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 자리 잡은 럭셔리 비즈니스 호텔 콘래드 서울이 지속가능한 환경 보호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 한평화 포토그래퍼 studiomuse.kr
지난 1월 7일 밤 8시30분. 콘래드 서울 호텔의 조명등이 일제히 꺼졌다. 외부 가로수 주변등, 외관등은 물론 내부 로비와 레스토랑의 실내등 이모두 소등됐다. 심지어 빌딩 외부 꼭대기의 로고 조명등까지 꺼졌다. 호텔에서 전등이 꺼진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호텔 비즈니스는 24시간 365일 늘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콘래드서울의 조명등이 꺼진 것은 비상상황이 발생해서가 아니라 지구를 위한 특별한 결정 때문이었다.
매년 3월 23일에는 세계적으로 친환경 캠페인 ‘어스 아워 Earth Hour’가 열린다. 한마디로 ‘지구촌 전등 끄기’ 행사다. 오후 8시3 0분부터 한 시간 동안 각 기업과 가정이 전등을 끔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하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켜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가자는 것이 행사 취지다. 콘래드 서울은 한발 더 나아갔다.
어스 아워를 연례 행사에 그치지 않고 매달 1회 실천하는 전사적 지구환경보호 활동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닐스 아르네 슈로더 Nils-Arne Schroeder 콘래드 서울 총지배인은 말한다. “콘래드서울 호텔 임직원은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어스 아워를 매달 실천하기로 한 것 역시 그 일환입니다. 임직원은 물론 고객과 함께 환경에 대한 책임의식을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 것입니다.”
도전적인 과제였다. 아무리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지만, 이번 행사는 자칫 고객에게 불편을 끼칠 수 있는 위험이 컸다. 기업 CSR은 대부분 임직원 위주로 이루어진다. 고객에게 전가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더구나 어스아워와 같은 소등행사는 호텔 비즈니스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호텔은 숙소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경험을 파는 곳이다. 콘래드 서울의 슬로건처럼 ‘스마트 럭셔리’한 경험, ‘당신이 중심이 되는 럭셔리(Luxury of Being Yourself)’한 경험을 전달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어스 아워는 자칫 호텔 이용객에게 ‘어두운 경험’으로 남아, 행사 취지를 퇴색시킬 수 있다. 콘래드 서울은 이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성취했을까. 답은 섬세한 연출에 있었다.
먼저 호텔 측은 고객 커뮤니케이션에 힘썼다.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에게 이날 행사 취지에 대해 미리 상세하게 설명했다. 투숙객에게 재생용지로 만든 나뭇잎 모양 초청장 ‘위시 리프 Wish Leaf’를 나눠주며 행사 취지를 알렸다. 슈로더 총지배인은 말한다. “우리 호텔을 찾는 비즈니스 고객은 지구 온난화나 환경에 대한 책임감과 관심이 높습니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 기꺼이 동참하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콘래드서울은 호텔 곳곳에 촛불을 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힘썼다. 37층 이그제큐티브라운지에선 칵테일 리셉션 행사를 열어 고객 동참을 유인했다. 총지배인이 직접 주관하는 리셉션이었다. 위시 리프를 소지한 고객은 누구나 참가해 ‘어스 칵테일 Earth Cocktail’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어스 칵테일은 지구 생명에 꼭 필요한 5가지 필수 요소인 땅, 불, 바람, 물, 마음을 주제로 만든 술이다. 약 70명 고객이 객실 불을 끄고 칵테일 행사에 참가했다. 고객들은 또 위시 리프 뒷면에 소원을 적어 라운지에 마련된 위시 트리 Wish Tree에 매달았다. 호텔 측은 연말까지 위시 리프를 모아 연말에 풍성해진 결실을 선보일 예정이다. 어둠과 불편을 낭만과 기꺼운 경험으로 뒤바꾼 것이다.
“고객 반응은 놀라웠어요. 다들 스케줄이 있었지만 동참해주셨어요. 리셉션 분위기도 아주 좋았죠. 우리에게 직접 친환경을 위한 아이디어를 더해주신 분들도 계셨어요.” 슈로더 총지배인은 말한다.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은 진정한 럭셔리 이상의 경험이고 문화입니다.”
어스 아워로 불편을 호소한 고객은 없었을까? 실제 두 팀이 이 시간에 레스토랑에서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해야 했다. 호텔 측은 미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별도 프라이빗 다이닝 룸을 제공하는 배려를 했다.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사실 호텔 임직원들은 꽤나 긴장했다. 행사 몇 주 전부터 조명등 밝기를 낮춰 연습을 하며 준비했다. 콘래드서울은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친환경을 실천하고 있다.
지붕과 벽면에 태양열 패널을 설치해 건물의 온수공급과 비상전력공급에 활용하고 있다. 빗물을 모아 공용 화장실 변기 용수로 쓴다. 또 내부 오수를 정화해 화장실에서 재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 받아, 미국의 민간 환경 단체인 그린빌딩위원회USGBC로부터 친환경 인증제도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골드’ 등급을 획득했다.
한국그린빌딩협회로부터는 친환경 건물 ‘우수’ 등급을 받았다. 또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으로 올 초부터 ‘재생비누로 생명 살리기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객실에서 쓰다 남은 비누를 모아 아시아 저개발 국가에 보내고 있다. 호텔에서는 무수히 많은 비누가 버려지는 반면 저개발 국가에선 매년 180만 명 어린이들이 위생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이 중 비누로 손씻기만 실천해도 90만 명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이에 콘래드서울은 DHL코리아와 파트너십을 맺고 매달 첫째 주 화요일 비영리기관인 소프 사이클링 Soap Cycling에 보내기 시작했다. 매달 80~90㎏의 비누를 모아 보내고 있다.
한국 기업의 친환경 활동과 CSR에 대해 물었다. 슈로더 총지배인은 “한국이야말로 세계 여느 나라보다 친환경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한다. “제 모국인 독일만 하더라도 쓰레기를 버릴 때 마른 것과 젖은 것 두 종류로 분류하지만, 한국은 재질별로 분리 수거하고 있어요. 다만 이 같은 활동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 대해선 서구에 비해 덜 익숙하죠. 문화적인 배경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총지배인은 말을 잇는다. “기업 CSR은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오진 않습니다. 그래서 CEO의 마인드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임직원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르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달라집니다. 임직원이야말로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이자 매개체 구실을 하니까요. 그래야 진정한 CSR이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