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키 주의 원로 상원의원 매코널이 공화당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BY TORY NEWMYER
ILLUSTRAION BY HELLOVON
일단 한 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워싱턴 정가에서 통 큰 협상 타결이 올해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초조한 의회 의원들에게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이민법 개정이든, 세금 제도 개혁이든, 대규모 고용 패키지든, 획기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졌다(당에 충성한 정치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11월 5일, 선거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금과 완전히 다른 정치질서를 맞을 수도 있다. 그때가 오면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평가를 결정 짓는 데 2년의 시간을 남겨 둘 것이다.
물론 미래를 바꾸는 데 대통령 자신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바마에 대한 평가의 상당 부분은 여당인 민주당원들보다 공화당원들에게 달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는 연방 정부가 앞으로 수년간 무엇을 규제할지, 무엇에 세금을 매길지, 어디에 돈을 쓸지에 대한 많은 부분이 올해 72세의 남부 출신 미치 매코널 Mitch McConnell 단 한 명에게 달려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가 계속 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가정 아래에서 말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right now)’을 직시해야 한다.
켄터키 주 공화당 상원의원 매코널은 상원의 통제권을 쥐겠다는 정치적 야망을 거의 성취했다. 또 상원의원으로서 지낸 다섯 번의 임기 중 재선이 가장 아슬아슬하게 가까워진 상황이기도 하다. 상원의 소수당 대표인 매코널은 양쪽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억만장자 매트 베빈 Matt Bevin과 경선을 치러야 하고, 왼쪽으로는 민주당과 이미 치열한 혈투가 예고돼 있다(현재 35세의 현직 켄터키 주 국무장관인 민주당 선두주자 앨리슨 룬더건 그라임스 Alison Lundergan Grimes가 여론조사에서 약간 앞서 있다). 언론에서는 후보들과 외부 단체들이 이번 켄터키 주 선거에 1억 달러 이상을 선거 비용으로 쓸 것으로 예상하는데, 대부분의 자금이 주 밖에서 유입될 것이다.
매코널은 이번 선거에 대해 상세히 밝히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되도록 선거 캠페인 전략을 광고하지 않는다”며 “상대에게 미리 알려주기보다는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대접전이 예상되는 선거는 어떤 정치인이든 흥분시킬 만하다. 그러나 이번 도박의 경우에는 걸려 있는 ‘판돈’이 보기보다 클 수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오바마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연방정부에서 어떤 법안이 나올지도 좌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7개월이 매우 중요하며, 수많은 로비스트, 정치 논객, 비즈니스 리더들이 이 조그만 블루그래스 스테이트 Bluegrass State *역주: 켄터키 주의 별칭. 전통 컨트리 음악인 블루그래스의 본거지에서 유래의 진흙탕 선거전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매코널이 5월 20일 보수파 도전자 베빈의 공격을 무사히 받아 넘기고, 현직 동료 의원 네 명이 막강한 티파티 Tea Party의 공세를 물리치도록 이끌고, 자신도 11월 선거에서 살아남는 고난도 ‘해트트릭’에 성공한다면 공화당을 중도로 되돌리면서 티파티의 극단주의를 종식 시킬 유일무이의 원내 공화당 인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매코널은 “더 기업 친화적이며 자유기업 친화적인 정부를 원한다면, 지금부터 2016년 사이에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상원을 바꾸는 것뿐”이라며 “메인 주에서 텍사스 주까지 거의 모든 공화당원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민간 기업을 대변하는 당이라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매코널 캠프 측에 따르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그는 공화당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 기회를 갖게 된다. 그동안 여러 번 약속했으나 의지나 능력 부족으로 단결해서 지지하지 못했던 경제성장과 개혁 관련 법안들을 드디어 제안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패배한다면, 공화당 내분으로 인한 혼란이 지속 될 것이고 2016년과 그 이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매코널은 대민 접촉에 타고난 소질이 없기 때문에 ‘공화당의 영혼(the soul of the Republican Party)’을 둘러싼 싸움에 더욱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캠페인에서 호들갑스럽게 정다운 악수를 나누거나, 화려한 수사를 섞어 연설을 하는 것보다는 막후 교섭에 어울리는 인물이다. 게다가 선거유세에 서툴고,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서 바라는 민생 행보도 꺼린다. 한 켄터키 주 공화당 관계자는 “그는 유권자들 앞에서 아기들에게 뽀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말 그대로다). 게다가 정치적 제스처도 능숙하지 않다. 매코널은 총기 소지 권리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는 의미에서 ‘보수주의 정치 행동 회의 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 무대에 올라 화승 장총을 머리 위로 휘둘렀다가 크게 조롱을 받았다. 캔터키 주의 한 신문은 그의 행동이 1988년 마이클 두카키스 Michael Dukakis가 탱크를 타고 행진했다가 캠페인을 망친 악명 높은 사건에 비할 만하다고 평했다. 그리고 매코널이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만 담은, 참담한 캠페인 광고가 뒤를 이었다. 이 광고를 두고 데일리 쇼 Daily Show를 진행하는 코미디언 존 스튜어트 Jon Stewart는 곧바로 ‘매코널링 McConnelling’이라고 불리는 인터넷 패러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이 2분 3초짜리 동영상은 랩에서 오페라 아리아까지 어떤 음악과든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여기에 켄터키 주에서 실시된 몇 건의 여론조사 결과에서 매코널의 지역구 주민들까지 그가 한 일을 별로 지지하지 않는다고 나타난 것까지 고려하면, 그의 입지는 더욱 취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매코널은 이길 수 있다고 누구보다도 굳게 믿는다. 그는 보좌관에게 “배수진을 쳤을 때는 대단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원의 최고 공화당 의원 매코널은 지난 5년간 배수진을 치고 있던 때가 그러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았다. 2008년 11월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백악관을 탈환하고 상원 의원수를 59명으로 늘렸고(그리고 얼마 안 가 의사 진행 방해가 통하지 않는 인원인 60명까지 늘었다), 당시 매코널 자신도 재선에 실패할 뻔했다. 선거 운동 막바지 몇 주 동안은, 그의 캠페인에 참여했던 인사들마저 그가 분명 낙선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참패의 충격에 빠진 공화당원들이 워싱턴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언제 포기하느냐 보다는 어떤 식으로, 얼마나 빨리 포기하느냐가 관건이었다. 매코널은 본능적으로, 싸움을 걸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오바마 대통령의 대표적인 국내 성과가 될 보건 개혁의 초안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매코널은 공화당의 대응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원 회의실 지척에 있는, 호두나무로 꾸며진 맨스필드 룸 Mansfield Room에서 회의-이후 매주 수요일 정기 모임이 됐다-를 열고 공화당 동료들을 소집했다. 그가 당원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수적으로 우세하다. 그리고 이번 논쟁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로 뭉치는 것이다.”
상원 협의회를 통제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매코널은 정치인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았다. 그는 이미 커리어의 40년 중 대부분을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해하는 제도를 마스터하며 보낸 것이다. 그는 보좌관으로 출발해 1984년 상원 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그의 승리는 선거 캠페인의 미디어 전략을 총괄한 로저 에일스 Roger Ailes-이후 폭스 뉴스 Fox News 수장에 올랐다-의 덕을 본 부분도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매코널은 노련한 수완가로 성장했다. 그는 동료들 개개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더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잘 알았다. 그의 주위에는 정치에 능통한 인물들이 많았다. 아내 일레인 차오 Elaine Chao는 중국 출신 해운 거물의 딸로, 조지 W. 부시 대통령 내각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다. 그녀는 2009년에는 영향력 있는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 Heritage Foundation에 둥지를 틀었다(박스 기사 참조).
우선 매코널은 역사적으로 민주당 의원들에게 훨씬 유리했던 주제인 보건 개혁에 대해 공화당 의원들이 최신 지식을 갖추도록 했다.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매코널은 가능한 한 시간을 많이 끌려고 했다. 법안 처리 과정이 지연될수록 여론이 악화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한편, 주례 협의회 덕분에 처음에는 민주당과 협상할 의사가 있었던 소수의 공화당 의원들까지 뭉치게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매코널은 동료들을 지속적으로 단속했다. 그는 엄격하게 득표수를 관리하는 방법-자신의 첫 선거 캠페인에서 개발했다을 썼다. 그는 고등학교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친하게 지내는 그룹(치어리더들, 농구팀 등)마다 한 명을 자신의 대리자로 정해 친구들의 표를 모으고 집계하도록 한 경험이 있었다. 이 전략은 효과를 발휘했다. 2009년 12월 24일 보건 개혁 법안이 표결에 부쳐졌을 때, 단 한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도 이탈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매코널(그리고 그의 동료 공화당 의원들)이 의사방해를 했음은 자명하다. 결국, 법안을 무마시키려는 노력이 입법 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당시 매코널의 보건 정책 자문을 맡았던 메건 호크 Megan Hawke는 “처음부터 매코널은 개인적으로, 상원 민주당 의원들과 행정부가 그가 좋아할 만한 법안은 제안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매코널은 의원들을 모아서 곧 다가올 논쟁에 대비하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는 2008년 12월에는 오바마케어 Obamacare 법안이 정확히 어떤 것일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가 할 일은 당 의원들을 모아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는 것이었다. 꽤 실망스러운 선거였고, 우리가 향후 2년 간 정책에 영향을 미칠 능력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일화를 보면 한편으로는 왜 매코널의 공화당 동료들이 그가 재선되기를 그렇게 바라는지 알 수 있다. 의회를 벗어나면, 매코널은 선거 유세에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의회 안에서는 노련한 정치 투사이고, 영리한 전략가다. ‘상원의 병법가 손자(孫子)’라고 할 만하다. 올 11월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이 오바마케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매코널의 전략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초기 징후 중 하나로, 지난 3월 플로리다 주 보궐 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에서 승리한 것은 어느 정도 보건법과 관련된 우려 때문이었다). 민주당에 공화당의 협조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법안의 책임을 온전히 민주당의 손에 떠넘긴 것이다. 그러면서 민망하리만치 형편없었던 오바마케어 홈페이지(Healthcare.gov) 오픈공화당의 자충수였던 정부 셧다운 피해를 상쇄할 만한 사건이었다-도 민주당의 책임이 됐다.
공화당이 소수였기 때문에 매코널은 월가의 도드-프랭크 Dodd-Frank 개혁을 막기에는 수적으로 너무나 열세였다. 그러나 그는 상원 의사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우회로를 적절히 활용하는 기술-여러 해 다수당 원내 총무를 역임하며 터득했다-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다. 2009년 말 상원 토론이 가까워지자, 매코널은 뉴욕에서 다수의 금융업계 임원들이 참석한 자선기금 모금 만찬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당시 메트라이프 MetLife CEO였던 로버트 헨릭슨 Robert Henrikson은 매코널에게 회사의 중요 헤지 전략을 금지할 법안 제안 중 특정 규정에 대해 우려를 언급했다.
둘의 대화를 목격한 한 참석자에 따르면, 매코널은 헨릭슨에게 당시 재선이 불투명했던 네브라스카 주의 민주당 보수파 상원의원 벤 넬슨 Ben Nelson과 이야기를 해보라고 충고했다. 매코널은 헨릭슨에게 “벤 넬슨은 2012년 재선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며, “넬슨이 선거에서 이기려면 공화당처럼 행동해야 하고, 상원 다수당 대표 해리 리드 Harry Reid(민주당, 네바다 주)도 넬슨의 그런 행동을 묵인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주 보험 담당 커미셔너 출신인 넬슨이 해당 이슈를 제대로 이해하고 잘 홍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코널의 단 한 가지 조건은 ‘당신을 그에게 보냈다는 것을 넬슨이 절대 알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2008년 선거 참패 후 매코널이 그의 세력을 결집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 때, 공화당을 분열시킬 더 큰 세력이 힘을 모으고 있었다. 전략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갖춘 매코널마저도 켄터키 주를 비롯해 미국 전역의 정치 지평을 송두리째 바꾼 티파티 혁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허를 찔렸다. 매코널이 창립한 켄터키 당 지부(켄터키 주 프랭크포트 Frankfort에 있는 본부 건물은 그의 이름을 땄다)는 생각보다 너무나 취약했다. 블루그래스 스테이트의 2010년 공화당 경선에서 갑자기 나타난 후보가 충격적으로 승리한 다음에야 사태의 심각성이 전달됐다.
경선을 앞두고, 매코널은 짐 버닝 Jim Bunning 공화당 상원의원이 은퇴 결정을 내리도록 배후에서 움직였다. 하버드 출신의 부유한 주 국무장관 트레이 그레이슨 Trey Greyson에게 길을 닦아 준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슨은 지역의 안과의사 출신 새내기 정치인 랜드 폴 Rand Paul의 도전에 직면했다. 랜드 폴은 자유의지론자(libertarian) 진영의 영웅으로 꾸준히 대선에 도전해 온 론 폴 Ron Paul의 아들이다. 현직 의원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던 상황에서 랜드 폴은 아웃사이더 이미지를 적극 홍보했다.
폴은 또 매코널의 오랜 숙적인 짐 드민트 Jim DeMint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전 상원의원이 설립한 상원 보수주의 펀드(Senate Conservatives Fund, SCF)-최대한 보수적인 후보들을 공화당 경선에 진출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의 지지도 받았다. 선거 2주 전, 매코널은 드물게 TV 카메라 앞에 직접 나서 그레이슨에게 지지를 보내면서 폴의 모멘텀을 저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막상 결과가 나왔을 때 그의 캠프에서는 아무도 준비돼 있지 않았다. 경선 투표율은 그레이슨 진영에서 예상했던 수치의 두 배 가까이 나왔고, 폴은 주 전역에서 무려 23포인트 격차로 앞섰다. 그레이슨은 “우리는 적절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며 “우리는 기존 체제와 워싱턴 정계를 향한 분노를 달래는 데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실제로 매코널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충격은 득표율 격차만이 아니었다. 폴은 매코널이 민주당 상대 후보를 동부 엘리트의 도구라고 몰아세웠던 오래된 ‘우리 대 그들’ 공식을 성공적으로 차용했다. 다만 폴의 버전에서 ‘그들’은 부유층 체제 전체-매코널을 워싱턴 지도부로 올라가도록 도왔다-를 포함한 것이었다.
매코널은 실력 있는 정치 투사를 알아볼 만큼 충분히 전투 경험이 있는 백전노장이었다. 그는 정치 신인 폴에게 경선 승리를 축하하는 전화를 걸어, 총선 캠페인에서 지지를 약속했다. 그 후 두 사람은 탄탄한 실무 관계를 쌓아 왔다. 둘의 관계는 상호 이해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폴은 2016년 대선 도전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의회에서 영향력이 큰 선배 의원의 도움이 필요했고, 매코널은 새로 부상한 우익 세력에게 자기 주에서 신뢰를 얻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폴을 워싱턴에 진출시킨 힘은, 매코널이 불식시켜야 할 세력(그가 공화당을 친기업적이며 선동적이지 않은 ‘완충 지대’로 되돌리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폴을 비롯한 신진 강경파는 당의 축을 중도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매코널이 그 부담을 지고 있다. 그는 산업용 대마초 합법화 시도를 지지했고(농담이 아니다), 정부의 무인기 정책에 반대하는 의사진행 방해 연설에 참여했고, 심지어 론 폴과 랜드 폴의 ‘연준 감사(Audit the Fed)’ 캠페인도 수용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폴과 그의 동료 티파티 일원들이 요구한, 공화당의 예산 배정 관행 (earmarking: 각 지역의 프로젝트들을 위한 비용을 예산 지출 법안에 포함시키는 것) 폐지였다. 이 이슈는 재정적자에 보수적인 매파가 부시 대통령 시절의 예산 낭비를 지적하면서 수면 아래서 끓고 있었다. 그러던 것을 티파티가 수면 위로 끌어냈다.
가난한 주의 재정 충당을 맡은 매코널은 오랫동안 예산 배정 관행을 활용해 자신이 켄터키 주를 위해 일하고 있음을 증명해 왔다. 그는 이 관행의 완전한 철폐에 반대해 싸웠지만 결국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로, 매코널은 지역구 켄터키 주에서 폴의 조카사위 제시 벤튼 Jesse Benton-한때 폴의 정치 수석 보좌관을 지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을 자신의 재선 캠페인 책임자로 임명했다. 벤튼은 켄터키 주 전역에 걸쳐 이미 3,000명 가까운 경찰서장들로 이뤄진 풀뿌리 지지 체제를 구축, 매코널의 지지기반을 확실히 다지려 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피하면서 매코널은 티파티 세력과의 이데올로기적 거리를 좁히면서 과거의 적을 지지세력으로 만들고 있다. TD 아메리트레이드 TD Ameritrade의 창립자인 억만장자 조 리켓츠 Joe Ricketts가 바로 그런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2010년 선거에서 130만 달러를 지원하면서 의회 예산 배정을 지키려는 ‘훌리건들’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고, 이를 철폐하려는 ‘영웅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매코널과 리켓츠는 자주 만나 문제를 논의하면서 우정을 쌓아 이제 동맹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예산 배정 금지 조치의 효력이 발생한 지 몇 달 후 리켓츠 부부는 매코널 부부의 초청으로 2011년 켄터키 더비에 참석했다. 리케츠의 한 측근은 “그가 매코널을 재선시켜 상원의 통제권을 쥐어 주는 것을 2014년 경마대회에 약 400만 달러를 투자하려는 계획의 최우선 순위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매코널이 비록 폴에게 양보하고 리케츠와 화해하기는 했지만, 그의 포용력에도 한계가 있다. 지난 여름, 몇몇 외부 그룹들이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을 포위해 (오바마케어에 대한 예산 지원을 중단시킬 명목으로) 정부 셧다운으로 몰아갔을 때 그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다.
정부 셧다운이 몇 주 동안 지속되면서 공화당 지지도는 곤두박질쳤다. 공화당이 시퀘스터 sequester 지출 삭감-매코널이 협상을 통해 백악관으로부터 얻어낸 가장 중요한 승리다-을 무산시킬 위험에 처하자 매코널이 마침내 직접 나섰다. 그는 다수당 대표 리드와 협상한 끝에 정부 업무를 재개하는 데 합의했다. 이 사건으로 티파티를 견제하지 않았을 때, 얼마나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는지 분명해졌다. 매코널의 수석 보좌관 출신으로 미 상공회의소 고위 간부를 거쳐, 칼 로브 Karl Rove가 설립한 슈퍼 PAC인 아메리칸 크로스로드 American Crossroads에 합류한 스티븐 로 Stephen Law는 “어떻게든 막거나 미루려고 했던 지도부의 노력에도, 슬로모션처럼 서서히 사태가 전개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며 “마치 고열이 났을 때 결국은 저절로 열이 내리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공화당 연합 내부 인사들에게 셧다운 재앙은 현실을 직시하도록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다. 공격적인 반정부 운동에 직면하자, 매코널은 다수의 동료들과 더불어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다. 텍사스 주의 테드 크루즈 Ted Cruz가 이끈 티파티 신진 의원들이 기회를 틈타 그 공백을 최대한 활용했다. 매코널은 그의 상원 협의회 리더십을 탈환해야 했다. 셧다운 초기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모여 매우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된 비공개 회의에서 매코널은 크루즈에게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보건 정책을 지지한다고 비난하던 SCF에서 탈퇴하겠냐”고 물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인사들에 따르면, 크루즈는 그럴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상황이 빠르게 역전됐다. 얼마 후 열린 회의에서 크루즈는 자발적으로 동료들에게 “SCF에 더 이상 내 명의로 기금 기부 요청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크루즈측 대변인은 답변을 거부했다).
매코널은 공세를 계속 펼쳤다. 협의회의 선거 캠페인 담당 기관인 전국 공화당 상원위원회(National Republican Senatorial Committee)가 SCF의 일을 맡았던 외부 컨설팅업체를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올린다고 알렸다. 당원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조치였다. 매코널의 오랜 친구인 루이빌 Lousville 공화당 지부의 일원 빌 스톤 Bill Stone은 “그는 적수를 확실히 쓰러뜨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일단 쓰러뜨리고 나서는 상대의 목을 발로 밟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했다. 완전히 비협조적으로 굴면 그렇게 당한다는 사실을 이제 만천하에 알렸다”고 말했다.
SCF의 대표 매트 호스킨스 Matt Hoskins는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기를 바라지만 “보수파가 다수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상원에 줏대 없는 공화당 의원들이 더 많아지면 부채는 점점 더 늘 것이고 오바마케어는 영영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코널은 또 두둑한 지갑으로 공화당의 권력 유지를 가능하게 해주는 동맹군에게도 강경한 자세를 취해 효과를 봤다. 그의 팀은 지난 두 번의 선거를 앞두고 매코널의 그런 능력을 중심으로 기금 모금 전략을 짰다. 공화당 로비스트들을 워싱턴 시내에 있는 카민스 Carmine’s라는 가족 식당의 별실에서 열리는 만찬에 초청하면서 ‘입장료’를 명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파게티와 미트볼 식사를 마친 후, 매코널은 참석자들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전국 공화당 상원위원회에 개인 기부금 최대 한도액(2012년 당시 3만 800달러)을 기부해야 한다고 통보하고는 말없이 반응을 기다렸다. 불편한 침묵이 한참 이어졌다. 매코널이 선호하는 협상 도구다. 그리고 참석자들은 하나둘 승복했다. 만찬 주최자들은 이런 자리를 ‘샌드백 만찬’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매코널은 “만약 올해 선거 결투에서 살아남는다면 (공화당이 다시 상원을 장악하기 위해 필요한 여섯 석을 추가로 얻는다면) 합의를 기반으로 당을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아슬아슬하게 다수당이 된다면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따라서 협조적인 공화당원들이 선출되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됐다. 크루즈 때문에 매코널이 어쩔 수 없이 부채 상한선을 올리기 위해 표를 모으려고 애써야 했던 사건을 통해 그 필요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매코널의 수석 전략가인 조시 홈즈 Josh Holmes는 “우리가 상원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가 다수당으로서 하는 모든 일이 2016년 대선을 앞둔 당 전체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잘못을 다 공화당 탓으로 돌리려는 세력에게 덜미를 잡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다수당이 될 생각이 전혀 없다.”
당연히 티파티 지지자들은 이렇게 자신들을 무시하는 언행에 코웃음을 친다. 이들은 “보수파 반항아들 중 일부가 단지 무모함이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당에 새로운 에너지와 정책 혁신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티파티 지지자들은 당이 싸울 의지나 용기를 이미 오래 전에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유타 주의 마이크 리 Mike Lee는 조세제도 개혁을 추진하고 있고, 플로리다 주의 마르코 루비오 Marco Rubio는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에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당 지도부와 부딪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측면도 있지만 세대간 갈등 측면이 더 크다. 30년째 현역 의원으로 활동하는 매코널은 1955년 이래로 세 번째로 경험이 적은 상원을 이끌고 있다. 바로 의원 중 46명이 초선이다. 신진 의원들은 상원이라는 제도의 완고한 전통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애초에 당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하는 티파티 지지자들에 따르면, 티파티가 아닌 매코널과 그 측근들이야말로 시대의 요구(그리고 아마도 역사의 흐름)를 거스르는 부류다. 켄터키 주 정치에 입문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매코널은 이제 단 몇 달 안에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 아님을 입증해야 한다.
매코널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아침, ‘의견 청취 세션’이라는 이름이 붙은 행사들에 참석하기 위해 켄터키 주 동부 탄광촌 파이크빌 Pikeville을 방문했다. 첫 행사는 파이크빌 서쪽을 둘러싼 산기슭에 지어진 첨단 의과대학 캠퍼스에서 열렸다. 평소에 시체 해부실로 쓰이는 강의실에서 열린 모임에서, 매코널은 스스로 오바마 행정부의 ‘석탄 전쟁(war on coal)’이라고 부르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입구에서는 미 상공회의소 관계자가 환경보호국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내용의 유인물을 나눠줬다. 미국 전역에서 발전소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한 청문회를 열면서 정작 석탄 생산의 중심지인 이 지역을 제외했다는 내용이었다.
매코널이 두 시간 동안 전달한 메시지는 명료했다. 이 지역의 생계 기반이 파괴된 것은 전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매코널이 정확하게 진단했듯, 불황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는 더욱 감정적으로 힘이 실리는 비판이다. 파이크빌 인근 일부 지역 공동체의 실업률은 무려 30%에 육박한다. 여기에는 저렴한 천연가스를 선호하는 추세도 큰 몫을 했지만, 적어도 이 모임에서는 워싱턴의 민주당 의원들 탓이다. 모임을 마무리하면서 매코널은 해결책을 확실하게 내놓았다. 그는 청중에게 “미국에서는 어떤 상황을 바꿀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선거가 있는 것”이라며 “선거의 승자는 정책을 만든다. 패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분이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 방법은 바로 투표함에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매코널은 파이크빌 의료센터로 향했다. 압도적인 크기의 검은 건물이었다. 비에 젖은 흑요석의 광채가 없다면, 커튼처럼 뒤에 펼쳐진 산의 탄광에서 나온 커다란 석탄 덩어리로 보였다. 매코널 의원은 이곳에서 ‘병원 타운홀’ 행사를 갖기로 했다. 오바마케어가 전국의 보험사들에 어떤 재앙이 될지 설명하는 일련의 모임 중 58번째다. 20여 명의 병원 직원 앞에서, 그는 오전에 했던 주장을 반복하며 “만약 상원이 실제로 바뀐다면, 최소한 대통령이 어려운 선택을 몇 가지 하도록 강제할 힘이 생길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것이 매코널이 재선을 노리면서 내놓은 주장의 요지다. 켄터키 주 출신 워싱턴 정계의 거물로서 진보 진영이 보건 제도와 석탄 산업뿐 아니라, 더 넓게는 켄터키 주의 삶의 방식에 가하는 공격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매코널이 민주당과 협상을 통해 4가지 중대한 예산 교착상태 종식에 합의하면서 입증했듯이, 필요한 순간에 일이 되게 만드는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이런 논리가 가능하다.
물론 매코널의 측근들은 그가 현역 의원이라는 점이 가장 큰 캠페인 자산인 동시에 최대 취약점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민주당 계열 여론조사 기관인 퍼블릭 폴리시 폴링 Public Policy Polling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매코널은 전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상원의원으로 지지도가 30% 이하다(최근에는 켄터키 주에서 상당히 인기가 없는 오바마 대통령마저 매코널보다 지지도가 높다). 매코널의 전략가들은 이번 캠페인이 대부분 긍정적인 방향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누군가 ‘미국을 구원할 10가지 계획’이라고 조롱했던 공약을 내놓을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이 내부 관계자는 “선거 캠페인은 아이디어 경쟁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안타깝지만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대신, 공화당의 전략은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쓴 것과 똑같다. 오바마 대통령의 보건 개혁과 경제 프로그램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 전략은 2010년에는 놀라운 성공을 거뒀고, 2012년에는 그보다 훨씬 효과가 적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명분의 진지함을 입증하기 위해, 협의회가 오바마케어에 대안이 될 법안에 합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코널은 지난해 12월 의회 당 대표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최소한 2014년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단일화 된 아젠다’를 내놓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화당 상원의원 후보들이, 당선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계획을 밝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는 대선이 아니다”라며 “서로 다른 주들에서 동시에 일련의 선거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공화당이 현재 미국이 직면한 중대한 도전과제에 대응할 광범위하고, 내실 있는 법안 플랫폼을 언제 만들 것이냐는 질문에, 매코널은 또 한 번 준비된 답변을 내놓았다. 그는 “우리가 다수당이 되면, 당신이 방금 제기한 그 이슈에 대해 1년 후에 심도 있는 인터뷰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코널의 재산 형성 비결
매코널이 2014년 선거에서 좌우로 직면한 도전에는 최소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도전자들은 모두 그가 5선 의원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지난 여름, 매코널은 그의 총 자산이 900만~3,600만 달러 사이라고 재산신고를 했다(의원들은 재산의 범위만 밝히면 된다). 그가 상원 의원으로 선출된 초기의 여섯 자리 수 재산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액수로, 상원에서 11번째로 부자이다.
선거전에서 이런 사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차치하고, 공직자가 부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부자와 결혼하는 것이다. 첫 부인과 이혼한 매코널은 1993년, 당시 유나이티드 웨이 오브 아메리카 United Way of America 대표였던 유망 공화당원 일레인 차오와 결혼했다. 차오는 해운업계 거물 제임스 차오 James Chao의 6녀 중 장녀다. 그녀의 아버지는 포어모스트 그룹 Foremost Group의 창업주 겸 회장으로서 부를 모았다. 포어모스트는 뉴욕에 본사를 두고 전 세계로 철광석, 석탄, 고철, 밀을 운송했다. 제임스 차오는 매코널 부부 재산의 상당 부분이 된 500만~2,500만 달러 사이라고 추정되는 재산을 증여했다. 차오 가문은 또 매코널의 선거 캠페인과 켄터키 주 공화당 지부의 믿을 만한 후원자로서, 매코널이 현직에 있는 동안 총 39만 1,000달러를 기부했다.
공화당 지도자 매코널은 이번 선거전에 처가의 재원을 다시 한 번 활용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제 중 한 명은 그의 요청에 응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일레인의 막내 동생 안젤라 차오 Angela Chao는 액셀 파트너스 Accel Partners의 유명 벤처 투자자이자 페이스북 Facebook의 주요 투자자인 억만장자 짐 브레이어 Jim Breyer와 결혼했다. 브레이어는 지금까지 주로 민주당 후보들에게 기부해 왔고, 매코널이 반대했던 포괄적인 이민법 개정 노력을 마크 저커버그 Mark Zuckerberg와 함께 재정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안젤라의 첫 남편이었던 브루스 와서스타인 Bruce Wasserstein도 굳건한 민주당 지지자다. 그래도 안젤라는 지금까지 공화당 후보에게만 기부해 왔다.
매코널과 차오의 결혼은 서로의 커리어에 도움이 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차오를 노동장관으로 임명하자 그녀는 남편의 오랜 수석 보좌관과 홍보 담당관을 채용했다. 요즈음 차오는 보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매코널의 숙적 짐 드민트가 현재 운영을 맡고 있다)의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마이클 블룸버그 Michael Bloomberg 뉴욕 전 시장 가족의 자선재단 이사를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