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그 맥밀런 Doug McMillon은 어쩌면 월마트 역사상 창업주 샘 월튼 이후 가장 잘 준비된 CEO인지도 모른다. 변화에 느린 월마트가 과거 어느때보다도 거센 도전에 직면한 지금, 이는 환영할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포춘이 역사상 최대 기업인 월마트가 맥밀런의 지휘 하에서 어떻게 디지털 시대에 대응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By Brian O'keefe
20년이 넘는 월마트 근무 기간 동안, 더그 맥밀런은 창고에서 트럭 화물을 하역하기도, 남아공에서 24억 달러 규모의 인수를 지휘하기도 했다. 청소년 스포츠웨어, 핼러윈 사탕, 포푸리 등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구매한 바이어가 된 적도 수 차례였다. 지하 벙커에 쌓여 있던 의류 재고를 찾아내 판매한 적도, 이유식 PB제품의 홍보에 적극 나선 적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면서도 그는 (거의) 언제나 차분함을 유지했다. 그 누구도 맥밀런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2014년 2월 1일 화요일, 그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의 CEO가 된 첫날만큼은 달랐다. 맥밀런은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맥밀런은 그 날 아침 일찍 출근해 새 사무실로 안내됐다. 가로 4.6m에 세로 5.1m, 저렴한 목재 패널이 붙은 이 검소한 사무실은 바로 창업자 샘 월튼이 쓰던 집무실이었다. 맥밀런의 몸이 약간 굳었다. “책상 뒤에 도무지 앉을 수 없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그래서 그는 책상 뒤가 아닌 방문객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조금 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의 상사였던 전임자 마이크 듀크 Mike Duke가 그를 보러 CEO 사무실에 들렀다. 책상 저편에 앉은 맥밀런은 “저쪽에 못 앉겠다. 당신이 앉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샘 월튼의 사무실 아닌가”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듀크는 이해한다는 뜻의 웃음을 터뜨린 후 빈 의자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사회에 의해 CEO로 선임됐으니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맥밀런(48)이 새 임무의 막중함에 잠시 겁을 먹었다고 해서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실 그는 1988년 월튼이 퇴임한 이후 CEO에 오른 불과 네 번째 인물이다. 아칸소 주 벤턴빌 Bentonville 소재 월마트 본사에서 월튼은 여전히 일종의 신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월튼의 유명한 발언을 조금 수정한 ‘돈을 아끼자, 더 잘 살자(Save money. Live better)’는 현재 월마트의 표어인 동시에 기업의 핵심 미션이다. 그가 남긴 다른 소박한 명언들도 월마트 건물벽에서 볼 수 있다. 월튼의 영향력은 다른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창업주의 장남인 롭 월튼 Rob Walton은 여전히 회장직을 맡고 있다. 세계 최대 부호 중 하나인 월튼 가문은 월마트 주식의 약 50%를 보유하고 있다. 월튼의 뒤를 이어 CEO직을 맡은 데이비드 글래스 David Glass, 리 스코트 Lee Scott, 마이크 듀크 세 사람도 모두 재계의 스타로, 미국 상위권 유통업체에 불과했던 월마트를 현재의 왕좌로 올려놓은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월튼의 책상에 앉는다는 것 자체가 보통 일이 아니라는 얘기가.
맥밀런은 “오래 이 곳에서 근무하면서 내게 지워진 책임의 무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고경영자가 되면 한 차원 높은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3년 연속, 통산 11회 포춘 500대 기업 1위를 차지한 월마트를 이끈다는 건확실히 보통 기업의 경영과는 다른 무게감을 가진다. 월마트는 2014년 매출 4,587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2위인 엑손모빌과의 차이가 무려 1,030억 달러나 났다. 월마트의 매출을 국가별 GDP 순위와 비교해 보면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 사이인 28위에 해당한다. 현재 월마트는 27개국에서 1만1,0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월마트 내부에선 동료(associate)라 부른다—수만도 220만 명에 달한다. 숫자로만 보면 미 국방부와 중국군에 이어 세계 3위 수준이다. 때문에 월마트를 바라보는 감시의 눈길도 만만찮다. 월마트는 SNS에 하루 6만 회 언급되고 있다. 이 숫자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월마트 최다 판매 품목인 바나나를 살펴보자. 월마트는 매년 10억 톤의 바나나를 판매한다. 월마트는 모든 것이 초대형이다.
그에 따른 문제도 없지 않다. 매출이 5,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등 월마트는 전례 없는 수준의 성장 일로를 걷고 있다. 작년 평범한 수준인 3% 성장률을 기록했는데도 145억 달러 매출 증대를 이뤄냈다. 2014년 기준으로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인 홀푸드 Whole Foods나 호텔업체 매리엇 Marriott의 총 매출보다도 큰 규모이다. 하지만 월마트의 2015년 매출 증가율은 1% 선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게 월가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주요 성장 시장인 중국에서의 성장세가 둔화됐고, 최근 6분기 연속으로 동일점포 매출성장률이 정체 또는 감소세를 겪고 있다. 월마트 창립 이래 이 정도로 성장이 부진했던 적은 극히 드물었다.
지난 5년간 월마트의 주가는 47% 상승했다. 이는 S&P 500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며, 코스트코, 홀푸드, TJX *역주: 의류 및 생활용품 판매업체 등 다른 유통업체의 수익률에 비해서도 저조한 수익률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월마트가 슈퍼센터*역주: 월마트 매장의 한 종류를 앞세워 거침없이 진군하며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꿔놓는 파괴적인 힘을 자랑했던 지역에서도 현재 부문별로 격렬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타깃 Target이나 코스트코 같은 경쟁 업체들이 최근 예상보다 좋은 실적을 발표했다. 크로거 Kroger, 세이프웨이 Safeway등 식료품 소매점도 가격경쟁력 측면에서 적응력과 경험을 쌓으며 월마트보다 ‘신선한’ 상품 제공으로 질 좋은 대량생산식품과 조리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월마트의 미국 매출 55%가 식품 매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은 문제다).
한편 저소득층 고객은 패밀리 달러 Family Dollar와 달러 제너럴 Dollar General 같은 일명 ’ 달러 스토어(dollar store)‘에게 빼앗기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깊은 침체와 최근 유가 상승이 겹쳐져, 시 외곽에 위치한 월마트 슈퍼센터까지 차를 몰고 갈 여력이 없어진 소비자들이 소규모 매장에서 저가 제품을 공급하는 이들 업체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지난 10년간 미국 달러스토어 점포 수는 1만7,000개에서 50% 상승해 현재 2만5,000개를 돌파한 상황이다.
올해 500대 기업 순위에서 29위를 차지한 아마존의 성장도 물론 빼놓아선 안 된다. 지난 3년간 월마트의 매출은 총 8.6%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아마존은 (수익성에 기복이 있긴 해도) 거의 두 배 가까이 성장했다. 시장가치 1,730억 달러의 아마존은 시가총액 2,650억 달러의 월마트를 순조롭게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의 영향력은 단순한 숫자를 훌쩍 넘어선다. 제프 베저스 Jeff Bezos가 창립한 아마존은 소비자의 습관과 기대를 바꿔 놓았다. 그 결과 월마트의 상황이 변화되고 있다. 판매자의 통제권이 큰 ‘푸시(push)’ 모델에서 소비자의 권한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강해진 ‘ 풀( pul l )’ 모델로 전환하는 걸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세인트루이스 소재 투자자문사 에드워드 존스 Edward Jones의 분석가인 브라이언 야르브로 Brian Yarbrough는 “아마존과 온라인 유통업의 등장은 아마도 월마트의 등장 이후 유통업계에서 벌어진 가장 파괴적인 변화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모든 이유가 더해지면서 월마트는 역사적인 갈림길에 섰다. 사내에선 앞으로의 특별한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는 맥밀런의 능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내부 인재인 그는 일찌감치 경영자감으로 꼽혔다. 유망한 인재가 노력 끝에 ‘ 큰 물’ 에 도달하는 전형적인 과정처럼,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두루 업무를 거쳤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사회가 맥밀런을 선임했다기보단 단지 그의 대관식을 진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
글래스의 뒤를 이어 2000년부터 9년간 월마트의 최고경영자로 재직한 리스코트는 “이사회에게 맥밀런이 월튼 이래 최고의 CEO가 될 것이라 말했다” 고 밝혔다. “그는 우리보다 준비가 훨씬 잘 되어 있다. 그의 세계관, 그 세계속에서 차지하고 있는 월마트의 좌표에 대한 그의 이해, 변화가 무척 빠른 현재의 환경을 감안할 때, 그리고 그의 나이와 젊음, 그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맥밀런은 단순히 변화에 대응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적극 수용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이라 예상한다.”
맥밀런은 외부의 경영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페이스북의 최고 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 Sheryl Sandberg는 지난해 맥밀런을 포함한 월마트 경영진이 페이스북을 방문했을 때 그와 만남을 가졌고, 이후로도 연락을 취하고 있다. 샌드버그는 맥밀런을 일상적인 경영 활동에 집중하면서도 혁신을 이끌 수 있는 드문 경영인이라 평가했다. “리더들을 만나보면 현재 사업 추진과 성장을 위한 혁신 추구 중 어느 한 쪽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더그를 만나 보니 양쪽 모두에 관심이 있다는 게 명확해서 흥미로웠다. 그가 하는 질문과 대화를 보면 그런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할 일이 많은 맥밀런은 첫 16개월간 절박감을 안고 자신의 역할에 임했다. 주요 직책에 새 인물을 기용하고, 전자상거래 투자를 가속화 했으며, 월마트 직원 수십만 명의 최저임금을 높여 언론의 주목도 받았다. 현장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고 매장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집중적 노력의 일환이었다. 맥밀런은 현재 창업 반세기를 맞는 월마트의 재탄생과 함께 실리콘밸리 풍의 신진대사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칸소 주 출신인 그는 이 일이 쉽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다. 세심한 성격인 그는 직원들과 잡담을 하듯 편안하게 데이터를 분석한다. 그는 “1년 전에 비해 변화의 속도가 빨라졌다고 생각한다”며 “일부 영역에선 진전이 보인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도 이를 방증하는 하나의 근거다.
현재의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그런 압박은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과연 맥밀런은 너무 늦기 전에 월마트를 바꿀 수 있을까?
필자는 얼마 전 어느 화요일 저녁, 월마트의 최신 유통 실험이라 할 수 있는 월마트 픽업형 식료품점(Walmart Pickup-Grocery)에서 맥밀런을 만났다. 벤턴빌 본사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매장은 작년 9월에 문을 열었다. 기존 매장이라기 보단 주차장이 딸린 소형 창고에 더 가까운 이 매장에선 소비자가 차를 몰고 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을 받아갈 수 있다. 매장에 도착하면 우선 형광 초록색의 무인기기 속 디지털 화면을 통해 회원 로그인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33개 주차장 중 한 곳을 배정 받으면, 월마트 직원이 주문 받은 상품을 카트에 싣고 나가 소비자의 SUV나 소형 밴의 짐칸에 실어준다.
인터뷰 날, 맥밀런은 오후 6시 직전에 도착했다. 그의 차는 지프 Jeep사에서 제조한 검은색 루비콘 Rubicon이었다. 잘 닦인 차의 타이어 테두리가 남성적인 분위기여서 유명 지프차 허머 Hummer의 축소판 같았다. 맥밀런은 정확한 모델명은 모르겠다고 털어놓으면서 “지프를 꼭 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야 매장에 가서 차 전체가 검은색인 걸로 하나 달라고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키 188cm인 그는 갈색 머리 사이로 한두 가닥 회색 머리카락이 있긴 했어도 실제 나이(48세)보단 젊어 보였다. 고등학생 아들의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중이었다는 그는 벤턴빌 타이거즈 팀 로고가 붙은 검은색 스포츠 점퍼, 청바지, 운동화 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이런 종류의 픽업 시설로는 미국 내에서 유일한 매장이다. 월마트는 그 외에도 소비자와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을 찾기 위해 다른 여러 파일럿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월마트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물건을 미국 5개 도시의 오프라인 매장에서 찾아갈 수 있는 시스템도 시험 운영하고 있다. 사무실 밀집 지역의 바쁜 소비자들을 위해, 미리 식료품을 주문하면 저녁 시간대 인근 주차장의 트럭에서 물건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마련하고 있다(이 같은 아이디어 중 상당수는 영국의 월마트 자회사인 슈퍼마켓 체인 아스다 Asda에서 가져왔다).
모든 실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월마트의 정적인 신진대사 흐름을 깨고, 혁신을 위해 ‘빠른 실패’를 익히는 것이다. 패배를 장려하기는커녕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경향이 있던 월마트 문화에서 이는 굉장히 새로운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맥밀런은 “실패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면서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얻은 교훈도 있다. 월마트가 약 1,393㎡ 규모의 식료품 픽업 시설을 개장했을 당시, 경영진은 원래 직원 35명과 10,000SKU *역주: 유통업계에서 물품 종류를 세는 단위 규모로 운영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직원 54명이 필요했고, SKU도 8,000으로 줄이고 나서야 재고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시설 내부에는 콜게이트 Colgate 치약부터 허니번치스 오브 오츠Honey Bunches of Oats 시리얼까지 온갖 물품이 쌓여 있었고, 대형 냉동고도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평균 14만 2,000 SKU를 자랑하는 슈퍼센터에 비하면 구소련의 물자 부족이 떠오를 만큼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기자와 함께 창고를 돌아다니던 중 맥밀런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샘 월튼의 명언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주목하고 이를 전달하라’가 적힌 표지였다. 맥밀런은 고개를 끄덕인 후 “오늘 처음 보는데, 좋은 말 같다”고 말했다. 간판을 지나 복도를 걸어 내려가면서 그는 말했다. “가끔은 저게 다 월튼이 한 말인지 궁금하다.”
아칸소 주 동쪽 존스보로 Jonesboro에 살던 그의 가족은 맥밀런이 16세 때 치과의사였던 아버지를 따라 작은 마을이었던 벤턴빌로 이사했다. 당시 샘월튼의 제국이 한참 건설 중이었기 때문에 치과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이주를 했다. 맥밀런 가족은 꾸준히 교회에 나갔다. 세 아이 중 맏이인 더그는 농구 등 여러 가지 스포츠를 즐겼고, 벤턴빌 고등학교 농구팀에서 포인트가드로도 뛰었다.
그는 크게 될 아이로 여겨졌다.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에 대한 기대치가 무척 높으셨다.”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는 왼손을 머리 위까지 들어올린 후, 오른손도 같은 높이까지 올렸다. “그리고 어머니도 늘 ‘ 넌 할 수 있어’ 라고 귀에 속삭여 주셨다.” 맥밀런은 자신의 강한 경쟁본능이 어머니로부터 왔다고 말했다. “탁구를 하든 보드게임을 하든, 늘 그런 정신을 불어넣어 주셨다.”
고등학교 시절 맥밀런은 두 번의 여름방학을 월마트 물류창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냈다. 시급이 6.5달러로 맥도날드의 4달러보다 많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만 해도 유통업계에 종사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페이어트빌 Fayetteville에 위치한 아칸소 대학교(University of Arkansas)에 진학한 후에는 여름방학마다 벤턴빌 은행(Bank of Bentonville)에서 일 했다. 졸업 후에는 털사 대학교(University of Tulsa) 경영 대학원에 등록했다. 그는 2학년을 앞두고 예전에 인터뷰를 해 본 적이 있는 빌 필즈 Bill Fields라는 월마트 중역에게 전화를 걸었다. 맥밀런이 졸업 후 월마트의 유통업계 바이어 교육 프로그램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자, 필즈는 894번 매장에서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답했다. 직책은 보조 매니저였다. 맥밀런이 아직 대학원 과정 중에 있다고 말하자 필즈는 “‘무슨 상관이야. 일주일에 52시간 일하는 건데. 해낼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얼마 후 맥밀런은 학교에 자신의 취업 사실을 알렸다.
맥밀런은 처음 시작하는 순간부터 일과 사랑에 빠졌다. 출근 첫날은 꿈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좋았다. 상사는 그에게 낚시용품을 담당하는 스포츠용품 바이어 교육을 받을 것이라 일러준 후 분류해야 할 서류철 하나를 건네주었다. 몇 분간 서류를 살펴보던 맥밀런은 손글씨가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 월마트 트라일린 낚시용품(Walmart Trilene Fishing Line)’과 가격, 그리고 ‘케이마트 Kmart *역주: 월마트와 유사한 창고형 유통업체 제품의 더 낮은 가격이 적혀 있었다. 메모지에는 누군가의 이름 머리글자도 적혀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맥밀런은 바로 상사를 찾아갔다.
“이걸 누가 쓴 건지 아나?” 매니저가 말했다. “샘 월튼이 쓴 거야. 자네는 언제부터 이걸 갖고 있었나?” 맥밀런은 “방금 첫 출근한 신참”이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케이마트를 꺾기 위한 전략으로 낚시용품의 가격대를 낮춘 후 월튼에게 보고했다.
1990년의 첫 임무를 시작으로, 맥밀런은 월마트의 구매 부문에서 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여성의류, 공예품, 직물 구매 담당을 맡았다. 기저귀, 여행용 가방, 사무용품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입사 초기부터 차기 리더로 꼽힌 끝에, 그는 월마트의 회원제 매장인 샘스클럽 Sam’s Club의 CEO가 되었다. 2009년 스코트의뒤를 이어 듀크가 월마트의 CEO에 오르자, 맥밀런은 듀크가 이끌었던 해외사업부의 책임을 이어 받았다.
맥밀런의 강점 중 하나는 듣는 능력이다. 인스타그램의 공동창립자 겸 CEO인 케빈 시스트롬 Kevin Systrom은 작년 가을 월마트 이사회에 합류했다. CEO 선정을 위해 맥밀런을 처음으로 만난 날, 시스트롬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시스트롬은 맥밀런에 대해 “그동안 만나 본 사람들 중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누구보다도 강렬하고 우호적인 인물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맥밀런은 누군가와 말을 할 때 대화 상대에게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 딴 데 정신을 파는 법이 없다. 다음 미팅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100% 지금의 대화 상대만 본다.” 시스트롬은 “실리콘밸리에서도,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이런 경영자는 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오랜 월마트 근무 경험과 이런 집중력이 더해지면서 맥밀런은 직급을 초월해 어느 직원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됐다. 맥밀런은 현실을 가감 없이 알고 싶다면 본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임도 잘 알고 있다. CEO 부임 후 처음 며칠간 미시시피로 월마트 트럭을 운전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미시시피 주 브루크헤이븐 Brookhaven에 위치한 월마트 물류센터에 도착한 맥밀런은 52세의 운전사 리키 올리버 Rickey Oliver와 짝을 이뤄 미시시피주 매기 Magee에 있는 매장으로 배달을 나갔다. 도로에서 왕복 3시간 반을 함께했으니 대화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올리버는 곧바로 맥밀런의 정곡을 찔렀다. 그는 도로에 진입하자마자 “월마트 CEO로 무엇을 할 계획인가” 라는 질문부터 던졌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맥밀런은 올리버에게 자사 웹사이트인 월마트닷컴을 잘 아느냐고 물어본 후, “거기에 집중할 계획이다. 월마트닷컴을 1위로 만들 생각”이라고 답했다. 올리버는 “그 후 월마트닷컴에 대해 맥밀런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 고 말했다.
올리버는 몇 가지 피드백을 제공했는데, 그 중에는 월마트닷컴이 아마존보다 훨씬 검색이 힘들다는 점도 들어 있었다. 월마트 웹사이트에서 야구 장비를 검색하면, 야구배트나 장갑이 아닌 비디오게임 같은 다른 물건들이 최상단에 떴다. 반면 아마존은 원하는 결과가 맨 위에 있었다. 맥밀런은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고, 올리버는 CEO의 약속이 결국 지켜졌다고 말했다. “월마트닷컴은 예전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다.”
헤어질 때 맥밀런은 올리버의 조언에 감사하면서 책 한 권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저널리스트 브래드 스톤Brad Stone이 아마존의 성장을 주제로쓴 ‘모든 것을 파는 가게(The Everything Store)’였다. 며칠 후 책이 도착했다. 올리버는 “책을 읽어본 후 내 감상을 맥밀런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맥밀런은 답장을 했을까? 올리버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메일을 보내면 언제나 몇 분 안에 답장이 왔다.”
맥밀런은 요즘 세일즈에 열심이다. 2월 말 어느 청명한 오후, 그는 실리콘밸리 최고 두뇌들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내 강당의 연단에 앉아 있었다. 그는 인재를 확보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한 대학원생이 왜 월마트에서 한번도 이직하지 않았냐고 묻자, 맥밀런은 대형 유통업체 경영이 워낙 복잡해서 한눈 팔 틈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는 “벤처기업이라는 말은 상당히 멋있게 들리지만…”이라고 운을 뗀후, “월마트보다 더 어려운 일을 하는 벤처기업이 있다는 걸 들어보지 못했다. 어려운 도전을 원한다면 창립 52년 차인 이 정도 규모의 기업을 선택해 변화를 일으켜 보라.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덧붙인 후, 잠시 뜸을 들였다. “월마트에서 일하고 싶다면 내게 전화를 해라.”
최근 월마트는 매력적인 직장이 되기 위해 기술과 인재에 거액을 투자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샌 브루노 San Bruno에 위치한 월마트 전자상거래 사업부의 직원 수는 4년 전 500명이었지만 현재는 약 2,500명에 이르고 있다. 월마트 전자상거래 담당 CEO인 닐 애시 Neil Ashe는 이를 ‘인재 밀도’ 높이기라 부른다. 이들은 무(無)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일궈냈다. 또한 3년 전 300만 종이었던 월마트닷컴의 판매 상품 수를 700만 종까지 늘렸고, 올 연말까진 1,000만 종을 돌파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올 봄 월마트는 1곳당 면적이 약 9만2,900㎡가 넘는 물류센터를 전국 4개 지역에 신규 개장했다. 또한 아마존을 직접 겨냥해 아마존이 우수 고객에게 제공하는 무료 배송 서비스인 프라임Prime의 월마트 판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맥밀런은 자신의 전략이 디지털 전략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할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전략은 ’모든 것(everything)‘ 전략이다. 맥밀런은 면적 총합 9,290㏊(뉴욕 맨해튼의 두 배)에 달하는 월마트 매장 공간과 온라인의 속도를 결합해 휴대전화로 상품 주문 및 배달받기, 온라인 주문 후 매장에서 찾아가기, 매장 통로를 직접 돌아다니며 쇼핑하기 등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방식으로 쇼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자 한다. 업계에선 이를 모든 경로를 아우른다는 뜻으로 ‘옴니채널 omnichannel)’ 방식이라 부른다. 별로 놀랄 일은 아니겠지만, 월마트의 목표는 옴니채널 유통업계의 초대형 기업이 되는 것이다.
맥밀런은 목표 달성을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 디지털 못지 않게 아날로그적이기도 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CEO로 임명됐을 때, 맥밀런은 미국 내 월마트 매장을 마지막으로 담당한 지 10년도 넘은 상황이었다. 샘스클럽에서 몇 년 일한 후 해외사업부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로서 그의 첫 임무는 매장 개선이었다. 그러나 멋진 일은 아니었다. 재고가 떨어지기 일쑤였고, 식료품 진열대 위 상품들은 경쟁사보다 덜 신선해 보였다. 대기업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10년 단위로 정리된 지난 반세기 동안의 10대 유통업체 목록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맥밀런은 그 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첫 번째 큰 결정은 미국 매장 담당자로 뉴질랜드 출신의 그레그 포런 Greg Foran을 임명한 것이었다. 부드러운 말투 속에 치열함이 숨겨져 있는 포런은 7월에 54세 생일을 맞았다. 그는 호주의 슈퍼마켓 체인 울워스 Woolworths에서 30년간 근무했으며, 매장 개선 업무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포런은 ‘ 꾸밈없는 평가(unvarnished appraisal)’라는 3개월 속성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매장 매니저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요청한 후—수천명이 응답했다-이를 파고들어가 월마트의 4,500개 미국 매장 평가 척도에 반영했다.
청결, 신속, 친절, 재고 등 핵심 척도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월마트는 매일 이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한다) 노동비용은 얼마인가?
데이터를 보자, 월마트에 진지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맥밀런과 포런은 책임성을 목표 수준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직원 월급을 올려야 한다고 판단했다. 맥밀런은 2월 매장 직원 최저시급을 올해 9달러, 내년에는 10달러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타깃이나 TJX 등 경쟁사도 임금을 인상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더 큰 정비 작업의 일환일뿐이었다. 월마트는 매장 직원 교육시간을 늘리고 ’구역 매니저(zone manager)‘라 불리는 직책을 없애 최전선 직원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했다.
포런은 결과를 한시바삐 보고 싶어한다. 그는 연말 쇼핑 시즌이 시작되기 전인 10월 1일까지 모든 매장의 대규모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못박았다. 직원들에게 와 닿도록 ‘10/1까지 10-4’라는 진부한 표어도 내걸었다. 요즘 월마트 본사 주변에선 9월 30일 자정까지 카운트다운하는, 디지털 시계 옆에 걸린 이 표어 표지판을 자주 볼 수 있다.
현재 월마트가 직면한 과제는 규모가 크고 본질적으로 기술적인 측면이 있다. 관료제를 척결하기 위한 요즘의 노력을 보면 예전의 월마트가 떠오른다. 최근 월마트의 고위 임원들 사이에선 “누가 D를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인기다. D는 결정(decision)을 내릴 권한을 뜻한다. 과거 노란색 포스트잇이 상징했던 샘월튼의 주장, 소비자에게 더 나은 것을 주려면 누군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의 2015년 판인 셈이다.
하지만 벤턴빌 타이거스 축구팀에서 왼쪽 윙으로 뛰는 고등학생 아들을 볼 때만큼은, 역사상 가장 큰 기업의 D를 가진 맥밀런이 놀라울 정도로 편안해 보였다. 맥밀런은 아들이 거친 플레이로 옐로카드를 받을 때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맥밀런은 오히려 이 사건를 예측했다. 주심이 판정을 내리기 전 “이걸로 옐로카드 받겠는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인터뷰가 민감한 주제에 접근할 때에도 긴장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필자에게 월마트의 이미지 실추가 얼마나 큰 악재일지 물어본 후, 스스로 이에 대한 답을 내렸다. “우리가 아는 월마트와 일부에서 보는 시각간의 큰 격차를 생각하면 기운이 빠진다.” 그는 “우리가 고객을 제대로 대하지 않는다고 보는 분들도 일부 있다. 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건지 개인적으로 가끔 궁금해지기도 한다. 분명 중요한 일이다. 기업 이미지는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월마트가 큰 규모 때문에 성장을 향한 궤도 수정이 어렵듯이, 이미 일반대중 사이에 확고한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어 이미지 개선도 쉽지 않다. 임금인상 발표 이후 칭찬이 쏟아졌지만, 인상분을 메우기 위해 근무 시간을 줄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금세 이어졌다. 그리고 맥밀런의 거액 연봉도 지적됐다(2015년도 주주 위임장 제출 때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난 해 그는 1,940만 달러를 받았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월마트가 배관 문제를 이유로 5개 지점을 닫으면서 2,000명이 넘는 직원이 휴가에 들어갔다. 하지만 언론은 다른 이야기에 집중했다. 문을 닫은 지점 중 한 곳이 유명 반(反)노조 기업에 맞서 노동자 파업이 일어났던 장소에 세워졌던 터라, 이에 대한 응징으로 직장이 폐쇄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맥밀런은 이에 대해 “임시 휴업이다. 5개 매장 모두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100회가 넘는 배관상의 문제가 발생했다. 그게 그렇게 큰 기삿거리인가? 정말로?”라고 반응했다.
맥밀런은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서 선입견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는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말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 그런 선입견의 신뢰도를 낮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육류 및 유제품 제공업체의 가축 항생제 사용 감축을 압박할 목적으로 지난 5월 시작한 새 캠페인이 좋은 예이다.
똑같은 문제로 9년 간 고민했던 스코트도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매장이 더럽고, 재고도 없고, 손님을 대하는 매장 직원에게서 친절과 도와주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악평이 진실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는 “반대로 매장 분위기가 친절하고, 재고가 충분하고, 매장 직원이 고객에게 인사하고, 계산원이 고객에게 감사 인사를 건넨다면 그 고객은 비판론자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맥밀런은 이를 세 단어로 줄여 표현한다. “최고의 매장을 운영하라(Rum great stores).” 그가 선택 받은 이유다.
미스터 샘과 그의 목자들
샘 월튼의 후계자들이 각각 월마트의 성장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살펴본다.
샘 월튼 SAM WALTON / 1962-88*
총주주수익률 6,985% 증가
전설적인 존재가 된 그의 말 ‘돈을 아끼자, 그리고 더 잘 살자’는 아직도 월마트의 미션으로 남아 있다.
*1974~1976년 동안은 론 메이어가 샘 월튼 휘하에서 기업을 경영했다.
데이비드 글래스 DAVID GLASS / 1988~2000
총주주수익률 1,936% 증가
슈퍼센터 시대가 도래했다. 글래스는 식료품 판매와 해외진출을 통해 월마트에 새로운 성장 시대를 열었다.
리 스코트 LEE SCOTT / 2000-09
총주주수익률 20% 하락
물류 전문가인 스코트는 고난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역할을 맡았다. 월마트를 지속가능성 분야의 선두주자로 이끈 CEO이기도 하다.
마이크 듀크 MIKE DUKE / 2009-14
총주주수익률 79% 상승
듀크의 대규모 IT 투자 덕분에 오프라인 유통기업인 월마트는 매장 매출이 둔화된 상황에서도 전자상거래 업계에서 입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더그 맥밀런 DOU MCMILLON / 2014~현재
총주주수익률 3% 상승
지난 16개월간 맥밀런은 월마트의 온라인 진출을 지속하면서 오프라인 매장 정비 작업을 진행해왔다.
재창조의 4단계
유통업계 개척자로 재탄생하기 위한 CEO 더그 맥밀런의 계획
1. 전자상거래도 월마트 규모로: 세계 최대 규모의 프라이빗 클라우드를 만든다(완료). 아마존의 본진에서 아마존과 경쟁한다(진행 중).
2. 옴니채널을 생각하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방식으로든 손쉽게 물건을 사고 받아 볼 수 있도록 하라.
3. 벤처기업 식으로 체질을 바꿔라: 실험, 실험, 실험. 실리콘밸리로 가서 신선한 인재를 공략하라.
4. 창업자 정신으로 돌아가라: 샘 월튼의 정신이 필요하다. 완벽한 매장을 위해 지역 매니저의 자율권을 확대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