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를 노리는 SAM의 위협
지대공 미사일(SAM)은 지상 또는 해상에서 공중의 적기를 격추하기 위한 무기다. 개념은 1920년대부터 있었지만 본격 실용화된 것은 1950년대 초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기술이 그렇듯 초창기 경비행기 수준의 덩치를 자랑했던 지대공 미사일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소형화가 진행됐고, 1960년대들어 성인 한 사람이 휴대할 수 있는 20㎏ 내외로 작고 가벼워졌다. 적외선을 이용해 타깃으로 유도되는 모델도 속속 개발됐다.
전문용어로 이런 휴대형 대공무기 체계를 ‘맨패즈(MANPADS)’라 부른다. 전략적·전술적 기동성이 뛰어나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 많은 국가에서 지대공 요격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미군이 운용하는 ‘FIM-92 스팅어’가 3만 8,000달러, 거치식 지대공 미사일인 ‘MIM-23 호크’가 25만 달러 정도다.
다만 맨패즈는 휴대성에 초점을 맞춘 만큼 일반적 거치식 지대공 미사일에 비해 사거리나 비행속도가 뒤쳐진다.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기 운항고도를 1만5,000피트(4,500m)~2만 피트(6,000m) 이상 높이면 사거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여객기의 운항고도가 대개 3만 피트(9,000m) 이상이므로 정상적 상황이라면 여객기가 맨패즈의 공격을 받아 격추당할 가능성은 극히 낮은 셈이다. 그러나 이착륙 단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실수이든, 의도적 테러이든 맨패즈의 타깃이 될 수 있다. 지금껏 무려 70만발 이상의 맨패즈가 생산됐다는 추산도 있어 불안감은 더욱 가중된다.
이는 기우가 아니다. 내정이 불안한 국가에선 군대가 보유했던 무기들이 테러단체의 손에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예컨대 미국이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무자히딘 측에 제공했던 스팅거 미사일 중 일부가 탈레반과 알 카에다에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무너지면서 리비아군이 보유하고 있던 맨패즈 2만발이 사라지기도 했다. 다행히 5,000발은 회수되어 폐기처분됐지만 나머지 1만 5,000발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한 상태다. 맨패즈의 생산·보유국 가운데는 아예 정책적으로 테러를 지원하는 이른바 테러지원국들도 있다. 게다가 여객기는 전투기와 달리 덩치가 커서 급선회 회피기동으로 미사일을 피하기도 곤란하다.
사거리가 길고, 최첨단 기술이 채용된 거치식 지대공 미사일은 차치하고라도 맨패즈의 위협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어도 여객기의 안전성은 대폭 강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해 이미 이번 사고 이전부터 여객기를 위한 맨패즈 방어시스템들이 다수 연구됐으며, 상용화가 완료돼 여객기에 채용된 경우도 있다
기만전술: 플레어
이런 저런 방법 중에서 가장 먼저 빛을 본 것은 군용기에 쓰이는 미사일 방어체계인 ‘플레어(flare)’다. 이는 마그네슘 등 가연성 금속 소재로 만들어진 일종의 미사일 교란탄으로써 발화가 이뤄지면 항공기의 엔진 배기열보다 뜨거운 온도를 발산한다.
앞서 지적했듯 맨패즈의 대부분은 적외선을 이용해 목표물의 열을 추적하는 방식이라 플레어를 발사하면 맨패즈의 타깃을 항공기의 엔진이 아닌 플레어로 돌릴 수 있다. 맨패즈의 눈을 속이는 기만전술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엘타 시스템즈가 개발한 ‘플라이트 가드(Flight Guard)’가 바로 플레어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 방어체계다. 항공기에 6대의 도플러 레이더를 장착, 미사일의 접근을 감지하는데 접근이 확인되면 자동적으로 플레어가 발사된다.
제작사에 의하면 전체 시스템 중량이 60㎏에 불과해 소형기에도 간단히 장착 가능하며, 미사일 회피 확률은 무려 99% 이상이라고 한다. 또 플레어의 연소시간이 2~3초에 불과하고, 고체나 액체 잔여물을 전혀 남기지 않고 완전 연소되기 때문에 지상에서의 화재위험도 최소화된다는 설명이다. 아랍 국가들과 군사적 대치를 하고 있어 군용기는 물론 모든 민항기에도 방어체계 설치가 의무화된 이스라엘의 제품답게 실제 상황에서 그 능력이 입증됐다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스웨덴의 사브(SAAB)에서 내놓은 캠프스(CAMPS)가 있다. 중량 35㎏으로 플라이트 가드보다 가볍고, 한층 우수한 안전성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플레어는 기본적으로 수십 년간 검증된 기술이라는 부분이 최대 메리트다. 하지만 미국과 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지상 화재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플레어 시스템을 선호하지 않는다. 스위스의 경우 플라이트 가드를 장착한 항공기의 자국 영공 비행을 불허하고 있을 정도다. 특히 탑재된 플레어가 모두 소진되면 미사일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점은 극복키 어려운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시력 상실: 더컴
그래서 나온 대안이 지향성 적외선 대응시스템인 ‘더컴(DIRCM)’이다. 이 장치는 강력한 적외선을 발사, 미사일의 눈에 해당하는 적외선 탐지장치를 무력화시키는 것을 기본 메커니즘으로 삼는다. 사람이 너무 밝은 빛에 노출되면 실명하는 것과 유사한 이치다.
일례로 노스롭 그루먼의 ‘가디언(Guardian)’은 크게 두 가지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항공기에 접근하는 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자외선 센서와 이 센서의 정보에 기반해 미사일에 적외선 빔을 발사하는 적외선 발사장치가 그것이다. 이들이 탑재된 소형 포드를 항공기의 동체 외부에 부착하게 된다.
맨패즈의 미사일은 발사된 후 다양한 전자장 스펙트럼의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가디언의 자외선 센서는 바로 이 에너지를 포착, 조종실에 미사일 접근 경고를 울리는 한편 적외선 발신기 시스템에 조준 명령을 내린다. 이후 조준·추적 장치가 미사일을 찾아내 조준하면 고강도 가스 아크 램프가 미사일의 적외선 탐지장치를 향해 고강도 적외선 빔을 발사해 마비시킨다. 또한 적외선 빔은 특수한 파장을 송출, 미사일의 유도장치에 오류 신호를 일으켜 미사일이 잘못된 경로로 날아가도록 만
들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불과 2~5초 사이에 이뤄지며, 항공기 승무원의 조작 없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특히 가디언은 노스롭 그루먼이 군용으로 개발해 실전배치한 미사일 방어체계 ‘AN/AAQ-24 네메시스’를 통해 검증된 기술이 쓰인다. 네메시스는 비행시험 4,000회, 방해 유효실험 20만회, 그리고 실전을 포함해 100회 이상의 미사일 공격을 피해낸 시스템이다. 이러한 더컴은 현재 실용화된 가장 최신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서 이스라엘의 여객기에 장착돼 있다. 이스라엘의 군수기업 엘비트의 ‘C-MUSIC’, 영국 BAE시스템즈의 ‘제트아이(JETEYE)’ 등도 더컴에 속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레이저 요격
미사일 방어 체계는 항공기 탑재 장비에만 그치지 않는다. 플레어나 더컴과 같은 장비는 상당히 고가인데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아랍 국가라는 분명한 위협이 있기 때문에 민간 여객기에도 자체 방어장치 부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훨씬 많은 민항기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뚜렷한 적이 없는 국가들은 선뜻 이스라엘의 전례를 쫓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지상의 거치식 미사일, 즉 지대공 미사일로 맨패즈의 공격을 방어하는 이이제이의 전략이다. 여객기의 순항고도가 맨패즈의 사거리를 벗어나므로 이착륙이 이뤄지는 공항 주변에 지상 미사일 방어체계를 설치·운용하면 한층 경제적으로 여객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시스템의 실례로 방위산업체 레이시온이 미 정부에 제안했던 ‘비질런트 이글(Vigilant Eagle)’이 있다. 이 계획은 공항 주변에 다수의 센서 어레이를 설치, 맨패즈의 발사를 감지한 뒤 극초단파 빔을 이용해 여객기를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의 유도장치를 마비시킨다는 게 기본 골자다. 다만 이 시스템은 기술적 복잡성과 과도한 투자비 부담이 한계로 지적되면서 미 정부의 간택을 받지 못했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노스롭 그루먼의 ‘스카이가드(Skyguard)’도 있다. 이는 고에너지 화학 레이저로 맨패즈의 미사일을 직접 타격해 공중에서 파괴해버리는 시스템으로, 비질런트 이글과 비교해 좀더 적극적 개념의 맨패즈 방어체계라 할 수 있다. 특히 스카이가드는 교란이 아닌 타격 무기이기 때문에 맨패즈 외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순항미사일, 지대지 로켓탄, 포탄, 박격포탄, 무인항공기 등 거의 모든 공중 표적을 격추시킬 수 있다는 게 최대 강점이다. 또한 공항뿐만 아니라 군사시설이나 도시의 방공무기로서도 사용 가능하다.
제조사가 밝힌 격추 가능 사거리는 맨패즈와 회전유도탄(RAM)이 각각 20㎞, 5㎞다. 그리고 시스템당 단가는 2,500~3,000만 달러로 1회 사격 시 약 1,000달러가 들어간다. 일반 미사일 요격 시스템 대비 월등히 저렴한 운용비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카이가드의 개발은 현재 여러 가지 이유로 중지된 상태다.
상용화는 현재 이스라엘의 라파엘이 내년 실전 배치를 목표로 개발 중인 ‘아이언 빔(Iron Beam)’이 최초가 될 전망이다. 스카이가드와의 차이는 화학 레이저 대신 광섬유 레이저를 사용한다는 것. 광섬유 레이저는 가스 레이저나 고체(글라스) 레이저보다 부피, 중량, 에너지 효율 면에서 월등히 우수한데다 고출력 단일모드 발진이 어려운 반도체 레이저보다 출력광 특성이 탁월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아이언 빔의 유효 사거리는 최대 7㎞로, 지금껏 100회 이상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여객기 방어 체계의 한계
이렇듯 다수의 여객기용 지대공 미사일 방어체계가 개발 또는 연구돼 왔지만 실질적 채용을 놓고는 아직 설왕설래가 뜨겁다. 기술적 측면이 아닌 금전적 측면 때문이다.
지난 2005년 미국 랜드연구소는 당시 6,800대에 달하던 미국 내 모든 여객기에 더컴 등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장착하려면 무려 110억 달러가 필요하며, 운영 및 유지비용만 연간 22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정부차원에서 이 비용을 부담해준다면 몰라도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의 입장에선 투자 대비 효용성이 낮아 보일 수 있다. 이번에 피격 당한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만 해도 불과 수일 전에 동일항로에서 우크라이나의 군 수송기가 격추 당했음에도 항공사가 유류비 1,500달러를 아끼고자 그 항로를 고집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관련업계 전문가들은 여객기 1대가 격추 당할 경우 항공사의 직접 손실 비용만 10억 달러, 간접 손실 비용은 그 이상이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여객기 격추로 인해 국제공항이 4시간 동안만 운영이 중단돼도 4,000만 달러의 손실이 생긴다고 한다. 눈앞의 손익에 좌우되기 보다는 대승적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물론 더컴, 아이언 빔 등을 설치하더라도 MH17편을 격추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러시아제 ‘9K37 부크 미사일’ 같은 레이더 유도식 지대공 미사일은 막아낼 수 없다. 이에 알루미늄 조각들을 흩뿌려 레이더파를 반사·교란시키는 ‘채프(chaff)’를 탑재하자거나 스텔스 기술을 적용하자는 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항공전문가들은 민간 여객기의 미사일 방어체계의 도입이 시기의 문제일 뿐이라 예견한다. 생명과 금전은 결코 비교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맨패즈에 의한 민항기 공격 사례
1978년 9월 3일
짐바브웨 로디지아 항공의 바이카운트 여객기가 짐바브웨 인민혁명군(ZIPRA) 게릴라가 발사한 스트렐라2 맨패즈에 피격. 탑승자 52명 중 48명 사망.
1979년 2월 12일
로디지아 항공 바이카운트 여객기가 ZIPRA 게릴라의 스트렐라2 맨패즈에 피격. 탑승자 59명 전원 사망.
1993년 9월
조지아-압하스 분쟁 당시 트랜스에어 조지아 항공의 투폴레프 여객기가 압하스 게릴라의 맨패즈에 피격. 탑승자 136명 전원 사망.
1998년 9월 29일
아일랜드의 라이언에어 An-24 여객기가 반군단체인 타밀 엘람 해방 호랑이(LTTE)가 발사한 맨패즈에 피격. 탑승자 55명 전원 사망.
2002년 12월 28일
이스라엘 아키아 항공의 보잉 757 여객기가 케냐 몸바사에서 이슬람 게릴라의 맨패즈 공격을 받음. 사상자 없음.
2003년 11월 22일
유러피안 항공화물 소속 에어버스 A300 화물기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게릴라의 맨패즈 공격을 받음. 사상자 없음.
2007년 3월 23일
트랜스아비아 익스포트 항공의 IL-76 화물기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맨패즈에 피격. 탑승자 11명 전원 사망.
MANPADS MAN-Portable Air-Defense systems.
CAMPS Civil Aircraft Missile Protection System.
DIRCM Directional Infrared Counter Meas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