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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정복을 위한 대장정

THE AIDS CURE

에이즈(AIDS)의 원인 바이러스인 인간 면역 결핍 바이러스(HIV)는 우리의 DNA 속에 숨어 있어 치료가 극히 어렵다. 과학계가 이렇게 숨어있는 HIV까지 싹 쓸어버릴 해법에 바짝 다가섰다.


2007년 무명의 독일 의사가 유명 에이즈 학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하겠다며 지원했다. 그는 자신이 에이즈 환자 1명을 완치했다고 주장했다. 일명 ‘베를린 환자’로 불리는 41세의 그 환자는 에이즈와 백혈병을 앓고 있었는데 HIV에 내성을 가진 기증자의 골수를 이식하자 HIV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학회 측은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지 게로 후터라는 이 의사에게 강연이 아닌 포스터 발표를 제안했다. 결국 후터 박사는 포스터를 제작해 전시했지만 학회장 뒤쪽 구석에 붙여지면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당시 학회에 참가했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의대 교수인 스티븐 딕스 박사는 우연히 이 포스터를 보게 됐다.
“그야말로 우연이었어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포스터였죠.”

딕스 박사는 포스터의 내용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 했지만 그에 대해 동료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주일 후 미국 에이즈연구재단(amfAR)의 컨설턴트이자 웨일 코넬 의대의 교수인 제프리 로렌스 박사가 우연히 후터 박사의 논문 초록을 발견했다. 로렌스 박사는 1984년 HIV가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를 담은 학계 최초 논문의 제1저자였다. 그 논문도 초기에는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즉 로렌스 박사는 혁신적 발견에 대해 침묵으로 응답하는 학계의 상황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후터 박사의 주장을 믿고 싶었던 그는 2008년 9월 12명의 전문가를 모아 연구결과를 검증할 싱크탱크를 구성했다. 싱크탱크에는 후터 박사와 딕스 박사, 하버드대학 면역학자 주디 리버만 박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에이즈 연구 권위자 데이비드 마골리스 박사 등이 포함됐다. 딕스 박사에 따르면 모든 증거를 정밀 조사한 싱크탱크는 베를린 환자, 즉 시애틀에 거주하는 티모시 레이 브라운의 에이즈가 완치됐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단연코 에이즈 치료 연구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아무리 잘난 과학자조차 HIV 감염을 억제하려면 바이러스의 증식 능력을 막는 길 밖에 없다고 여겼거든요.”

싱크탱크의 연구자들은 곧 후속 조치를 취했고, 현재 10여곳의 연구소에서 브라운의 사례를 기반으로 인체 내의 HIV를 완벽히 박멸시킬 방법을 찾고 있다. 또한 몇몇 기업들은 브라운에게 골수를 기증해 준 사람이 HIV 내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유전자적 돌연변이를 재현할 기술을 개발 중이며, 이미 임상시험에 들어간 곳도 있다.

의학적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연구자금 지원 기관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미 국립보건원(NIH)의 경우 작년 12월 이 분야에 3년간 1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 분야 연구에 앞장서고 있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데이비드 볼티모어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에이즈 완치가 가능하다는 걸 처음으로 인식했다는 점에서 이는 실로 엄청난 변화입니다.”

AIDS는 지금껏 난치병의 끝판왕 격으로 치부됐다. 실제로 HIV는 환자의 세포 속 DNA와 결합하기 때문에 일단 감염되면 세포 스스로는 HIV를 몰아내지 못한다. 게다가 일반 세포도 아닌 인체 면역세포의 DNA를 타깃으로 삼는다. 질병에 맞서 싸우던 투사들을 HIV 생산공장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나면 면역세포의 수가 급격히 감소, 모든 종류의 질병 감염에 취약해지면서 에이즈가 진행된다.

만일 감염 사실이 조기에 발견되면 항(抗)레트로바이러스 약물로 HIV 수치를 낮게 유지함으로써 에이즈 발병을 막을 수도 있다. 이를 위한 약물이 30종 넘게 개발돼 있다. 브라운 역시 1995년 HIV 감염 진단을 받은 후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를 투약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그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렸다. 물론 에이즈와는 상관없었지만 병세가 악화되면서 골수 이식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참고로 골수는 인체의 모든 혈액과 면역 세포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골수가 바뀌면 그 사람의 면역 체계도 완전히 바뀐다.

후터 박사는 이런 브라운을 치료했던 혈액학자였다. 당시 그는 HIV가 세포 내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하는 유전적 돌연변이에 대한 논문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HIV가 주요 타깃 중 하나인 ‘CD4+ T 세포’에 침투하려면 ‘CCR5’라는 수용체가 필요한데 CCR5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CCR5-델타32’가 되면 HIV 내성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이는 자연 상태에서 불과 1% 정도의 인간에게 일어나는 희귀한 돌연변이지만 브라운은 운 좋게도 자신에게 맞는 골수를 가진 CCR5 돌연변이 기증자를 찾았다.
“후터 박사께서 그 기증자의 골수 줄기세포를 이식받으면 에이즈도 완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더없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믿지는 않았어요.”

브라운의 이식수술은 2007년 2월 6일 이뤄졌다. 수술을 앞두고 전신방사선 요법으로 기존 면역체계를 없애는 등 혹독한 화학 및 방사선 요법을 받았음에도 수술 후 단 2주일 만에 건강해진 몸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초 후터 박사는 항레트로바이러스 약물 투약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브라운은 이런 화학제제가 이식받은 줄기세포의 안착을 방해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식 수술팀도 아직 연약한 새 세포에 손상이 갈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후터 박사에게 전했다. 그래서 투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뒤 놀랍게도 브라운의 몸에서 HIV의 징후는 깨끗이 사라졌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그 후로도 다수 보고됐다. 작년 3월 한 연구팀은 선천적으로 HIV에 감염돼서 태어난 미시시피주의 3살 여아가 치료를 중단한지 몇 개월 만에 완치됐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연구팀은 HIV감염 후 10주 내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를 투약 받은 환자 중 14명이 투약을 중단하고도 수년 이상 건강히 살고 있다는 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환자 중에는 약을 끊고 11년 동안 건강을 유지한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사례들 가운데 오랜 기간 여러 연구소에서 뇌, 장, 결장, 림프절 등에 대한 철저한 생체검사를 거쳐 HIV의 완치를 확증 받은 것은 브라운이 유일하다. 또한 골수 이식은 전 세계 3,400만명의 HIV 감염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대안이 될 수 없다. 기증자를 찾기도 어렵고, 설령 찾는다고 해도 환자 3명 중 1명이 결국 숨질 만큼 위험도가 높은 수술이다.

이식 효과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도 않는다. 2012년 7월 보스턴에 거주하는 2명의 HIV 감염 환자가 브라운처럼 골수 이식을 받고 HIV가 사라졌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들은 브라운과 달리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를 투약 받았으며, 지난해 초 투약을 중단하자 다시 HIV에 감염됐다. 골수 기증자가 HIV 내성이 없었던 것인지, 이식시술 전에 시행한 화학·방사선 요법에서 HIV에 감염된 면역세포가 모두 제거되지 않아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HIV가 체내에 일부 남아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브라운의 사례는 여전히 큰 희망이다. 이론에 머물러 있던 에이즈 치료법이 실제로 가능하며, HIV 감염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환자도 완치될 수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HIV 테스트는 보통 혈액 속에 들어 있는 HIV의 리보핵산(RNA) 함량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혈관을 고속도로라고 가정하면 그 고속도로에는 HIV에 감염된 CD4+ T세포가 자동차처럼 달리고 있는데 HIV 테스트는 특정 도로 위의 자동차 수를 기반으로 전국의 자동차 수를 추론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의 의대 교수인 마이크 맥큔 박사에 의하면 이 방식에는 한 가지 논리적 허점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발견되지 않더라도 자동차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어요. 그날만 유독 운전자들이 차를 몰고 나오지 않았을 수도, 주유소에 휘발유가 떨어졌을 수도, 자동차 제조공장이 폭격을 맞은 것일 수도 있어요.”

실제로 1995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의대의 로버트 실리치아노 박사팀은 대다수 HIV가 CD4+ T세포 내에 숨어서 조용히 쉬고 있음을 밝혀냈다. 치료를 중단하는 순간 이렇게 잠복해 있던 HIV들이 활동에 나서서 급속히 세를 확장한다는 것이다. 차고 안에 자동차를 숨겨 놓고 질주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이 조차도 HIV 활동의 전부가 아니다. 예컨대 연구자들은 HIV의 대피소 역할을 해주는 면역세포가 CD4+ T세포 외에도 수지상 세포, 단핵백혈구, 대식세포 등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작년 10월 실리치아노 박사팀은 세계적 권위의 국제학술지 셀(Cell)에 발표한 논문에서 “HIV가 잠복해 있는 CD4+ T세포의 숫자만 해도 기존에 생각했던 것의 최대 60배에 달할 수 있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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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야말로 에이즈 치료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학자들은 아직 HIV의 대피소로 활용되는 면역세포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못하며, 잠복해 있던 HIV가 각 세포에서 어떤 기전에 의해 활성화 되는지는 더더욱 모른다. 이 의문을 해소하려면 앞으로 엄청난 분량의 연구가 필요하다. 전 세계의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HIV에 감염된 조직을 가급적 많이 확보해 연구하는 것도 필수다.

HIV 대피소를 없애버릴 전략 중 가장 흔한 것이 ‘충격과 사멸’이다. 비활성화 상태의 HIV에 충격을 가해 활성화를 유도한 뒤 그들이 취약할 때 공격해서 사멸시키는 방법이다. NIH가 자금을 지원하고 있는 3개의 에이즈 연구프로젝트 중 실리치아노 박사와 거대 제약사 머크가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에서 이 방식을 중점 연구하고 있다.
“HIV의 잠을 깨울 물질이나 저분자, 약품 등을 찾는 것이 궁극적 목표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후보물질을 전혀 찾지 못했습니다.”

브라운의 사례와 관련해 실리치아노 박사는 골수 이식을 통해 HIV의 대피소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음이 증명됐다는 점에 큰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미시시피주의 아기는 브라운과 다른 케이스로 봤다. 태어난 직후, 즉 워낙 일찍부터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 치료를 받아 HIV 대피소가 굳건히 만들어질 틈이 없었다고 보는 견해다. 프랑스 연구팀이 언급한 14명 역시 HIV 감염 직후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 치료를 받으면서 대피소의 크기가 작았기에 면역 체계가 HIV를 통제할 수 있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사례들이 극히 드물다는 거예요. 대다수 환자는 어떻게든 HIV 대피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치료를 할 수 없어요.”

CCR5 수용체에 대한 의존성이 HIV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익히 주지하고 있던 사실이다. 브라운의 사례는 이 가설을 과학적 진실 수준으로 격상시켰다. 이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바이오기업 샌가모 바이오사이언스와 캘리뮨은 유전자 요법을 이용, CCR5를 무력화하거나 아예 파괴하려 한다. 이중 캘리뮨은 HIV 감염 환자의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분리, CCR5를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 뒤 이 줄기세포를 환자에게 재이식해 새로운 면역체계를 구축하는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이 방식에는 2가지 장점이 있다. 이식된 줄기세포가 HIV에 내성을 갖춘 면역세포를 꾸준히 공급해 준다는 것, 그리고 환자 본인의 줄기세포를 이용하므로 면역거부반응의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 여름에 임상시험에 들어간 터라 이론만큼 실제로도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너무 이르지만 말이다.

샌가모의 경우 이보다 조금 더 진보된 기술을 쓴다. CCR5의 변형이라는 부분은 동일하지만 환자의 T세포 속 CCR5를 표적으로 삼는다. ‘아연-집계 뉴클레아제(ZFNs)’라는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T세포에서 CCR5 유전자를 잘라내고, 대량 배양한 유전자 조작 T세포를 환자에게 재이식하는 메커니즘이다. HIV 감염 환자 9명을 대상으로 한 샌가모의 자체 실험에서 유전자 조작 T세포를 1회 투입한 것만으로 3년 후 모든 피험자들의 HIV 대피소 크기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부문 조프 니콜 부사장에 의하면 또 다른 8명의 환자로 추가 실험을 실시한 결과, 한 피험자가 치료를 중단한 이후 2013년 12월 현재까지 20주 동안 HIV 수치가 검출불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T세포의 수명주기가 짧은 탓에 효과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주목할 만한 성과임에는 틀림없다.

샌가모는 향후 이 기술을 줄기세포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성공한다면 HIV에 내성을 갖춘 T세포를 체내에 사실상 무한히 공급할 수 있다. 그런데 건강한 면역세포의 주입이 HIV에 감염된 면역세포의 숫자를 줄이는 이유는 뭘까. 이는 과학적으로 매우 흥미로운 질문이다. 논란의 소지가 큰 주장이기는 해도 HIV 대피소가 완전한 휴면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다. 미국 마이애미대학 약학과 마리오 스티븐슨 교수는 이와 관련해 HIV 대피소를 물이 반쯤 찬 싱크대로 비유했다.
“이 싱크대의 수위는 언제나 전날과 똑같아요. 하지만 매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물갈이가 이뤄지고 있죠. 깨끗한 물이 조금씩 들어오고, 그만큼의 헌 물이 빠져나갑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물의 수위는 변함없지만 싱크대에는 깨끗한 물이 들어차는 겁니다.”

딕스 박사는 이를 HIV 대피소의 역동성으로 해석한다. HIV는 매일 새로운 세포를 감염시키며, 기존에 감염됐던 세포들은 순차적으로 사멸한다. 즉 HIV의 침투가 불가능한 유전자 조작 T세포를 주입하면 새로운 감염은 차단되면서 이미 감염된 T세포의 사멸만 진행되다가 더 이상 감염시킬 T세포가 사라지는 순간 HIV도 숨을 거둘 수밖에 없다.
“HIV가 유전자 조작되지 않은 숙주 세포를 모두 사멸시킬 때까지 감염 상태를 방치하는 기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샌가모와 캘리뮨이 추구하는 치료법의 효과가 입증되고, 별다른 부작용도 없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이 방법은 너무 비싸고, 수술 시 침습성도 커서 모든 HIV 감염자의 치료법으로 쓰기에는 물의가 있다. 그 때문인지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서 HIV를 퇴치하려면 치료와 예방을 병행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치료제에 더해 백신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백신 개발 분야도 치료제와 마찬가지로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해왔지만 최근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한 진전이 이뤄졌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의 데니스 버튼 박사팀이 백신역할을 할 수 있는 면역물질인 ‘중화항체(neutralizing antibody)’들을 연구한 끝에 2009년 매우 강력한 HIV 백신 2종을 선보인 것. 그리고 이것이 촉매가 되어 많은 연구팀들이 HIV 백신 개발에 뛰어들었다. 버튼 교수의 설명을 빌리면 그렇게 수백 종의 에이즈 백신 후보물질이 확보됐다. 개중에는 건강한 T세포가 HIV 감염 세포를 공격하도록 만드는 것도 있는데 원숭이 실험에서 큰 효용성이 입증된 상태다. 작년 10월에는 한 연구팀이 HIV가 CCR5를 붙잡을 때 쓰이는 돌출된 단백질의 구조를 파악해냈다. 이 단백질을 타깃으로 삼는 백신 개발의 길이 열린 것이다.

지금까지도 브라운은 세계 최초, 세계 유일의 에이즈 완치 환자라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HIV 감염환자들은 그를 행운의 사나이라 부르지만 그의 재활과정은 엄청난 고통의 연속이었다. 요실금에 시달렸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급성 패혈증에 걸려 인위적인 혼수상태에 처해져야 했던 일도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브라운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자신의 사례가 게재될 때까지 완치됐다는 걸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논문을 보고서야 의학계가 저의 완치를 인정했음을 깨달았죠. 그제서야 정말로 제가 치료됐다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HIV의 면역세포 공격 전술

1) HIV는 ‘CD4’라는 표면수용체를 가진 면역세포를 공격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CD4+ T세포’로 HIV의 표면에서 돌출돼 나온 ‘gp120 단백질’이 CD4와 결합한다.
2) 이 결합에 의해 HIV에 구조적 변화가 발생, 표면에서 또 다른 단백질 ‘gp41’이
노출되면서 CD4의 보조 표면수용체인 ‘CCR5’와 결합한다.(일부 세포는 보조 표면수용체가 ‘CXCR4’다.) 이로서 HIV가 세포막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
3) HIV가 면역세포 내에 유전물질을 방출한다. 이 유전물질은 세포의 DNA와 결합한다. 이렇게 HIV에 감염된 면역세포는 HIV를 복제하거나 활성화될 시점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4) CCR5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CCR5-델타32’가 된 면역세포에는 HIV가 결합할 수 없다. 다수의 연구팀이 CCR5-델타32를 주입, 이 같은 자연적 HIV 내성을 부여할 방법을 연구 중에 있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

매년 전 세계에서 25만명의 아이들이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난다. 하지만 미시시피주 아기의 사례는 이들 중 수백 명 혹은 수천 명이 이미 완치가 됐음에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들게 한다. HIV에 감염된 어머니가 출산한 아기는 출생 30시간 내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를 투약 받는다. 이후 검사를 통해 아기의 HIV 양성 반응이 확인되면 평생을 이어질 치료가 본격 시작된다. 반면 미시시피주 아기는 생후 15개월에 항레트로바이러스 제제 투약을 중단했다.

아기가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는 투약이 1년 이상 중단된 상태였지만 병세는 크게 악화되지 않았고, 미약한 HIV 반응만 보였다. 이 사례로 인해 항레트로바이로스 제제가 HIV 대피소가 형성되기 전 HIV를 사멸시킬수도 있다는 관측이
대두됐다. 타당성을 검증을 위해 다수의 연구팀이 출생 1~2일 이내의 HIV 감염 신생아들을 대상으로 생후 1~2년 되는 시점에 치료를 중단한 뒤 HIV의 증식 여부를 확인하는 야심찬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런 실험에 자금을 지원 중인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안소니 파우치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통제된 환경 하에서 더 많은 환자들에게 미시시피 아기의 사례를 재현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게 이 실험의 핵심입니다.”

프랑스 파리데카르트대학(제5대학)과 네케르병원에서 바이러스학을 연구 중인 크리스틴 루주 박사팀은 이와 관련해 HIV에 감염된 10대 청소년들에게 잠시 동안 약을 먹지 않는 이른바 ‘투약 휴가’를 주고, 체내 HIV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최우선 목표는 병세의 호전입니다. 치료는 그 다음이에요. 에이즈 완치라는 대장정이 이제 시작된 겁니다.”

RNA DNA의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단백질을 합성하는 분자.
ZFNs Zinc-finger nucleases.
침습성 (invasion, 侵襲性) 인체에 물리적 상처를 입히는 정도.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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