람쥐와 그 천적인 맹금류들의 서식지다. 때문에 독수리를 비롯한 맹금류들이 다람쥐를 사냥하는 과정에서 터빈에 부딪쳐 죽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만 매년 1,300마리의 맹금류가 희생되고 있으며, 여기에는 미 연방정부가 보호종으로 지정한 검독수리도 70여 마리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래서인지 캘리포니아 북부의 검독수리 개체수는 과거에 비해 80%나 줄었고, 알타몬트 패스 풍력단지 인근에는 아예 검독수리를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사실들이 매스컴을 통해 확산되면서 사회적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상황을 다른 풍력 단지에 일반화시켜 대입하는 것은 다소 물의가 있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알타몬트 패스의 풍력 터빈은 20년 전의 구형 설비로서 표면적이 적은 격자구조 블레이드가 채용돼 있는데 이는 전력 생산 효율 면에서도, 조류의 안전에도 좋지 않다. 낮은 효율을 극복하고자 더 빠른 속도로 회전해야하므로 새에게 더 위험할 수밖에 없다. 또한 블레이드가 마치 새들이 주변을 관찰하거나 휴식을 취하기에 좋은 횃대를 연상케 디자인 된 것도 사고 빈도를 높이는 요인이다.



공존을 위한 다각적 노력들

현 단계에서 박쥐나 조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 풍력 발전 비중을 낮추거나 신규 풍력단지 건설을 전면 중단하는 극단적인 판단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과 다를 바 없다. 생태계와 환경을 중시하는 생물학자들의 대다수도 풍력 발전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 신규 일자리 창출, 경제 성장 등 긍정적 부분이 훨씬 많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렇다고 박쥐나 조류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 또한 장기적으로 먹이사슬 붕괴와 생태계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환경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탓이다. 이에 따라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풍력 터빈에 의한 날짐승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연구 중에 있다. 그중 하나로 풍력 터빈의 ‘시동 속도’ 상향 조정 방안이 논의 중이다. 시동 속도는 터빈의 블레이드가 회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풍속으로 지금은 보통 초속 3.5m 정도다. 그런데 박쥐는 바람이 심한 날에는 비행을 자제한다.

즉 시동 속도를 높인다면 박쥐와 풍력 터빈의 접촉사고 빈도를 대폭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국제박쥐보호협회(BCI)가 2010년 발표한 연구에서도 시동 속도 상향을 통해 전력 생산량 감소를 최소하면서 박쥐의 사망 건수를 43~93%나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쥐들의 이동철인 6주일 정도만 시동 속도를 높여도 수천마리의 박쥐를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최적의 시동 속도를 설정하고, 박쥐들이 풍력 단지의 어느 부분을 가로지르는지 등을 파악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또한 이에 앞서 박쥐의 개체수 파악도 이뤄져야 한다. 정확한 개체수를 알지 못한다면 보호활동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조류의 서식지나 이동경로를 고려해 풍력 터빈의 설치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다. 이미 최근 건설되고 있는 풍력 단지들은 새의 이동경로와 개체수가 많은 곳을 피해 터빈 설치 위치를 정하고 있다. 차세대 풍력시스템으로 급부상 중인 해상 풍력 단지도 조류피해를 낮출 훌륭한 대안으로 꼽힌다.





풍력 발전의 환경파괴
박쥐와 조류의 피해는 어찌 보면 풍력 발전이 안고 있는 환경적 문제의 아주 작은 측면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풍력 발전은 단지 조성과 터빈 설치를 위한 산림 파괴를 차치하고도 여러모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먼저 풍력 단지는 주변 지역의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쉬지 않고 회전하는 블레이드에 의해 엄청난 난기류가 생성되면서 공기 중의 열과 수증기를 위아래로 뒤섞어 인근지역의 기상조건이나 풍향을 바꿔 놓을 수 있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야간 기온은 더 높게, 주간 기온은 더 낮게 만든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또한 풍력 발전도 소향이기는 해도 건설 및 운용과정에서 이산화탄소(CO₂)가 배출된다. 2006년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풍력 발전소 3곳에서 1GWh의 전력을 생산할 때마다 14~33톤의 CO₂가 배출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희토류 채굴 문제는 좀 더 심각하다. 일부 풍력 발전기에 희토류(네오디뮴) 영구자석이 쓰이는데 채굴 과정에서 엄청난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때문에 세계 최대 희토류 수출국인 중국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도 규제의 목소리가 높다.

물론 이 같은 단점들은 화석연료가 지닌 환경 유해성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것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연구들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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