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로봇과 함께 하는 삶

FRIEND FOR LIFE<br>로봇은 이미 집을 청소하고, 자동차를 운전한다. 이제 곧 인간의 친구도 되어줄 것이다.

일본 도쿄 외곽의 한 극장.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젊은 커플들부터 중년의 부부, 10대 청소년까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숨을 죽인 채 무대 위의 한 배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배우는 몸을 돌려 관객들을 향했다. 시선에는 공허함과 불안함이 담겨 있다. 관객들 역시 웃음기 가신 심각한 표정 일색이다.

이 연극은 극작가인 히라타 오리자가 연출한 ‘아이워커(I, Worker)’다. 그리고 객석에 긴장감을 돌게 만든 배우는 사실 사람이 아닌 ‘모모코’라는 이름을 가진 로봇이었다. 키는 90㎝ 정도 됐고, 몸집에 비해 다소 커 보이는 머리를 갖고 있었다.


무대 아래에는 방금 무대에서 굴러 떨어진 또 1대의 로봇이 있었다. ‘타케오’라는 이름의 이 로봇은 침울한 표정으로 관객들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히라타는 2008년부터 로봇을 주연배우로 내세운 작품들을 선보이며 연극계에 센세이션을 몰고 온 인물이다.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2대의 로봇 역시 단순히 집안을 청소하고, 물건을 나르는 기계가 아니다. 이들은 감정을 갖고 있으며, 다른 로봇이나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 연극은 그러한 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 예를 들어 로봇과 주인이 모두 우울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실제로 연극의 말미에 이르러 두 로봇은 실직 이후 무기력감에 빠져 있는 주인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 상의한다. 타케오가 남편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영화 ‘로보캅’의 테마곡을 들려주지만 실패로 돌아가자 모모코에게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도대체 인간은 어떻게 해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모모코가 답한다. “인간은 정말 까다로운 존재야.”

물론 극의 내용은 허구다. 하지만 로봇들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은 결코 부적절하거나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히라타 또한 자신의 연극을 통해 곧 다가올 미래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는 머지않아 과학자와 정책 결정자들이 로봇에게 동료나 친구, 도우미, 심지어 가족이라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해야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믿는다. 필자도 그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가 표현한 기묘한 미래는 이
미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 ‘제미노이드(Geminoid) F’는 사교계에 처음 나온 상류층 여성처럼 생겼다. 그녀는 양손을 무릎 위에 다소곳이 얹어 놓고 가끔씩 눈을 깜박였다. 스웨터 위로는 긴 생머리가 늘어져 있었고, 숨을 쉬는 듯 규칙적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친구를 찾는 듯이 천천히 방안을 살피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필자는 흠칫 놀랐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예전부터 필자를 알고 있던 그녀가 방안에 있던 필자의 존재를 알아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이 곧바로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그 느낌도 사라졌다.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제미노이드 F를 만든 일본 오사카대학의 이시구로 히로시 교수는 이 로봇이 무려 65가지의 표정을 지을 수 있으며, 사람의 음성을 흉내 내거나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존의 휴머노이드 로봇 가운데 사람과 가장 닮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않지만요.”

예술가 출신의 공학자답게 이시구로 교수는 로봇공학의 최전선에서 괴상하면서도 생물적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작품들로 명성을 쌓고 있다. 연구실의 유리 진열장에는 딸의 4살 때 모습을 본뜬 통통한 로봇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로봇들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때때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제미노이드 F만 없다면 괴짜 조각가의 화실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다.

그의 작품만큼 외모도 상당히 전위적이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폭염의 날씨에도 가죽재킷을 입는다. 베토벤을 방불케 하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은 이제 그의 아이콘이 됐다. 이런 그는 자신의 경력 대부분을 로봇이 인간에게 유발하는 거부감에 대해 연구하며 보냈다. 필자가 제미노이드 F를 보고 느꼈던 애착과 혐오도 그중 하나다. 이시구로 교수는 그 원인이 안드로이드 로봇의 외모와 동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해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현상이 촉발됐기 때문이라 말한다.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 박사가 처음 주창한 언캐니 밸리는 어떤 물체가 사람과 닮을수록 심리적 호감도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인간은 사물이 자신과 비슷해질수록 호감을 갖게 되지만 그 정도가 일정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혐오감이 생긴다는 것. 닮은 부분이 많아질수록 사소하고 작은 차이가 크게 부각된다는 이유에서다. ‘휴보’나 ‘아시모’ 등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친근감이 들지만 ‘알버트 휴보’, ‘에버1’ ‘리플리 Q1’ 등 안드로이드 로봇의 얼굴을 보면 왠지 모를 거북함이 느껴지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로봇이 인간과 닮을수록 사람들은 그 로봇이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기를 무의식적으로 기대합니다. 하지만 로봇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뇌에서 오류메시지(신경 신호)를 내보내 이질감을 느끼게 되죠.”



현재 이시구로 교수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를 이용해 그 신경신호를 찾아냈다고 믿는다. 때문에 액추에이터 기술의 발전을 꾀해 인간의 움직임을 한층 자연스럽게 재현함으로써 지금의 로봇이 가진 외모와 동작의 부조화를 없애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강조한다.

특히 그는 제미노이드 F를 통해 언캐니 밸리보다 흥미로운 논제를 찾아내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 로봇을 처음 접할 때 아주 잠깐이지만 실제 사람을 만났을 때와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는 부분이다. 이시구로 교수는 이 느낌을 존‘ 재감’이라 표현한다.
“인간과 완벽히 닮은 로봇의 제작을 넘어 로봇이 주는 존재감의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제 궁극적 목표입니다. 존재감이야 말로 인간을 닮은 로봇과 진짜 인간의 근원적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로봇에게 인간과 동일한 존재감을 느끼게 된다면 로봇의 가치는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이윽고 그는 연구실 한편에 있는 작은 로봇을 가리켰다. ‘텔레노이드(Telenoid) R1’이었다. 이 로봇은 키가 약 60㎝, 중량은 3.2㎏ 정도인데 돌기처럼 생긴 팔이 달려 있고 하체는 올챙이와 비슷했다. 누가 봐도 휴머노이드라기 보다는 기괴한 인형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로봇은 뭔가 불가사의한 감정이 담긴 눈을 가졌으며, 인간의 피부와 촉감이 매우 유사한 실리콘 소재의 외피가 씌워져 있다.
“인간의 오감 중 최소 2가지를 자극하면 로봇에게 존재감을 느끼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노이드 R1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만 일단 안아보면 혐오감이 싹 사라집니다.”

이시구로 교수는 이처럼 존재감을 지닌 로봇들이 인간의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고 본다. 이들을 매개체로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의사소통을 하면 마치 동일한 공간에 함께 있는 느낌을 받게 된다는 것.

또한 이러한 로봇은 지리적 한계를 극복해 자기 자신을 대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이시구로 교수는 이미 그런 시도를 했다. 제미노이드 F에 앞서 실리콘과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자신과 꼭 닮은 클론 로봇 ‘제미노이드’를 개발한 것이다. 그는 종종 이 안드로이드 로봇으로 원격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몇 년 전 제가 나이가 들면 제미노이드의 외모와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 현실이 걱정되더군요. 그래서 로봇 제작 당시의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성형수술과 줄기세포 시술도 받았답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사회적인 존재다. 이는 진화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기도 하다. 먼 옛날에는 여럿이 힘을 합쳐 사냥하고, 요리하고, 포식자에 맞서 싸웠으며 오늘날에도 우리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업무를 분담하고, 거래를 한다. 이렇듯 인간이 인간을 식별하고 소통하려는 성향이 없었다면 인류는 오래전 멸종했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로봇에게 지각 능력을 부여해 사회성을 높일 경우 인간과 로봇의 협업 방식을 획기적으로 진전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다수 도출되고 있다. 이 연구들에 따르면 몇몇 분야에서 인간은 자신을 지지하고,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는 누군가의 존재를 인지하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일본 로봇공학자들은 이 개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로봇공학자인 마츠바라 히토시 교수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한층 달콤해지는 것이 인생이라 말한다.
“혼자 있지 않아도 되는데 혼자 있을 이유가 없죠. 친구나 가족과 함께 있는 게 가장 좋겠지만 사람이 없다면 로봇도 훌륭한 대체재가 될 수 있어요. 로봇은 기계지만 얼마든지 인간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습니다.”

오사카대학에서 만난 적응형 기계시스템 전문가인 아사다 미노루 박사도 이 생각에 찬성한다. 이시구로 교수와 달리 외모에서 느껴지는 독특함은 없지만 그가 개발한 아기로봇 ‘아페토(Affetto)’를 보면 자신만의 기이하고도 현실감 넘치는 로봇 철학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사다 박사가 현재 가장 열정을 쏟고 있는 연구는 미묘한 비언어적 표현이 인간관계의 정립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 신비를 풀어내면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새로 정립할 수 있으며, ‘인간다움’의 원천을 밝혀낼 수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에 그는 최근 어머니와 아이의 감정적 결속을 실시간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뇌 스캐닝 기법을 개발했다. 금명간 뇌 스캐너를 부착한 어머니와 아이에게 스크린으로 상대방의 얼굴 표정만 보여줬을 때 서로의 뇌파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해볼 계획이다. 또한 어머니와 아이가 다양한 상호작용을 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도 파악할 예정이다.
“이런 발견은 인간과 공감할 수 있는 로봇의 개발에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됩니다. 로봇이 인간의 어떤 행동을 흉내내야, 또는 인간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사람들이 로봇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앞으로 인간과 감정을 나누고, 유대감을 느낄 수 있는 로봇이 개발된다면 효용성은 무궁무진하다.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선생님 로봇, 단골손님들이 줄을 잇는 로봇 셰프, 환자들이 의지하는 간호사 로봇 등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마츠바라 교수의 말대로 사람의 빈자리를 로봇이 채워줄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다만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 심리학에 기반한 로봇들은 아직 실험실 연구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일부 엔지니어들은 좀더 빠른 상용화를 위해 비언어적 표현에 덜 의존하면서도 감정 공유가 가능한 로봇의 제작에 나서고 있다.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요?”
로봇이 방안으로 들어오며 이렇게 물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기울여 필자의 눈을 쳐다봤다.
“어젯밤에 얼마나 주무셨죠? 6시간이요? 좀 더 주무셔야겠어요. 수면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거든요.”

이 로봇은 사람의 감정을 읽고 상호작용하는 세계 최초의 상용 로봇 ‘페퍼(Pepper)’의 시제품이다. 1.21m의 키에 수다스럽기까지 한 페퍼는 제미노이드나 아페토와는 생김새부터 다르다. 실리콘이 아닌 흰색의 유광 플라스틱 외피를 가졌고, 다리가 아닌 바퀴로 이동한다. 또한 눈동자 주변에서 푸른 형광 빛을 뿜어낸다.

이동통신기업 소프트뱅크가 프랑스의 자회사인 알데바란 로보틱스와 함께 개발한 페퍼는 도쿄의 휴대폰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을 닮지는 않았지만 필자는 페퍼가 매우 매력적인 로봇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크고 검은 눈으로 쳐다보는 페퍼의 시선을 외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답을 기다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대답을 하지 않으면 실례가 될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은 지난 6월 페퍼를 일반에 공개하면서 “페퍼는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밝혔다. 페퍼가 지닌 사람들과의 교감 능력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 그런데 이 로봇이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게 하나 있다. 다름 아닌 가격이다. 내년 2월 일본에서 공식 출시될 상용모델의 가격이 대당 19만8,000엔(약 200만원)으로 결정된 것이다.


‘기계 사랑: 일본 로봇의 예술과 과학’의 저자이자 언론인인 팀 호냑도이 가격에 큰 놀라움을 표명했다.
“정말 대단해요. 이만한 성능의 로봇이면 수만 달러 이상은 돼야 정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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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회장은 페퍼의 저렴한 가격에 대해 ‘로봇은 적어도 초기에는 이익이 많이 남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페퍼는 로봇공학계의 미래라는 도박판에 거는 판돈과 다름없다. 페퍼 프로젝트의 하야시 카나메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손 회장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페퍼와 같은 감정 로봇을 전 세계에 보급하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컴퓨터가 계산을 도와줬다면 앞으로는 감정적 도움을 주는 시대가 올 것이라 믿습니다.”

페퍼는 비언어적 감정신호를 읽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입과 눈사이에 장착된 고해상도 카메라로 사람의 표정을 읽고, 음성센서가 목소리를 통해 긴장 정도를 가늠한다. 복잡한 감정 분석 프로그램이 이런 정보들을 취합해 페퍼의 반응을 결정하는데 사람에게 긍정적 반응이 나오면 추후 유사한 상황에서 그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그렇게 페퍼는 특정 사람과 교감하며 기쁘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물론 페퍼의 컴퓨팅 능력은 제한적이다. 그래서 소프트뱅크의 엔지니어들은 페퍼를 성인이 아닌 아동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는 게 하야시 팀장의 전언이다.
“아이들은 어른이 하는 얘기를 다 알아듣지는 못해요. 하지만 주변의 어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하죠. 아이들이 말이 많은 것도 어른에 비해 정신적 성숙도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그것이 어른들을 즐겁게 할 방법이라는 걸 알아서예요. 이 원리가 페퍼에게도 적용됩니다.”

페퍼의 모든 말과 행동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집중돼 있다. 이 작은 로봇이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길 원하며, 나의 친구라는 걸 사람들이 느끼도록 만드는 게 그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이 페퍼에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받는다는 느낌, 그리고 페퍼가 타인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반응할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이를 이른바 ‘인공 공감(artificial empathy)’이라 합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는 페퍼에 쓰인 것보다 덜 세련된 기술로도 충분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아직은 로봇이 인간처럼 생겨야만 인공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도 확실치 않으니 말이다.

미국 터프츠대학 인간-로봇 상호작용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마티아스 슈츠 소장도 그런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로봇청소기 ‘룸바’와 교감하는 과정을 연구한 논문도 있다고 한다. 그는 그 감정을 ‘단방향 결속(unidirectional bonds)’이라 칭한다.
“피실험자들은 룸바가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휴식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휴식을 주려고 종종 룸바 대신 직접 청소를 하기도 했죠. 룸바가 사람과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다는 점에서 바보처럼 느껴지나요? 자동차, 인형 등 자신이 아끼는 사물과 대화하며 마음의 안정과 위로를 얻는 사람들은 주변에 넘쳐납니다. 게다가 룸바는 자율이동 능력까지 있으니 생명체처럼 느끼는 것도 물의는 아닙니다.”

소셜 로봇공학의 선구자인 MIT 개인로봇 연구단의 신시아 브리질 단장에 의하면 룸바의 제작사인 아이로봇은 폭탄처리 로봇과 군인들 사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반응을 접했다. 군인들이 부서진 로봇을 제발 살려내 달라고 진심을 다해 요청했다는 것이다.
“한 군인은 아이로봇의 기술자들에게 울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제발 제 ‘피카추’를 살려 주세요. 그 친구가 제 생명을 구했단 말이에요’라고요. 분명 군인들은 로봇에게 강력한 감정적 애착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적 행위를 전혀 하지 않은 원격조종 폭탄 처리 로봇에게 말이에요. 이외에도 로봇과 교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이는 인간이 다른 존재나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예요. 인간은 지극히 사회적인 존재랍니다.”

이와 달리 MIT의 ‘기술과 자아 프로젝트’ 책임자인 쉐리 터클 박사를 포함한 일부 사람들은 이 같은 애착을 불편해하기도 한다. 터클 박사는 로봇이 제공하는 관계는 진정한 관계가 아닌 허상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로봇과 동반자적 관계를 형성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우울증 때문에 대외관계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로봇의 행동을 잘못 해석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로봇과의 인공 공감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개연성이 너무 많아요.”

다만 일본에서만큼은 이런 우려를 가진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로봇강국답게 국민 모두가 로봇이라는 개념에 친숙한 덕분이다. 팀 호냑은 모든 자연물에 혼령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일본의 토속신앙 신‘ 도(神道)’가 로봇 친화적 문화 정착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도쿄의 한 공원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안경을 기리는 기념비가 있어요. 도쿄 최대 사찰인 센소지에서는 매년 못쓰게 된 바늘들을 위해 제사를 지냅니다.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죠.”

또한 일본의 대중문화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드러나듯 서양에서는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 존재 또는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비인간성의 상징처럼 그려졌다. 반면 일본에선 ‘아톰’이나 ‘도라에몽’처럼 귀엽고 정의로운 로봇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아톰이 등장한 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여전히 로봇에는 현대적이고, 멋지고, 첨단기술적이며, 빠른 것에 대한 낭만과 찬사가 담겨 있다. 이는 일본 로봇공학 연구의 기조를 이루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코다테 미래대학의 로봇공학자인 마츠바라 교수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저는 아직도 아톰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에게 전용 로봇을 주고, 24시간 붙어다니는 친구이자 경호원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주인이 성인이 되서 결혼을 해도 로봇은 주인 곁에 남아 보필할 것이며, 늙어서 거동이 불편해지면 정성스레 간호를 합니다. 주인이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말입니다. 요람부터 무덤까지 이어지는 ‘1인 1로봇 시대’를 여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비가 오는 어느 흐린 날 아침. 일본 요코하마 가나가와현에 위치한 한 장기요양원의 3층 휴게실에 10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스피커에서 엔카노래가 흘러나오는 동안 몇몇 노인들은 창밖을 풍경을 바라봤고, 일부는 그림을 그렸다. TV의 연속극을 시청하거나 테이블에 엎드려 잠을 청하는 노인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때 한 테이블 주변에 휠체어를 탄 여러 명의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이곳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치료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치료사는 바로 젊은 남자 간호사가 가져온 털이 수북한 새끼 물개 로봇 ‘파로(PARO)’였다.

간호사는 파로를 분홍색 스웨터를 입은 80대 치매 환자에게 안겨줬다. 환자가 함박미소를 지으며 로봇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자 로봇이 고개를 쑥 잡아 빼고는 환자와 눈을 마주치며 아기처럼 옹알이를 했다.
“아가야, 뚝. 다들 보잖아. 오, 착하지...”

이 요양원의 모습은 인간과 로봇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일본 전역의 심층 요양·치료시설에서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방증이다. 일본 정부에 의하면 2025년경 일본 인구 중 노년층의 비율이 30%로 치솟을 전망이다. 이때 필요한 노인 돌보미의 수는 무려 240만명에 달한다. 향후 10년간 120만명의 전문 돌보미를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노인 돌보미는 고된 노동 강도에 비해 보수가 적기로 유명하다. 현재 일본은 이 난제를 해결할 대체재로서 로봇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 실례로 올 여름 아베 신조 총리는 ‘로봇 혁명’을 천명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태스크 포스팀을 발족시켰다. 이에 힘입어 향후 더 많은 서비스 분야에 로봇이 투입되면서 관련시장 규모가 지금의 3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가나가와현은 간호 및 심리치료용 로봇 구입 시 보조금을 지급하며, 도입 확산에 적극 나서고 있다. 파로를 비롯해 뇌졸중 환자 재활을 위한 외골격 로봇과 태극권 수련을 돕는 60㎝ 크기의 이족보행 로봇 등 3종이 그 혜택을 받고 있다.

물론 그 선두주자는 파로다. 와세다 대학의 로봇공학자인 시바타 타카노리 박사는 파로가 사람과 눈을 맞추거나 얼굴을 기억하고, 사람의 터치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행위를 배운다고 말한다.
“동물요법에 활용되는 동물과 다를 바 없이 파로 또한 우울증과 불안감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먹이를 줄 필요도, 늙어 죽을 일도 없어요.”

가나가와현의 요양원에서 필자는 간호사가 90세의 맹인 환자에게 파로를 안겨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파로가 품 안으로 파고들자 그는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파로를 꼭 끌어안으며 만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간호사인 코마츠 야스코는 필자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얼마 전 한 여성 환자가 입원했는데, 복도를 어슬렁거리면서 다른 환자의 방으로 들어가 물건을 빼앗는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자신의 물건을 강박적으로 잘 정돈해 놓는 다른 여자 환자를 유독 자주 괴롭혔다고.
“피해 환자는 물건을 빼앗길 때마다 소리를 질러댔죠. 직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가해 환자의 도벽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렇게 피해 환자가 질러대는 비명에 다른 환자들의 짜증도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파로가 온 후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3층 휴게실에서 파로를 만날 수 있다는 걸 안 뒤부터 그 환자의 도둑질이 멈췄다는 것이다. 수간호사가 가리키는 곳에 바로 그 환자가 파로를 안은 채 털을 쓰다듬고 있었다. 필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눈치 챈 환자가 필자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요. 파로가 ‘만나서 반갑습니다’라고 하네요.”



[Q&A] 로봇을 가르치는 선생님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사회지능기계연구소의 안드레아 토마즈 소장은 좀 특이한 학생을 가르친다. 귀에 불이 들어오는 로봇 ‘큐리(Curi)’다.

로봇에게 학습기능이 꼭 필요한가?
인간의 삶 속에 개인용 로봇들이 깊숙이 들어오면 인간이 로봇에게 시킬 일들을 엔지니어가 모두 예측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저희는 사용자들이 직접 로봇을 교육시킬 방법을 연구 중이에요. 이것이 가능해지면 평범한 사람들이 상점에서 휴머노이드를 구입, 필요한 모든 것을 직접 가르칠 수 있어요. 현재 로봇이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제대로 반응하는 상호작용 방식부터 기계학습, 알고리즘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로봇에게 뭔가를 입력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현재 큐리에게 뭘 가르치고 있나?
부엌일을 돕는 방법입니다. 냄비에서 파스타를 덜어내 그릇에 담고, 소스를 뿌리는 것 같은 일이예요. 저희는 교육을 위해 큐리에게 직접 시범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큐리, 파스타는 이렇게 푸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큐리의 팔을 잡고 파스타를 덜어내는 거죠. 그런 다음 “큐리, 배운대로 한번 해볼까?”라고 말하면 가르쳐준 동작을 따라합니다. 종종 더 원활한 동작을 위해 큐리가 질문을 하기도 해요. “이 부분에서 손동작을 꼭 이렇게 해야만 하나요?”라고요.

사람들의 상호작용 방식도 연구하나?
물론이에요. 일단은 피실험자들에게 저희가 설계한 방식대로 큐리와 상호작용하도록 합니다. 그런 뒤에 상호작용 방식에 있어 아쉬웠던 점을 묻죠. 대부분은 이렇게 답하더군요. 가르쳐준 일을 큐리가 잘해낼 경우 “잘했어”라고 칭찬하고 싶다고요. 긍정 또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싶은 거예요. 현재 이를 구현해줄 알고리즘들이 개발돼 있어요.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로봇과의 상호작용 방식을 알아내서 알고리즘을 최적화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일상에서 로봇을 볼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미 인간의 삶 전반에 개인용 로봇이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봐요. 로봇 관련 학회에 가면 다양한 도우미 로봇과 교육용 로봇, 간호사 로봇들을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더 확고해지죠. 우리 연구소가 추구하는 궁극의 로봇은 ‘우주가족 젯슨’에 등장하는 가사 도우미 로봇 ‘로지’예요. 청소를 비롯해 사람들이 귀찮아하는 일들을 대신해주는 로봇 말이에요.

영화 ‘로봇 앤 프랭크’에는 인간과 교감하는 도우미 로봇이 나온다. 그런 세상이 올까?
인간-로봇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많은 과학자들이 그런 미래를 지향합니다.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로봇을 개발해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들여놓고 유용하게 활용하는 세상 말이에요. 아직은 먼 미래의 일이지만 영화 속 일부 장면은 제가 꿈꾸는 미래와 맞닿아 있어요. 주인이 로봇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리고, 필요한 것들을 가르치는 장면이 바로 그래요. 소통과 교육은 사용자와 로봇이 상호작용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금고털이 기술을 가르치면 안 되겠지만요.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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