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마케팅에선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토리텔링은 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있는 스토리를 제대로 끄집어 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마음을 캐내는‘ Mining Minds’가 중요한 이유다.
조선시대에도 저잣거리에는 스토리를 파는 사람이 있었다. 전기수라 불리던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이야깃거리를 흥미롭게 전개하다가 목이 마르다고 잠깐 딴청을 피우면, 듣던 군중이 너도 나도 그 다음 얘기가 궁금해 쌈지 속 돈을 던져 주어 생계를 잇게 해주었다고 한다. 심지어 영웅담을 듣다가 주인공이 가장 큰 고난을 당하는 순간, 분을 이기지 못하고 얘기를 하던 전기수를 칼로 찔러 죽인 청중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요즘 드라마 속 악역을 맡은 배우가 시장을 다니다가 아주머니들에게 등짝을 얻어맞았다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닌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를 즐기는 게 틀림없다. 시곗바늘을 더 과거로 돌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이야기한 스토리 구조 분석을 보아도, 2300년 전 어떤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자본 집약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물자가 풍족해지면서 ‘결핍에 의한 소비’가 아닌 ‘욕망에 의한 소비’가 구매의 동인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욕망이란 좀 더 전문적이고 귀한 물건을 갖고 싶다는 심리, 그리고 남과 다른 것을 소유함으로써 차별화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구체화 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스토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좋은 품질의 펄프를 이용해 최첨단 기술로 만든 화장지가 아니라, 식탁 위에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가 올려지던 한국의 열악한 현실이 안타까워 50년 전 만들어졌던 화장지를 알고 있는가? 30년 전 잠열을 다시 회수하는 기술개발로 환경 친화적이지만 제조원가가 비싼 보일러를 처음 만든 뒤, 시골에 계신 아버님 댁에 보일러를 놓아드려야겠다는 광고 카피로 소비자들자에게 ‘효심 구매심리’를 불러 일으켰던 제품은 기억하는가? 1950년대 종로에서 약국으로 시작해 제약회사를 설립하고 ‘주머니 속 액체 위장 약’이라 불리는 약을 만들어 한국인의 속 쓰림을 해결해준 명약(?)은 어떠한가?
이렇듯 우리가 결국 소비하는 것은 원료나 제조 기술의 탁월함보단 그 결과물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라 할 수 있다. 제품을 잘팔려면 당연히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터이니 기술이나 원료는 구태여 알아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필자가 하는 일-데이터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작업은 소비자들의 마음에 고객사의 스토리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완성된다. 하지만 필자는 기업의 스토리를 전달하는(story telling) 일을 하지만, 스토리를 만들지는(story making) 않는다. 없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경우 실제 제품과 만들어진 스토리 사이에 차이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 차이가 소비자에게 인지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를 일으켜 오히려 고객사에게 해를 입힐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가짜 스토리에 속은 소비자가 생겨 회사 입장에선 더 나쁜 이미지를 얻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스토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스토리를 끌어내는(story extracting) 일에 주력한다. 스토리 추출가(story extractor)로서의 업무는 고객사 창업자나 경영진에게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일어난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출발한다. 회사를 창립할 때 얘기, 사업을 키워 나가면서 벌어진 일,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적응해 온 과정을 듣다 보면 왜 회사가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입장에서는 그저 사업을 하다 벌어진 일이기에 쑥스러워하고 머쓱해 하기 십상이다. 때문에 스토리의 대부분이 대중들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이 현재 그들의 사업을 이루게 된 원천이자 기업과 제품의 신뢰를 구축해 온 기반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런 스토리를 배제한 채 제품의 장점을 나열해 보아야 소비자들은 광고라고만 생각할 뿐이다. 하지만 광고의 신뢰도는 20%가 채 되지 않는다는 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해당사자의 직접적인 주장은 불행하게도 소비자들이 색안경을 쓰고 볼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지난 세월 사업을 하면서 해온 일들이 눈 위의 발자국처럼 뚜렷이 한방향으로 남아 있는 스토리만이 제품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만든 이의 진심과 의미를 진정성 있게 나타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기업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도 결국 스토리를 팔고 있다. 그렇다면 필자의 스토리는 어떨까? 전산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을 마친 후 기술분야에서 10년간 일하면서 남이 만든 문제를 푸는 일에 조금씩 지쳐갔다. 그래서 스스로 문제를 내는 일을 하고 싶어 마케팅 영역으로 직업을 확장했다. 다시 마케팅 분야에서 10년을 보내면서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양한 전공의 교수님들을 찾아 혜안을 얻고자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렇게 만났던 인문학 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꾸리고 마음을 읽는 일(Mining Minds)을 하고 있다.
기술분야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계속 기술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역설했지만, 번번이 더 나은 기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경쟁자들 탓에 낮은 단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Mining Minds’라는 슬로건 아래 사람의 마음을 읽는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기술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하는 일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커리어 라인이 지난 20년간 내가 해온 일들을 수미일관하게 현재 직업으로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난 세월 동안 해온 수많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가 가진 생각이 조금씩 이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스토리 속에는 주체의 의지와 그 발현의 과정이 자연스레 녹아있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의지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발현 과정을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이 제거 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소비자는 그 기업의 스토리에 담긴 의지와 발현 과정을 구매 후 자신의 불확실한 만족에 대한 보장으로 환금한다고 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도 이제부터 기술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해 보길 바란다. 나에게는 내가 만드는 기술이 중요하지만 쓰는 상대는 효용에 더욱 주목한다. 내가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눈과 마음을 가지는 것이 바로 비즈니스 성공의 첫 번째 핵심이란 얘기다. 혹여 현재 하는 일이 브랜드를 내세우기보단 박리다매를 무기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일이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글로벌 협력 시대로, 스토리를 판매하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못 믿겠다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인력, 낮은 급여로 경쟁하는 이웃 나라를 한번 가보기 바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나? 잘 모르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당신 속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핵심 스토리를 추출해보라.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송길영 부사장은 사람의 마음을 캐는 Mind Miner이다. 소셜 빅데이터에서 인간의 마음을 읽고 해석하는 일을 해오고 있다. 나아가 여기에서 얻은 다양한 이해를 여러 영역에 전달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활자를 끊임없이 읽는 잡식성 독자이며, 이종(異種)의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 저서로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빅데이터에서 찾아낸 70억 욕망의 지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