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역삼륜 자전거는 진행방향에 좌우 2개의 바퀴가 있어 감속과정에서 앞으로 쏠리는 무게중심을 지탱할 지지영역의 범위가 넓다. 그만큼 균형을 잃었을 때 안정적인 자세 복원이 가능하다. 자전거 안전사고 중 61세 이상 고령자의 비중이 4분의 1을 차지하고, 사고 시 사망률 또한 고령자가 전체 평균(3~4%)의 2배에 달한다는 점에서 역삼륜 자전거가 갖는 메리트는 결코 적지 않다. 앞바퀴 사이의 공간에 짐을 싣거나 유아를 태울 수 있는 캐리어를 부착한다면 활용도 측면에서도 일반 자전거 대비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역삼륜 자전거는 안전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다. 바로 방향을 선회할 때가 그렇다. 이륜 자전거의 경우 라이더는 코너링 시 몸의 무게중심을 선회하려는 방향으로 옮기고 자전거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는다. 이런 동작을 틸팅(tilting)이라 한다. 그런데 앞바퀴가 2개인 역삼륜 자전거는 바퀴가 프레임에 고정돼 있을 경우 틸팅 동작을 허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억지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다가는 전복될 우려가 크다. 그 위험성은 고속 주행 중 코너링을 해야 하거나 저속이라도 급속한 코너링이 요구될 때 가중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한국자전거종합연구센터가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비틀림 지지 메커니즘(TSM)’으로 명명된 이 기술은 이륜 자전거의 틸팅 기능을 유지하면서 라이더의 무게중심이 기우는 만큼 반대방향으로 복원력을 제공, 균형이 무너지는 사태를 막아준다.
역삼륜 자전거의 진화
국내 자전거 시장은 1990년대 승용차의 급속한 보급 확대로 정체기에 들어갔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며 연평균 18%의 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르네상스를 맞고 있다. 전 세계적 녹색성장 기조와 레저인구의 증가가 부흥에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시장성장과는 별도로 국내 자전거 제조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생산비 상승 등에 따라 생산설비의 해외이전이 이뤄졌고, 브랜드를 앞세운 외산 제품과의 경쟁에서도 밀린 탓이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정부는 지난 2009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 종합대책을 내놓았고, 그 전초기지 역할을 하기 위해 생기원 내에 한국자전거종합연구센터가 설립됐다. 이번에 공개된 조향·틸팅 기술과 이 기술이 채용된 역삼륜 자전거 시제품은 그동안 진행된 연구개발 프로젝트의 성과다.
윤덕재 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장애인의 사회 참여 증가와 고령화를 눈여겨보고 이들 교통약자를 위한 다목적 이동수단으로서 역삼륜 자전거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물론 이전에도 역삼륜 자전거는 존재했다. 대표적 제품이 누워서 타는 자전거로 알려진 ‘리컴번트 바이크(recumbent bike)’다. 자전거계의 스포츠카로 불리며, 소수의 마니아들이 애용하는 모델이다. 그러나 무게중심이 낮아 역동적 질주를 만끽할 수 있지만 라이더의 눈높이가 낮아 주변 교통상황 파악이 어렵고, 차량 운전자가 자전거를 발견하지 못할 위험성도 높다는 것이 한계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자전거 업계는 자동차와 탑승자세가 유사한 ‘세미 리컴번트(semirecumbent)’ 형상의 역삼륜 자전거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2007년 네덜란드 업체인 드라이머가 틸팅 기능을 갖춘 역삼륜 전기자전거를 선보인데 이어 국내에서도 2010년 수제스포츠카 업체인 어울림엘시스, 2011년 현대자동차그룹 벤처사업팀이 각각 ‘스피라 엘빅(Spira Elbic)’, ‘에코브(Eccov)’ 같은 전기 역삼륜 자전거를 공개했다.
하지만 기존 제품들은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윤 센터장은 그 원인으로 안정적 조향기술의 부재를 꼽는다. 안정적 조향을 위해 많은 장치를 부착하면 자전거가 무거워지고, 생산비 증대에 의한 소비자가격 상승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는 것. 엄밀히 말해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자전거라기보다는 자동차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자동차의 조향기술 접목
이에 연구팀은 사람의 힘, 그중에서도 노인과 주부, 장애인 같은 교통약자들이 연습 없이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역삼륜 자전거의 개발을 목표로 설정하고 조향장치의 설계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자동차에 쓰이는 ‘애커먼(Ackermann)’ 메커니즘을 적용한 조향장치다. 두 바퀴를 잇는 축은 고정된 상태에서 바퀴만 방향을 트는 방식이다. 틸팅 기술의 경우 앞바퀴를 연결하는 프레임과 자전거의 결합부위에 자세 안정화 장치(stabilizer)을 장착, 라이더의 무게 중심이 한쪽 방향으로 쏠릴 때마다 시스템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틀림의 반대방향으로 자세 복원력을 제공해주는 TSM을 개발했다.
이 기술을 채용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손쉽게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역삼륜 자전거의 제작이 가능하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라이더의 운동능력에 따라 자세 복원력의 조절이 가능하므로 교통약자들에게는 안정적 주행성능을 제공하고, 조향에 익숙한 라이더는 역동적인 고속 코너링을 즐길 수 있다. 다만 윤 센터장은 시제품을 제작한 결과, 성능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현 TSM이 주행 안정감을 현격히 상승시키지 못한 것이다.
“TSM이 채용된 역삼륜 자전거의 상용화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통약자들이 편안하게 앉은 자세에서 탑승할 수 있도록 무게중심을 높여줄 틸팅 기술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이를 포함한 몇 가지 기술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관련기술이 성숙단계에 접어든 전기 자전거 시스템에 접목해 다목적 도시형 교통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자전거 업계의 혁신브랜드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업체들이 저희 센터의 문을 두드려줬으면 합니다.”
윤 센터장은 이번 프로젝트가 사회적 약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따뜻한 연구개발사례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또한 향후 공공기관에 비치된 공용자전거에 교통약자용 역삼륜 자전거를 추가하면 저변 확대와 조속한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윤 센터장은 센터에 마련된 자전거 관련 기술개발 인프라를 적극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고가 자전거로 알려진 티타늄 소재 자전거를 국내 업체들이 개발할 수 있도록 ‘냉간하이드로포밍(hydroforming) 성형 기술’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고압의 액체를 금형에 밀어 넣음으로써 냉간 성형이 까다로운 티타늄 소재로 자전거 프레임을 입체성형할 수 있는 최신 공법이다.
▲ 핸드캐리어형 접이식 전기자전거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개발 성과 중에는 역삼륜 자전거 외에 또 하나의 독특한 자전거가 있다. 웰니스융합기술개발단이 개발한 ‘핸드캐리어형 접이식 전기자전거’가 그 주인공. 전기 자전거의 편의성과 접이식 자전거의 휴대성을 한 몸에 지닌 녀석이다. 정경렬 단장은 “도심형 접이식 자전거는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과의 연계성 확보를 위해 휴대가 간편해야 한다”며 “여기에는 혁신적 접이 프레임 개발이 필수인 만큼 이번 연구개발도 이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고 밝혔다.
기존의 접이식 자전거는 대개 앞뒤 바퀴가 인접하도록 프레임을 여러 개의 파트로 분리해 회전시키거나 슬라이딩 시키도록 고안돼 있다. 접이 방식이 간편하면 크기가 커지고, 접은 뒤 크기가 작아지라면 접이 방식이 복잡한 것이 그간의 상례였다.
연구팀은 이 특성에서 각각의 장점만을 취해 접이가 간편하면서 사이즈는 축소된 형태의 접이식 자전거를 완성했다. 프레임 중간에 위치한 힌지(hinge)를 중심으로 후륜부가 아래로 스윙하듯 회전하여 앞바퀴 앞에 정렬되는 단일 피벗(pivot)형 접이방식을 채용하는 한편, 뒷바퀴와 앞바퀴의 충돌을 피하는 ‘바퀴평행형 접이기술’이 적용돼 있다.
기존 접이식 자전거는 접은 뒤 바퀴 부분의 폭이 평균 30~35㎝지만 연구팀의 접이식 자전거는 20㎝에 불과하다. 특히 앞쪽 포크(fork)와 안장 밑의 시트 튜브에 각각 모터, 배터리를 장착하면 전기자전거로의 변형도 가능하다.
2012년 개발에 착수, 2년 만에 ‘SPF 1500’이라는 모델명으로 시제품 제작까지 완료한 이 접이식 자전거는 최근 대만에서 열린 ‘대만 사이클 D&I 어워드 2014’에서 국내최초로 혁신기술 및 디자인 부문 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1,000만명 국내 자전거 인구수. 정부는 올해 중 전국 326개 구간에 총 992㎞의 자전거 도로를 확충할 계획이다.
1,552명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국내 자전거 사고 사망자수.(출처: 교통안전공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