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 종자시장에 한국 씨앗 뿌린다

농우바이오·동부팜한농 해외 공략 나서

우리나라는 한때 종자주권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시장을 선도하던 기업들이 해외자본에 팔려나가면서 우리 산과 들에 외국계 회사들의 종자가 깊숙이 뿌리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이제 옛말이 됐다. 팔려나간 기업들의 인원을 흡수하거나 아예 통째로 회사를 되사오면서 다시 종자주권국으로서의 위상을 되찾았다. 이제 이들은 강화된 전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나라 종자 산업계에도 큰 시련을 가져다 주었다. 당시 국내 종묘업계의 맏형이었던 흥농종묘와 No.3였던 중앙종묘가 멕시코계 기업 세미니스(현재는 미국계 기업 몬산토에 인수됨)에 팔려나갔고, No.2와 No.4였던 서울종묘와 청원종묘는 각각 노바티스(현재 신젠타)와 사카타로 인수합병되었다.

종자주권국가로서의 위상도 나락으로 추락했다. 시장점유율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빅4 기업이 외국계에 팔려나가자 국내 종자 보급률도 형편없이 떨어졌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수확철이면 지주와 마름에게 수익을 다 빼앗기던 과거의 형국이었다.

내로라하던 기업들이 줄줄이 다국적기업에 넘어갔지만 빅5로 꼽히던 농우바이오는 달랐다. 고(故) 고희선 농우바이오 명예회장은 해외자본으로부터 거액의 투자유치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오히려 농우바이오만이라도 토종 기업으로 남아야 한다며 종자주권 수호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후 농우바이오는 불과 몇 년 만에 외국계 기업들을 제치고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의 종자업체로 성장했다. 2012년, 동부팜한농이 몬산토코리아를 인수하면서 짓밟혔던 종자주권국의 자존심이 되살아났다. 몬산토코리아는 세미니스가 흥농종묘와 중앙종묘를 인수하면서 설립한 세미니스코리아를 몬산토가 다시 인수하면서 만든 회사였다. 우리의 산과 들, 그리고 밥상 깊숙이 박혀 있던 대못을 마침내 14년 만에 뽑아낸 것이다.

그리고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종자산업 육성 의지와 함께 골든 시드 프로젝트 Golden Seed Project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종자산업은 국내 종자주권을 넘어 미래 성장동력이자 외화벌이의 수단으로까지 주목받기 시작했다. 2014년, 바야흐로 우리나라 종자산업이 세계로 뻗어나가려 하고 있다.

이상준 농림축산식품부 종자생명산업과 사무관은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종자주권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상당한 만큼, 정부는 이미 오래전부터 종자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성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종자산업 육성 정책은 하루아침에 뚝 떨어진 얘기가 아니에요. 2009년부터 ‘2020 종자산업 육성대책’을 추진 중이었고, 그 이전에도 여러 정책들을 실행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셔서 좀 더 힘을 받게 됐죠. 또 이전에 투자한 것들이 최근 결과물로 나타나면서 가시적인 성과도 몇몇 보이고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종자주권 논란이 일었지만 현재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2012년 기준 국산 종자 유통비율은 식량이 98%, 채소가 95%, 과수가 23%, 화훼류가 10%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종자산업이 식량과 채소 부문에만 너무 치우쳐 있어 완전한 종자주권을 이야기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나온다. 고부가가치 종자 확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안정환 동부팜한농 종자사업 사업기획팀 팀장은 말한다. “종자시장 전체로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게 식량이고 그 다음이 채소, 화훼, 기타 순입니다. 식량과 채소는 주식으로 먹는 것이라 중요도가 더 클 수밖에 없죠. 하지만 꽃 등 화훼류 이하부터는 사실상 기호품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개발하는 데 상대적으로 시간도 더 많이 필요하고요. 고부가가가치 종자로 화훼를 예로 많이 드는데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전체 종의 부가가치로 따지자면 채소종자가 제일 높습니다. 종자산업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는 식량종자가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요. 식량인 만큼 워낙에 많은 양이 거래되니까요.”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40%대 수준이지만 국산 식량종자 유통비율은 거의 100%에 달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예전부터 정부 주도로 식량종자를 개발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가 개발은 물론 보급도 거의 무상으로 진행하다 보니 우리나라는 사실상 식량종자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식량종자시장 규모가 1억7,000달러인 데 비해 업계는 시장 규모를 최소 2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종자업체들은 주로 채소종자를 주력 품목으로 삼는다. 전체 규모는 식량종자시장이 제일 크지만 우리나라 식량종자시장은 정상적인 시장환경이 아닌 까닭에 기업이 식량종자를 주력 품목으로 삼기엔 어려움이 있다. 화훼종자시장은 고부가가치 종자 품목이 많기는 하나 개발하는 데 50~100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돼 이미 오래전에 시장에 진출한 네덜란드 등 유럽 종자업체들과 경쟁이 어렵다. 채소종자시장은 전체적인 부가가치가 높고 시장 규모도 큰 편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종자업체들이 주력 시장으로 삼기에 적당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파악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3대 종자시장은 식량, 채소, 화훼 시장으로 각각 시장규모가 1억7,000달러, 1억5,000달러, 1억1,000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종자업체 수는 2012년 기준 1,073개에 달한다. 하지만 유전자원 보유, 신품종 육성, 종자품질관리 등 품종육성 전문 경쟁력을 갖춘 업체는 소수에 불과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상위 2개사가 전체 시장의 51%를 점유하고 있고, 3, 4위사가 9%정도를 차지해 사실상 4개 기업이 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부팜한농과 농우바이오가 시장점유율 1, 2위를 다투고 있다. 2012년과 2013년 국내 시장점유율 기준으론 동부팜한농이 26%로 1등이고(농우바이오는 25%), 종자사업 부문 전체 매출액 기준으론 농우바이오(9월 결산법인)가 2013년 기준 676억 원으로 1등이다. 12월 결산법인인 동부팜한농의 2013년 종자사업 부문 매출은 630억 원 규모로 추정되고 있다. 2012년엔 354억 원이었다. 농우바이오 전체 매출에서 종자사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90%로 동부팜한농의 8.4%를 크게 앞지른다. 동부팜한농은 종사사업 비중이 2012년 4.7%에서 2013년 8.4%로 크게 뛰어올랐다. 몬산토코리아를 흡수하면서 종자사업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업 규모로는 동부팜한농이 농우바이오를 압도한다. 종자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농우바이오와 달리 동부팜한농은 농사업 부문 전체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종자사업 매출 규모로만 봤을 땐 농우바이오가 동부팜한농보다 근소하게 우위에 있지만 전체 자산 규모나 매출액 기준으로 보면 동부팜한농이 압도적이란 얘기다. 2012년 기준 농우바이오 전체 매출액과 자산 규모는 각각 778억 원과 1,636억 원이지만 동부팜한농은 각각 7,536억 원, 1조3,213억 원이었다. 거의 10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농우바이오는 국내 종자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1967년 창업 이래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국내 종자산업을 이끌어왔다. 시가총액 3,600억 원 규모의 코스닥 상장업체이기도 한 농우바이오는 2012년 기준전체 매출의 44%를 해외 종자수출에서 올릴 정도로 해외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수출주도형 종자사업에 많은 노력을 쏟아 2011년엔 해외 종자 수출 1,000만 달러를 달성 했고, 2013년엔 ‘World Class 300’에 선정되기도 했다.

농우바이오의 종자수출은 2001년부터 본격화됐다. 이전까지 10억 원 미만이던 해외 매출이 2001년 들어 26억 원으로 갑자기 늘어난 데에는 IMF 외환위기 직후 해외에 매각된 종묘회사들의 인력을 대거 흡수한 것이 주효했다. 농우바이오는 이 시기에 흡수한 사장급 및 연구소장, 연구원, 지점장 등의 인력을 활용해 미국 법인을 세우고 생명공학연구소, 종자가공센터 등을 설립했다. 이들 인력의 흡수는 농우바이오가 국내 빅5에서 1위 종묘회사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동부팜한농의 종자사업은 1961년 설립된 제일종묘를 모태로 한다. 1995년 동부그룹에 편입됐으나 동부팜한농의 다른 농사업 부문과는 달리 큰 성장을 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9년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종자사업 정상화 마스터플랜을 발표하면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대농종묘와 몬산토코리아까지 흡수, 대규모 유전자원과 해외 네트워크를 확보하면서 해외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동부팜한농 종자사업 마스터플랜의 주된 골자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 달성과 해외 매출 확대였다. 2012년을 기점으로 국내 시장점유율은 이미 1위로 올라섰다. 동부팜한농에선 현재 시장점유율이 기존에 알려진 26%를 훨씬 상회할 것이라 보기도 한다. 종자가 판매되는 국내 3,500개 유통채널 중 동부팜한농이 거래하는 회사가 1,400여 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동부팜한농은 이들 채널들을 활용해 국내 시장지배력을 더욱 강화하고, 해외 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33억 원인 해외매출을 단기간 내에 400억~500억 원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종자산업을 이끌고 있는 양대 축인 두 회사는 정부의 2020년 종자수출 2억 달러 목표와 궤를 같이해 ‘2020년 1억 달러 종자 수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종자산업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어 이에 대한 자신감도 넘치고 있다.

서성진 농우바이오 홍보팀장은 말한다. “농우바이오는 국내 업계 최초로 자체 생명공학연구소를 세운 기업입니다. 재래 교배 육종법뿐만 아니라 생명공학기술을 활용한 융복합 육종기술력도 보유하고 있죠. 미국, 중국, 인도 등 세계 5개국에 현지법인을 설립·운영하고 있어 해외시스템 구축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공격적인 해외시장 마케팅이 가능하단 얘기죠. 현재 농우바이오가 수출하고 있는 국가들만 70여 개국에 달합니다. 농우바이오는 또 주력 사업인 채소종자 외에 장기적인 시각으로 식량종자, 화훼종자 개발 등에도 힘을 쏟고 있어 사업 분야도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0년에는 글로벌 톱10 진입 목표를 달성할 겁니다.”

안정환 동부팜한농 종자사업 사업기획팀 팀장은 말한다. “종자사업에선 얼마나 많은 유전자원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동부팜한농은 M&A를 통해 다양한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유전자원을 개발하는 데 유리하다는 뜻이죠. 게다가 다른 종자기업들과는 달리 인력 풀도 상당합니다. 동부는 그동안 그룹차원에서 장기적 계획을 가지고 종자사업 R&D 인력들을 육성해 왔거든요. 그 인력들이 성과를 낼만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죠. 연구인프라도 상당하고요. 체계적인 계획 하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미래에는 세계 유수 기업들과도 견줘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곧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할 겁니다.”

생명공학기술의 활용, 품종보호제도의 확대 등 세계 종자시장은 글로벌 무한경쟁 체제가 가속화되고 있다. 종자산업 강국인 미국 및 유럽 외에 최근엔 중국, 인도 등 신흥국 기업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세계 10대 다국적 기업들은 M&A를 통해 이미 세계 시장의 73%를 점유한 상태다. 이 살벌한 종자시장 속에서 농우바이오와 동부팜한농이 앞으로 어떤 성장을 해 나갈지, 두 기업의 종자수출액이 2020년에 각각 1억 달러를 돌파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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