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문화재 지킴이로 나선 외국계 기업의 ‘이색 현지화’

CLOSER LOOK

수개월째 국내 온라인 게임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oL)’의 개발사 라이엇게임즈는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미국계 기업 라이엇게임즈가 좀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한국 문화재와 접목된 사회공헌 활동 때문이다. 국내 문화재 지킴이로 나선 라이엇게임즈가 최근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 주목받고 있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지난 1월 7일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뜻깊은 행사가 개최됐다. 100여 년 동안 해외 박물관에서 잠자고 있던 조선 시대 불화(佛畵)가 반환된 것이다. ‘석가 삼존도(Korean Sakyamuni Triad Painting)’라는 이름의 이 불화는 미국 버지니아 주 노포크 소재의 ‘허미티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다. 18세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이 불화는 3미터가 넘는 비단에 석가모니를 포함해 10대 제자로 알려진 ‘아난 존자’와 ‘가섭존자’가 그려져 있다. 기존에 알려진 조선시대 불화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크고 도상의 배치가 희소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미티지박물관이 매긴 해당 불화의 가치는 약 15만 달러(약 1억6,000만 원)다.

과거 일제강점기에 반출된 이 불화는 이후 뉴욕에서 진행된 경매를 통해 허미티지박물관이 인수, 지금까지 보관해왔다. 아쉽게도 현재 이 불화는 일부분 훼손이 진행된 상태다. 보관 장소를 찾지 못한 박물관 관계자가 불화를 천장에 매단 채 보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문화재 반환이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번 반환에 큰 역할을 담당한 곳이 외국계 게임업체라는 점 때문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 점유율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 개발사 라이엇게임즈의 한국지사 라이엇게임즈코리아는 이번 반환에 관련된 비용 약 3억 원 일체를 지원했다. 문화재 반환 사업에 대한 기업 지원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외국계 기업의 참여는 이번 라이엇게임즈코리아가 처음이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독창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불화를 국내로 다시 들여온 데는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공헌이 컸다”며 ”3억 원의 지원을 통해 문화재를 반환할 수 있도록 도와준 라이엇게임즈코리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승현 라이엇게임즈코리아 대표이사는 반환 사업 지원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회사가 왜 이런 일에 참여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문화유산을 지켜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껴왔다. 이번 활동이 많은 사람에게 문화재의 소중함을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이 대표의 말처럼 라이엇게임즈의 이번 문화재 반환 지원 활동은 꽤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다. 그 이면에는 기업 철학과 본사·지사의 확고한 의지가 한몫했다. 지난 2005년, 문화재청은 한 문화재에 한 사람이 동참하는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을 본격 시작했다. ‘한 문화재 한 지킴이’운동은 문화재와 자원봉사자 또는 단체를 연결해 해당 문화재를 가꾸고 지키는 활동이다. 문화재 지킴이는 해당 문화재 주변 정화 , 홍보 및 모니터 등 각종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12년 초, 문화재청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을 외국계 게임사 관계자로 소개한 그는 ‘한 문화재 한 지킴이’운동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당시 문의를 받은 장영기 문화재청 민관협력 전문위원은 말했다. “처음에는 단순 홍보 전략이 아닐까 의심했다. 게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컸고 외국계 회사라는 점은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충분한 이유였다.”

전화의 주인공은 바로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권정현 이사였다. 권 이사는 라이엇게임즈가 진행하고자 하는 문화재 관련 사업의 진정성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지난 2011년 9월 라이엇게임즈코리아의 설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회사 측은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바로 ‘리그오브레전드’ 내 한국형 챔피언 ‘아리’의 6개월 판매수익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권 이사는 말한다. “아리는 구미호 전설을 모티브로 제작된 한국적 캐릭터다. 한국적 미를 살린 캐릭터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 특히 한국 문화, 문화재와 연관된 사회공헌 활동은 지사 설립 전부터 계획된 방침이었다.”

라이엇게임즈가 현지 문화에 맞는 캐릭터를 만든 사례는 중국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오공’과 더불어 ‘아리’뿐이다. 이 같은 사회공헌 활동은 라이엇게임즈 본사의 경영이념과도 직결된다. 브렌던 벡 라이엇게임즈 대표는 “해외 지사 운영의 목표는 이윤 추구를 넘어 그 나라의 기업 시민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현재 라이엇게임즈는 한국 이외에 아일랜드, 브라질, 터키, 호주에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에서 다양한 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라이엇게임즈의 활동은 지사설립 이후 계속됐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 6월 아리의 판매금과 회사의 기부금을 더한 5억 원을 문화재청에 기부했다. 이듬해 7월에는 한국형 캐릭터 ‘신바람 탈 샤코’ 초기 6개월 판매액에 회사 기부금을 더한 6억 원을 문화재청에 추가 기부했다.

이밖에 주요 문화재 청결 활동, 사용자 대상의 역사교육 프로그램, 조선 시대 왕실 유물 복원작업 등 한국 문화유산 보호 및 지지 활동을 다각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번 조선 시대 불화 반환 지원 역시 지난해 7월 발표한 ‘해외소재 한국 문화재 반환사업’의 첫 사례다.

앞으로 라이엇게임즈는 ‘게임=문화’라는 관점에서 문화재청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라이엇게임즈의 일련의 사회공헌 활동은 색다른 방식의 현지화 전략으로 주목된다. 국내 기업들도 해외에서 현지화 전략을 펼 때 라이엇게임즈의 방식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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