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30대그룹은 지금] 한화

“여직원의 성취감을 높여라”<br>여성리더 육성 콘퍼런스 개최

한화그룹이 여성 리더 육성을 위한 콘퍼런스를 열었다. 의례적이거나 선전용 행사가 아닌, 여직원들이 스스로 기획해 조직한 행사였다. 한화가 달라지고 있다.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진 옥건민 okgunmin@gmail.com


8월 한화그룹 인트라넷에 공지 하나가 떴다. 여성 리더 육성을 위한 콘퍼런스에 참여할 여직원들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참가자들은 7주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을 준비해야 했다. 김소영(가명) 매니저는 눈살이 찌푸려졌다. 귀찮았다. 가뜩이나 업무도 바쁜데, 콘퍼런스까지 참가해야 하나 싶었다. 강제 행사는 아니지만 지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참했다가 ‘회사 생활에 너무 소극적인 거 아냐?’라는 평가를 들을까 눈치가 보였다. 결국 김 씨는 등 떠밀리듯, 아니 스스로 등을 떠밀며 억지 지원을 했다. 하지만 7주 뒤 김 씨에겐 “회사 생활 10여 년 만에 이처럼 성취감을 느낀 건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큰 변화가 찾아왔다.

지원자는 총 200명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한화 여직원들이 모였다. 울산, 여수 등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적지 않았다. 나이도 직급도 소속사도 천차만별이었다. 공통점은 단 한 가지. 한화그룹 내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라는 점뿐이었다. 그렇지만 이 하나만으로도 뜨거운 구심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행사를 기획한 위드 TFT팀*은 전체 인원을 20개 팀으로 나눴다. 팀마다 멘토 한 명과 멘티 아홉 명을 배정했다. 멘토는 그룹사에서 인정받는 팀장급 이상 직원이 맡았다. 위드팀은 대주제만 지정해주었다. 팀별로 리더십, 자기계발, 업무 성취, 조직문화, 일과 가정, 글로벌 등의 주제를 나눠주었다. 그 밖의 진행은 지원자들에게 모두 맡겼다. 문제에서 해결책까지 지원자가 스스로 모든 걸 찾아내야 했다. 그것도 일상 업무와 병행하면서. 검불 속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위드팀은 토론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화 5스텝’이란 방식을 도입했다. 한화 5스텝이란 문제정의, 가설수립, 작업계획, 분석, 권고안 도출에 이르는 일련의 문제풀이 과정을 말한다. 한화 그룹에서 개발해 채택하고 있는 표준 방식이다.

한화그룹은 CLP(Change Leader Program)라는 4주 집중 교육프로그램을 운용하며, 팀장급 이상 임직원에게 한화 5스텝을 교육시키고 있다. 교육 참가자는 처음 1주간 한화 5스텝에 대한 이론을 교육받고, 나머지 3주 동안에는 현업에 직접 적용하는 실습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영진에게 발표한다. 실제 경영진은 권고안을 적극 검토하며 사내 제도 개선에 적용하고 있다. 위드 TFT팀도 이 CLP과정의 산물이다. CLP에 참여했던 한 팀이 ‘여성 인력 개발을 위한 전담조직이 필요하다’는 권고안을 냈고, 경영진이 이에 공감해 위드 TFT가 만들어졌다. 한화 5스텝은 그만큼 유용한 문제풀이 방식이다. 위드 워크숍도 같은 방식으로 진행했다. CLP 교육을 이수한 멘토를 중심으로 팀워크를 맞춰갔다.

이들은 함께 모여 토론하고, 온라인과 SNS 등으로 의견을 나눴다. 본업과 관계 없는 모임은 최소화했다. 정문미 위드 TFT 매니저는 말한다. “콘퍼런스를 핑계로 다른 동료 직원에게 업무를 전가시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남녀간 역차별 논란를 일으킬 수 있어 우리 행사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어요.” 위드팀 실제 공식 모임은 세 차례뿐이었다. 근무일 중 총 5일이 모임에 할애됐다. 하지만 자발적인 비공식 모임은 훨씬 많았다. “토론은 새벽까지 넘어가기 일쑤였고, 심지어 주말에 합숙까지 했어요.” 이혜지 한화S&C 매니저는 말한다. “정말 일을 일답게 할 수 있어 신났죠. 회사에선 이해관계가 얽혀서 일에 집중하기가 어렵잖아요. 평사원은 의견을 개진하기도 쉽지 않고요. 일하면서 즐겁고 신 난 건 정말 오랜만에 느껴봤어요.” 한 사원급 직원은 “콘퍼런스를 준비하며 회의나 PT 방식에 대해 많이 배웠다”며 “여기서 일주일간 배운 게 지난 2년간 회사에서 배운 것보다 더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혜지 매니저는 덧붙였다. “워크숍을 핑계로 사무실 비우는 걸 달가워 하지 않는 남자 직원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새벽에도 참여하고 주말까지 할애하면서 현업에도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니까 부정적 분위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경영진이 보여준 전폭적인 관심도 큰 힘이 됐다. 이지은 한화생명 B2B 지원팀 매니저는 말한다. “‘마음이 열리면 지갑도 열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룹이 여직원들을 위해 자금을 집행하고 시간을 할애하는 것을 보며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특히 신현우 인력팀장(상무)이 보여준 애정에 참가자들은 크게 고무됐다. 신 팀장은 참가자들이 주 소통창구로 활용하는 SNS에 일일이 댓글을 달며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다. 의례적이고 식상한 댓글이 아니었다. 참가자들이 제출한 지원 동기와 그간의 경과를 모두 파악하고 있어야만 답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억지 지원을 한 김소영 매니저도 “저도 이렇게 마음을 열게 될 줄 몰랐어요”라며 변화된 마음을 표현했다. “회사가 여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달라지는 모습에 희망이 보였죠.”

참가자들은 열띤 토론을 거쳐 권고안 100여 개를 도출했다. 도전상(1등)은 조직문화 4팀이 거머쥐었다. 이들은 ‘현장에 맞는 조직문화 구축방안’을 주제로 ▲현장 경력사원의 한화맨 교육 정례화 ▲현장에 맞는 휴가제 탄력 운영 ▲육아휴직자를 대체할 단기간 근로제 활용 ▲조직문화 활동비용 사업계획 반영 등을 제안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용 가능한 대안이란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왈칵 눈물이 났어요.” 조직문화 4팀의 황현주 한화건설 공공기획팀 매니저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1등에 선정되자마자 팀장님께 전화를 드렸죠. 마치 아빠에게 전화하는 것처럼요. 과제 수행으로 시간을 뺀 게 못내 미안했거든요. 팀장님은 외근하는 직원 전체에게 1등 소식을 전했고, 사장님께 보고가 올라갔어요.” 이는 공공기획팀 내의 경사가 됐다. 팀원들의 열화와 같은 성화에 부응해 황 매니저는 사무실에서 발표를 또 한 번 재현하며 실력을 과시했다. “전 입사 10년 차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여직원으로서 소외감도 느꼈고 회사에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죠.
하지만 이번 콘퍼런스를 진행하며 달라졌어요. 여성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회사에 대해 애사심도 커졌고요. 더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고 임원까지 도전해보자는 꿈도 갖게 됐죠.”

헌신상(2등)은 여성 리더 양성 방안을 기획한 리더십 5팀이 차지했다. 리더십 5팀 소속 심선화 한화투자증권 금융플라자 63지점장은 말한다. “회사가 여성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 요구하기 전에 여성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우리가 먼저 바꾸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거였죠.” 리더십 5팀은 이를 위해 ▲직급별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만들고 ▲성공한 리더와 함께하는 캠프나 프로그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성공모델을 보며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조직문화3팀은 경력직 리텐션(Retention·유출 방지) 방안을 제안해 3위에 올랐다. ▲리텐션 센터를 만들어 경력사원이 안착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중요한 의사결정은 공식적인 절차를 통해 내릴 수 있도록 제안했다.

조직문화 3팀 소속 이혜지 한화S&C 매니저는 말한다. “여성 경력사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보 소외’가 가장 큰 어려움이라는 결과가 나왔어요. 회의 도중 남자들끼리 담배를 피우면서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거나, 회식 자리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이 매니저 역시 경력직 사원이기에 누구보다 이 같은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정보에서 소외된 여성 경력 사원은 점차 관계가 단절되고 적응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결과적으론 한화의 경쟁력이 저하되는 것이니 이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겠죠.”

자기계발 3팀이 제안한 권고안은 톱3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에 못지않은 평가를 받았다. ▲가사나 육아 등을 이유로 회사를 퇴직한 여직원들이 향후 업무에 손쉽게 복귀할 수 있는 ‘리턴 컴퍼니’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 등 5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그중에는 ‘63마라톤 참여로 체력을 키우자’는 내용도 있었는데, 여직원들이 반길지 여부는 알 수 없다. 10월 2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콘퍼런스에는 그룹 주요 경영진이 대부분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김연배 한화생명 부회장, 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박윤식 한화손해보험 대표 등 그룹 주요 대표이사와 임원 등을 비롯해 여성 임직원 200명 등 총 3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연배 부회장은 격려사를 통해 “이 자리에 참석한 여성 인력들이 한화의 장래를 이끌어 갈 것”이라며 “여성들의 순수함, 유연함, 섬세함, 그러면서도 어머니같이 강한 면모가 한화그룹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행사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자 일부 임원은 ‘남자 직원들에게도 이런 프로그램을 적용해보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젠 남자들이 긴장할 시점이다.


일·가정 양립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9월부터 ‘일·가정 양립지원제도’를 시행하며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여성친화적 기업,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조화로운 직장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출산이나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방지하고, 임신 중 근무시간을 단축하거나 아이가 첫 돌이 될 때까지 야근을 금지하는 등 탄력근무제로 업무에 대한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여직원 비율이 높은 한화호텔앤드리조트와 한화갤러리아의 경우, 지난 1년간 탄력근무제를 신청한 여직원만 50여 명이나 됐다. 임신과 출산을 한 거의 모든 여직원들이 신청해 혜택을 보았다. 제도 시행 이전 혜택을 본 직원이 한 명도 없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라 할만하다. 또 임신 중인 여직원들에게는 분홍색 사원증 목걸이를 제공해 동료 직원들이 배려할 수 있도록 했다. 서울 태평로와 여의도, 전남 여수 등 전국 7곳에 친환경 직장어린이집을 열었고,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본사와 여의도 63빌딩에는 모유 착유실과 임산부 전용 휴게실도 마련했다.

한화그룹은 남녀 모두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매주 1회 가정의 날을 지정해 일체의 야근, 회의, 회식을 금지하고 정시에 퇴근하도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회사별로 차이는 있지만 난임(難姙)으로 힘들어하는 남녀 직원들을 위해 시술비 일부를 지원해주고 연간 최대 3개월까지 임신지원 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한화갤러리아 마케팅전략팀에 근무하는 김애경(여·37세) 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위해 1개월간 휴가를 내고 학교 적응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며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전 10시까지 출근할 수 있게 되어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 수도 있었다”며 일·가정 양립지원제도에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010년 4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인재 채용설명회에서 “한화는 화학업종으로 시작해 여성인력 채용이 부진했지만 앞으론 여성인력을 키우는 시스템을 정비해나갈 것이며, 머지 않아 한화그룹에서도 여성 CEO를 배출하는 날이 올 것”이라며 여성인력의 중요성과 육성을 강조한 바 있다.


키워드
위드 TFT: 한화그룹은 그룹 내 여성인력을 효과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태스크 포스팀 ‘위드(WITH)’를 조직해 운영 중이다. 위드는 ‘Women In Tomorrow Hanwha’의 앞글자를 딴 것으로 한화그룹 내 여성 인력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제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관련기사



FORTUNE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