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글로벌 리더십과 실용 지능

고현숙의 ‘리더십 코칭’

타인들, 특히 권위 있는 사람 앞에서 자기 의사를 표현하고 거래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고현숙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겸 코칭경영원 대표코치 helenko@kookmin.ac.kr


오래전에 국제 코치자격 교육을 받을 때다. 10명이 한 조가 되어 6개월 동안 매주 전화로 온라인 수업을 듣는데, 서로 코칭하고 토론하고 피드백도 해야 하는 참여도 높은 과정이었다. 문제는 나를 뺀 동료 9명과 지도코치가 모두 미국인이라는 것. 나는 교육 시작 전부터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상당히 걱정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영어만 문제가 아니었다. 얼굴을 보지 않고 텔레 컨퍼런스로 이루어지는 수업인데도 그들은 무척 시끄러운 그룹이었다. 농담도 잘하고 심각하게 의견을 내거나,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에도 즉각 반응을 했다. 그들이 볼 때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나는 과제는 꼬박꼬박 제출했지만 수업시간에는 말수가 적은 학생이었다. 교재에 대한 지도코치의 설명이나 동료의 토론 중에도 특별히 반대 의견이 없으면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지도코치가 나에게 상당히 당황스러운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인즉, “이 수업에 당신이 무슨 기여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내용이든 활발히 참여하고 자신의 의견을 많이 표현해달라.”

아니, 남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게 미덕이 아니던가? 동양의 문화를 모르는구먼. 게다가 내가 수업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니? 선생도 아닌 학생에게, 수업에 기여를 더 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에 나는 혀를 차면서도, 다음부터는 말이 되든 안되든 토론에 더 적극적으로 끼어들게 되었다. 코칭 외에 더 중요한 것을 얻은 셈이다.

표현되지 않은 의견, 연결되지 않는 지식?

초등학교 자녀를 프랑스의 학교에 입학시킨 학부모의 얘기다. 아이가 멀쩡하게 수학도 잘하고 학과목도 이해를 잘하고 있는데, 프랑스어 실력이 서툴다고 학년 진급을 시키지 않더라는 거다. 부모가 선생님에게 “아이가 필요한 지식은 아는데 단지 표현이 서툴 뿐”이라며 항의했다. 학교는 교사 회의를 소집해서 이 문제를 다루고 결론을 이렇게 전해주더라고 한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지만, 프랑스 학교에서 ‘안다’는 것은 자기가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말이나 글로 표현해서 다른 지식과 연결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표현할 수 없는 지식은 측정할 수 없고, 그러니 진짜 안다고 승인하기가 어렵다”고 말이다. 아무튼 교사회의의 진지한 토론과정을 전해들은 학부모는 다음부터는 학교의 결정에 웬만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천재가 평범하게 사는 사연

미국에 아이큐 190의 천재가 있었다. 비상한 지능으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던 이 사람은 가난했지만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대학을 마치지 못했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어 재능을 살리지도 못했다. 결국 시골 마을에 사는 평범한 소시민으로 나이를 먹게 되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 남자는 어느 학기에 장학금 신청 서류를 제때 내지 않아서 장학금을 받지 못했고, 그 결과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일하는 시간이 수업시간과 겹치거나 다른 불가피한 이유로 F학점을 받은 이후, 수업 시간을 조정하지 못해서 결정적으로 대학을 중퇴하기에 이른 것이다. 아직도 그는 혼자서 전문적인 분야를 틈틈이 공부하고 있으며, 스스로 자신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못 봤다고 말할 정도로 자기의 지적 능력을 잘 알면서도 평범하게 말을 키우며 살아간다. 재능을 꽃 피웠다면 훌륭한 연구 업적을 쌓았을 이 사람에게 우연한 불운이 겹쳤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까?

이 스토리를 책 ‘아웃라이어’에 소개한 말콤 글래드웰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살다 보면 이런 실수나 불운, 난관은 늘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고 돕도록 설득함으로써 이보다 더한 난관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한 게 문제라는 거다. 시기를 놓친 서류 제출이나 수업 시간 조정 등은 학교 당국이나 아르바이트 사업주, 혹은 교수가 그의 사정을 이해했다면 조정해줄 만한 것이었다. 이 천재가 작은 어려움 앞에 너무 쉽게 자기 미래를 포기해버린 이유는 대부분 학교 당국이나 교수 등 ‘권위’와 거래하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실용 지능(Practical Intelligence)을 ‘뭔가를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언제 말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아는 것’을 포함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즉, 이해하고 아는 능력이 지능지수(IQ)라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를 아는 ‘방법’에 관한 능력이 실용 지능(PQ)이다. 실용 지능은 지능 못지않게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평가된다. 지능이 선천적 능력이라면, 실용 지능은 후천적으로 학습된다. 그래서 가정환경이나 부모의 태도와 관련이 깊고, 사회적 문화도 크게 작용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자기보다 높거나 힘이 센 사람과 거래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선생님 앞에서 자기 생각을 말하거나, 의사 앞에서 증상을 설명하고 질문하는 것, 오해나 부당한 대접을 받을 때 자기 의견을 주장하고 설명하는 능력은 공부 성적보다 훨씬 더 크게 사회적 성공을 좌우한다.

어떤 부모는 늘 아이가 할 말을 대신 해 버린다. 병원에서 의사 앞에서나 다른 어른 앞에서 아이가 대답을 지체하면 큰 폐라도 끼치는 양, 못 참고 대신 대답해 버린다. 권위 있는 사람 앞에서 자기 의견을 펼치지 못하고, 지나치게 거리를 둔다. 불만이 있어도 앞에서는 침묵하고 나중에 불평하면서 체념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무력감을 학습하며 자라는 것이다.

반대는 어떨까? 아이들이 기꺼이 질문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그걸 가치 있게 대접해 주는 것이다. 권위 있는 사람과 스스럼 없이 의견을 나누고 친밀하게 대함으로써 ‘어떻게 거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된다. 권위와 거래하는 능력이 어디 아이에게만 필요하겠는가?

글로벌 리더십에 필수적인 실용 지능

국내 대기업 교육담당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외국계기업과 인수 합병이 이루어져서 양사 출신 임원들의 합동 워크숍을 열었는데, 수적으로는 10%에 불과한 외국계기업 출신 임원들이 워크숍의 모든 논의와 발표를 주도하더라는 거다. 그들도 한국인이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표출하는 문화 속에서 일해온 결과 행동도 달랐다. 그걸 보며 그렇게나 많은 ‘좋은 교육’을 해왔던 교육 담당자로서 ‘한국형 엘리트’들의 현주소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남의 눈에 띄기보다는 점잖게 물러나 있고, 의견을 청하지 않는 이상 입을 닫고 있는 게 익숙하고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이 대다수 한국 조직 문화의 현주소다. 더구나 상사나 낯선 이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더더욱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견은 있으나 표현하지 않는다면, 여기가 프랑스 학교는 아니지만, 의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리더십은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지, 시험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용 지능은 가정뿐 아니라 조직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글로벌 시대에는 더더욱 실용 지능이 필수다. 실용 지능을 갖추지 못하고선 지적 능력을 펼칠 장도 얻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가 내부에서 그런 풍토를 기르지 못하면 세계 무대에서 뛸 선수로서의 입장권을 반쯤 포기하고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고현숙 교수는…
국민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겸 코칭경영원 대표 코치, (사)한국코치협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리더십센터 사장, 한국코칭센터 대표 등을 역임했다. 삼성전자, 현대차그룹, LG전자, 두산중공업 등에서 임원 코칭을 한 바 있다. 저서로 ‘티칭하지 말고 코칭하라’ ‘유쾌하게 자극하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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