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최근 대법원의 통상임금 확대 판결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선진국형 노동정책은 중소기업에게는 사활이 걸린 큰 재앙”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사분규의 원인이 대부분 임금 인상을 위한 것이었다면, 2014년에는 장시간ㆍ저임금 체계에서 단시간ㆍ고임금 체계의 선진국형 근로조건 도입에 따른 복합요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기업입장에서는 경영에 큰 주름을 줄 선진국형 근로조건을 받아들이려면 노동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해야 하는데, 이는 노조와의 마찰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2014년에는 전국이 노사분규에 휘말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노동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고용노동부도 최근 내놓은 ‘2014년 노사관계 전망’에서 “정년연장, 통상임금 범위 확대, 근로시간 단축 등에 따른 노사관계 불안이 산업현장에서 증폭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만나 2014년 노사관계를 심층 진단해 본다.
대담 : 채수종 편집국장 sjchae@sed.co.kr
정리 : 김강현 기자 seta1857@hmgp.co.kr
사진 : 김태환 포토그래퍼 www.circus-studio.net
Q 우리 근로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통상임금 확대와 비정규직 처우 문제, 시간선택제 일자리 등장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변화입니다.
근로체계의 변화는 크게 ‘근로형태 다양화’와 ‘근로시간 단축’ ‘임금체계 변화’ 등으로 압축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근로 형태가 정말 다양해졌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분법적인 구분 외에도 일용직, 계약직, 임시직, 촉탁직, 파트타이머, 아르바이트, 시간제 근로자 등의 분류가 가능합니다. 근로시간 역시 크게 줄었습니다. 법정근로 시간은 해방 이후 주 48시간으로 시작해 90년대 초에는 주 44시간으로 단축됐고 현재 주 40시간이 됐습니다. 게다가 대체휴일제가 점진적으로 시행되면서 실제 근로시간은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임금체계는 최근 법원의 통상임금 판결이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에 반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이 같은 변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런 일련의 흐름들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고용 및 복지에 대한 다양한 욕구와 새로운 수요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현재 우리 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최근 노동 관련 이슈들은 기존 근로자들의 고용보호에만 집중하고 있어 오히려 고용 유연성은 후퇴하고 있습니다. 선진국형 근로환경을 주장하면서도 그 바탕이 되는 고용 유연성은 빼먹고 있단 말이죠. 물론 우리는 선진국형 노동시장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일자리는 다양해져야 하고 근로시간은 줄어들어야 합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빼놓을 수 없죠. 시간선택제 채용도 늘어나야 하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고용 유연성의 바탕 위에서 논의되어야 합니다. 노동자 입장에서만 논의가 되니 기업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혹스런 측면이 있어요. 충분한 고민 없이 한꺼번에 너무 성급하게 추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이슈들 중 몇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우선 통상임금 확대 문제입니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 사업장들의 임금체계는 정부가 1988년에 고시한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바탕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 지침은 제정 이후 6번이나 개정됐지만 통상임금 범위는 한 번도 변경된 적이 없습니다. ‘고정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죠. ‘고정상 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한 ‘금아 리무진’ 대법원 판결(2012년 3월 29일) 이후인 2012년 9월 25일에도 ‘고정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동일한 내용으로 재고시 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대법원은 ‘오토텍’ 판결(2013년 12월18일)에서 “상여금은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임금은 기본적으로 노사 간 합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우리 노사는 그동안 정부의 ‘통상임금 산정지침’이라는 큰 틀을 바탕으로 합의를 해왔어요. 그런데 법원이 이러한 수십 년간의 노사 관행과 신뢰에 반하는 해석을 내리면서 산업현장에 큰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으로 기업 부담이 얼마나 늘어나게 됩니까?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이 포함되면서 기업들은 판결 이후 최초 1년간 퇴직급여 충당금 4조 8,846억 원이 늘어나 연간 13조7,500억 원의 추가 임금부담이 생깁니다. 이후 연간 8조8,663억 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합니다. 물론 이것도 이번 판결로 뒤따를 임금체계 조정을 감안하지 않은 규모입니다.
통상임금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이번 대법원 판결로 기업들의 임금 부담이 너무 커졌습니다. 이 같은 부담은 기업들의 신규투자를 어렵게 만듭니다. 또한 기업들이 해외로 이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의 우려가 큽니다. 중소기업들은 현금 흐름이 좋지 않아 추가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소송중인 중소기업의 CEO들은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이 수용가능 하도록 임금 및 근로체계의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정기상여금을 줄이고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 실적 성과급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같은 변화에 노동계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
근로시간 단축도 기업에게는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휴일근로시간을 연장근로시간에 포함시키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현행법상 1주에 68시간까지 가능한 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무려 16시간이나 줄어들게 되죠. 기존 고용자들의 근로시간을 줄여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는 개별 기업의 여건과 우리 노사관계의 현실을 전혀 고려치 않은 발상입니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낮은 생산성 문제를 초과근로의 적절한 활용으로 보완해 왔습니다. 근로자들 역시 초과근로를 통한 소득으로 가계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요. 새로운 근로기준법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게 뻔합니다. 근로자 소득감소에 따른 노사갈등도 일어날 거고요. 노동계는 잔업이나 휴일근로가 줄더라도 소득총액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일부 대기업 강성노조는 협상력을 이용해 소득보전 요구를 관철시킬지도 모르죠. 이는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노동시장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 및 고용률 제고를 위한 방법으로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도 확산시키고 있습니다. 기업들도 정부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입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확산은 우리나라 고용률 제고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용률 제고는 우리나라가 현재의 저성장 구조를 탈피하고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키워드입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핵심은 여성 인력의 활용입니다. 우리나라의 장시간 전일제 고용구조는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하는 여성 인력들에게 큰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여성 인력들을 노동시장에 참여시키고 또 이를 통해 고용률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적절하고도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이 기업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습니까?
저는 얼마 전에 ‘시간선택제 일자리 채용박람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오셔서 관심을 보여줬죠. 저는 박람회 참석을 통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성공적인 고용형태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서비스업체들의 참여는 많았지만 제조업사들의 참여는 상당히 저조했거든요. 제조업사들의 참여가 부진한 이유는 고용 경직성 문제가 큽니다. 제조업 부문이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의 유연성이 부족해요. 노조의 입김이 크죠.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근로시간에 여유가 있고 유연한 만큼 복지에 있어서도 차등이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이를 노동자들한테 설득시키기가 어렵습니다. 또 2년이 지나면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하는데 시간선택제 근로자들도 이 범위에 포함시켜야 하는지 확실한 법 규정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고용의 유연성을 갖추지 않는다면 제도의 정착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를 것입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올바르게 정착되고 확산되기 위해선 어떤 조치들이 필요할까요?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기존의 일자리를 나누거나 대체하는 형태가 아니라 시간제에 적합한 새로운 직종 및 직무를 발굴하는 ‘창조형 일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경제 활력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 줘야 한다는 말이죠. 또 사회의 시각이 변해야 합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가장(家長)이나 청년층의 신규채용 일자리를 시간제로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닙니다. 전일제 근로를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육아나 학업 등 근로 외 활동을 겸하면서 부가적인 가구소득원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하고, 기업은 이들의 전문성과 집중도를 통해 생산성을 제고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시간선택제 근로자들은 전일제 근로자에 비해 업무량이 적고 개인 시간이 많은 만큼 승진이나 일부 근로 조건에 있어서 합리적 차등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목적과 내용에 대한 공감 없이 ‘일자리 늘리기’에만 급급한다든가 ‘양질의 근로 조건’에만 집착한다면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은 좌초하고 말 겁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 주도의 ‘채용 문화’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최근 “현행 임금체계 문제는 기업들이 보편적 기준 없이 임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라며 쓴소리를 했습니다. 기업들이 사정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임금시스템을 운영하다 보니 현 상황에 이르렀다는 지적인데요.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의 견해에 공감하면서 냉철한 지적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통상임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임금시스템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성해야 할 부분이 있는 거죠. 현재 ‘대기업 정규직의 과도한 고임금 시스템’과 ‘생산성과는 무관하게 연공에 따라 인상되는 기형적 임금체계’는 노사 쌍방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결과입니다. 기업들이 경기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채용보다는 연장근로를 주로 활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현장의 관행들은 시간제 등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창출을 지체시켰습니다. 기업들이 잘못한 부분도 분명 있지만 그 배경이 된 우리나라 노동시장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규직 과보호로 대표되는 고용의 경직성, 대기업 정규직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 연공 중심의 임금체계 등은 기업들이 주먹구구식 임금체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됐습니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임금체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이 있을까요?
우선 노사가 서로 협력해서 직무 및 성과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적으로도 노동시장 경직성을 완화해 기업들이 연장근로나 비정규직 근로자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경영에 필요한 ‘유연성’을 확보하게 해야 합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경영 환경에서 기업들은 노동 투입 규모를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5년 동안 일자리 238만 개를 창출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 현실을 고려할 때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유럽에서도 5년 동안 고용률을 10%포인트 이상 끌어올려 전체 고용률 70%를 달성한 사례는 꽤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고용률이 60~62%이므로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공약이 아주 무리한 목표는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고용률 70%는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우리 경제와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푸는 일입니다. 이미 고용률 70%를 달성한 선진국의 사례에서 봐도 이는 자명합니다. 고용의 기적이라 불렸던 독일의 경우에도 해고요건 완화, 비정규직 규제 완화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고용률 70%의 바탕이 됐었습니다. 이탈리아도 2012년 6월 자국 노동법의 근간이었던 평생고용을 폐지해 고용률을 끌어올린 전례가 있습니다. 무려 40년 만의 노동법 개정안이었습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무리한 정책이 뒤따를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있습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정책은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할까요?
고용률 상승을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나눔의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두 방법 모두 중요하지만 1차적인 목표는 일자리 창출이 돼야 합니다. 일자리 나눔은 일자리 창출의 보완적 성격이어야 하죠. 일자리 창출은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와도 맞닿아 있어 이런 부분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정부가 고용률 중심의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노동시장의 현실을 냉철히 진단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치적 목표에 매몰되어 성급하게 제도를 추진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등 세계적 기관의 국가경쟁력 평가를 보면, 우리나라는 노사문제가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987년 6·29선언 이후 노사갈등이 30여 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노사 대립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간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후진적 노사관계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업의 발전이 곧 근로자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명제를 노사가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강성 노조의 노동운동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 생각합니다. 이들은 기업의 지불여력을 고려치 않고 무리한 요구를 쏟아냅니다. 과격 투쟁도 마다하지 않죠. 게다가 기업 경영과는 무관한 한미FTA 반대 등 정치적 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불법도 밀어붙이면 합법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고공농성, 병원 로비 및 공장 생산시설 점거, 도로 점거 등 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노동계의 ‘기업 노사관계의 정치 이슈화’ 역시 노사관계 선진화를 가로막는 큰 장애요인 중 하나입니다. 정치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나라 법제도가 경영계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으로 오해하고 편향된 법안을 내놓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오히려 법에서 인정한 제도들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실정인데 말이죠. 근로기준법상의 제도인 ‘경영상 해고’는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물리력을 앞세운 저항으로 제대로 실행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노사관계 선진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왕도(王道)는 없지만 정도(正道)는 있습니다. 기업 노사관계는 법의 테두리 내에서 노사 자율로 해결하는 것이 정도입니다. 정치권이 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하는 것은 올바른 해결책이 아닙니다. 노사가 서로 신뢰하고, 또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법과 원칙에 입각한 합의와 결정이 문제 해결의 키워드입니다. 이는 최근 노동시장만 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노사분규가 상당히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이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죠.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하니까 노사도 반목하기보다는 서로 합의점을 찾는 방향으로 접근하고 있는 겁니다. 법과 원칙을 중시한다면 노동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다른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노사정위원회 본위원회 사용자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노사정위원회가 노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한계를 보이는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노사정위원회는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위기 타개책으로 만들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다른 선진국에선 위기 때만 한시적 기구로 운영돼왔는데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운용되고 있는 거죠. 일각에선 폐지론도 나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아직까지는 필요한 기구라고 생각합니다. 노사정위원회의 역할 한계론이나 폐지론은 노사정위원회가 우리나라 전체 노사를 다 아우르지 못해서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현재 전국단위 노동조합 3개 가운데 한국노총만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거든요. 노사정위원회가 제대로 운영되려면 민주노총과 국민노총도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국단위의 노동조직들은 전부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 모든 이해관계를 가진 조직들이 서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최근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재계가 전기요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야기해 화제가 됐습니다. 경제단체 대표가 재계의 입장과 반대되는 말을 했기 때문이죠.
경제단체도 저마다 목적이 다르고 구성원이 다르고 성격이 다릅니다. 의견이 전부 같을 수는 없죠. 또 경제단체는 대한민국 경제의 주체이기도 합니다. (경제단체의 이익에 반한다고 해서) 정부정책에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는 거죠. 정부정책이 합리적이라면 지지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회원사들이 반대하더라도 그게 국가적으로 옳은 일이라면 과감히 지지를 해야 하는 거죠. 반대의 경우라면 누가 뭐라 하든 시정요구를 하고요.
회장님의 약력을 보면 산업자원부 장관부터 서울산업대학교 총장, 한국무역협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을 비롯해 STX, LG상사 등의 기업 경영인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비결이 무엇입니까?
제가 2001년 산업자원부 차관을 맡게 되었을 때 저는 집사람과 약속을 했습니다. 차관은 임시직이었기 때문에 집사람의 걱정이 많았거든요. 차관이 끝나면 직업이 없게 되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말하길 “차관직이 끝나면 학원버스 운전사를 하면 된다. 차관급 운전수가 있는 학원이라니 얼마나 잘되겠느냐?”라고 호언했죠. 당시 아내가 학원을 운영 중이었거든요. 이겁니다. 전 과거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는 중요치 않아요. 오늘에 만족하고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삶의 모습입니다. (산업자원부 장관 퇴임 이후) 여러 제의와 조언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국회의원에 출마하라고 했고, 어떤 이들은 아예 연구소를 차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여러 제의와 조언 중 ‘과거를 잊어라’는 말을 선택 한 겁니다. 제가 이공계 출신이어서 그런지 사무관 때부터도 항상 기업을 마음의 고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장관 퇴임 후 저를 기업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잇속만 챙긴다’고 이야기 합니다. 기회주의자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 개의치 않습니다. 저는 기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니까요. 이 다음엔 또 무슨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1949년 경북 안동 생.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2년 이과생으로는 처음으로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했으며 산업자원부 차관, 장관을 거쳐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및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