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 최고의 투자자라 불리는 워런 버핏. 그는 경영자로서의 이력도 독보적이다. 버핏은1965년 5월 투자사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Hathaway의 CEO로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50년째 현직을 이어오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미국 재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CEO라 할 수 있는 앨프리드 P. 슬론Alfred P. Sloan은 23년간 GM의 CEO를 역임했다. 존 D.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을 27년간 이끌었고, 좀 더 최근의 사례를 보면 빌 게이츠가 2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 자리를 지켰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버핏의 투자 방식을 열성적으로 따르는 것과 달리, 버핏의 경영 방식이 기업문화에 미친 영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버핏의 오랜 동료이자 버크셔의 부회장인 찰리 멍거Charlie Munger 는 자사 성공의 핵심 비결로 ‘ 버크셔 시스템’ 을 꼽았다. 하지만 멍거는 올해 주주 서한에서 ‘ 내가 아는 여느 대기업 중 이 같은 요소를 반이라도 갖춘 기업은 단 한곳도 없다’고 지적했다.
버핏식 경영의 최대 특징 중 하나는 자본 배분( CapitalAllocation)에 유독 관심을 많이 둔다는 점이다(버핏에게 버크셔의 기업 인수는 투자 포트폴리오에 주식 한 종류를 추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인수가 일단 성사된 후 버핏이 기업을 되파는 일은 극히 드물다. 경영진의 자율권도 최고 수준으로 보장한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관료주의를 지양한다는 점이다. 버크셔에는 60개가 넘는 자회사 구조를 표준화하는 절차가 없다. 직원 34만 명을 거느린 대기업임에도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예산안도 작성하지 않는다. 세 번째 특징은 장기적인 사고를 가로막는 익숙한 것들을 거부하는 태도다. 때문에 이 회사에선 실적 가이드, 정기적 액면분할, 스톡옵션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버핏식 경영이 모든 기업에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버핏식 경영에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충분하다(이 부분은 나중에다시 소개하겠다). 하지만 버핏이 이끈 50년 동안 버크셔의 주가는1만 2,000배 상승한 반면, 다우존스 지수는 18배 오르는 데 그쳤다. 버크셔의 시가총액은 3,500억 달러로 미국 3위다. 분명 모방해 볼만한 성과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한 가지 밝힐 점이 있다. 필자는 버크셔의 투자자이자 버크셔 주식을 보유한 뮤추얼 펀드 이사회의 일원이다. 버핏 전기도 저술했다. 때문에 이 글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제삼자의 전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좋은 경영진이 이끄는 건실한 기업을 우호적으로 인수하는 것이 버핏 특유의 전략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버핏의 버크셔 인수는 이같은 방식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최신 주주 서한에서 버핏은 경쟁업체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던 섬유 제조업체 버크셔를 충동적으로 인수했다고 밝혔다. 버핏의 투자 파트너가 버크셔 지분을 인수한 후, 그는 회사의 경영 전략에 환멸을 느꼈다. 결국 추가 매입으로 경영권을 확보한 후 CEO를 축출했다. 지난 1965년, 버핏이 34세 때(현재84세) 일어난 일이었다.
버핏은 전임자의 실수를 통해 첫 교훈을 얻었다. 설령 이미 진출한 업종이라 하더라도, 나쁜 업종에 큰돈을 투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버크셔는 섬유업계에서 20년 넘게 고전하고 있었다. 때문에 버핏은 미약한 회사의 이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더 가능성 높은 분야로 눈을 돌렸다. 공장을 폐쇄한 1985년, 버크셔는 보험, 신문, 제과, 제조업체의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을 확보했다. 대형 일반주식으로 포트폴리오를 갖춘 기업으로 변모한 것이었다.이 무렵 버핏은 공동 투자를 청산한 상태였다. 투자 파트너들은 버크셔의 지분을 받았고, 버핏은 개인 최대 주주가 되었다. 이 점이중요한 이유는 버크셔가 여전히 공동 투자 체제와 유사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버크셔는 이사진에게 형식적인 수준의 연봉을 지급하고 있다. 책임 보험도 제공하지 않는다. 또 이사들은 버크셔 주식을 대량 매수한다. 이는 미국 기업 중에선 극히 드문 형태다. 그렇게 하면 이사들은 회사의 미션에 진심으로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가질 수밖에 없다.
파트너 정신은 버핏과 주주의 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버핏은 (이익 창출 가이드 발행 등) 단기적인 주가 부양책을 실시하지 않는다. 장기적인 보유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주식가치의 희석을 우려해 기업 인수 때 주식을 지급 수단으로 활용하는 일도 거의 없다.
버핏은 일반 투자자와 경영진의 이해관계를 분리시킬수 있다는 이유로 스톡옵션도 꺼리고 있다. 버크셔의 경영진 보상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다른 게 사실이다. 버핏과 멍거의 급여는 각각 10만 달러이며 보너스는 따로 없다( 하지만 많은 CEO들이 하루에 10만 달러 이상을 받기도 한다). 버핏의 급여 체계를 여느 기업들이 따라 하기 힘든 이유가 욕심 때문이라면, 단기적인 결과에 무관심한 성향을 본받기 힘든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이른바 경영자의 불안이다. 수많은 CEO가 월가를 만족 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몸부림치며 살아간다. 그 결과 본질과 차이가 있어도 당장 보이는 숫자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유동성 증가를 목적으로 단행한 액면분할은 가치 분산(“unlock”value)을 목적으로 하는 스핀오프(회사 분할)처럼 종종 이런 마음가짐의 결과물로 나타난다.
조지 워싱턴대 교수 로런스 커닝엄Lawrence Cunningham은 ‘ 버크셔, 버핏을 넘어서(Berkshire Beyond Buffett)’라는 책을 저술한 바 있다. 그는 버핏의 경영 철학이 캐피털 시티스/ABC *역주: 미국의 미디어 기업의 전 CEO 톰 머피 Tom Murphy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 있다(버핏은 캐피털 시티스의 주요 투자자였으며, 머피는 현재버크셔의 이사로 활동 중이다). 그러나 커닝엄은 상장기업이 버핏식 경영을 추구할 경우, 장애물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GM의 단기 주주들이 (파산에서 벗어난 지 몇 년 안 된) 회사에 수십억 달러의 현금 지급을 요구했던 것이 좋은 사례다. 투표권 분쟁을 막기 위해 경영진은 이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비상장 기업과 유사한 경영권을 지닌 버핏은 그런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버크셔는 상장 기업이며, 버핏의 방식은 일반적인 경영 규범을 어기고 있는 측면이 있다. 버핏은 최근 “우리는 자회사 운영에 있어 경영진을 신뢰한다”고 쓴 바 있다. 하지만 2011년, 버크셔의 에너지 사업을 총괄하던 데이비드 소콜 David Sokol이 특정 회사에 1,000만 달러를 투자한 후 버크셔에 회사 매각을 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회사의 신뢰 시스템이 타격을 입은 적이 있다. 커닝엄은 이사건이 버크셔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긴 했으나, 좋은 제도의 한 가지 단점을 드러낸 데 불과했다고 본다. 버크셔 경영에 관료주의적인 요소가 강화될 경우 “의사결정 속도가 늦어지고, 기회를 놓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예방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 커닝엄의 생각이다.
버핏이 경영했기 때문에 버크셔가 성공한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많은 주주에게 크나큰 고민을 안겨 주고 있다. 이견은 있겠지만,버핏이 만약 (버핏의 지인, 친구, 가족의 비중이 덜해서) 자신에게 덜 우호적이고 원칙에 더욱 충실한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65세 무렵 해임됐더라면 지금쯤 주주들에게 돌아간 수익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멍거는 “워런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라는 수사적반문으로 이를 대신 표현했다.
그러나 버핏이 특별하다는 이유만으로 버크셔를 예외 취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 재계가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며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고 있다는 버핏과 멍거의 지적은 절대적으로 옳은 주장이다. 멍거는 주주 서한에서 “버크셔 시스템을 응용하고 도입하는 기업 수가 훨씬 늘어나야 한다. 관료주의 시스템이 가진 최악의 단점은 암과 비슷한 만큼, 암처럼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회장이 이토록 거친 비유를 써 가며 동종업계 종사자들에게 무례한 잔소리를 하는 기업을 다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경영인들도 한번 모방해볼 필요가 있다.
로저 로웬스타인 Roger Lowenstein은 ‘미국의 은행: 연준 창설을 향한 험난한 여정’(2015년 10월 발간 예정)의 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