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공을 위해 CEO가 가져야 할 덕목을 열거해보자. 강력한 카리스마, 다양한 사업수완.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소통’ 능력이다. 임직원과 리더의 원활한 양방향 소통은 구성원 간의 신뢰를 이끌어내 회사의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김태섭 바른전자 대표는 그 누구보다 소통의 힘을 믿는 CEO다. 그는 소통의 힘으로 반도체종합기업 바른전자를 3,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김태섭 대표가 말하는 소통의 힘,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성공의 메시지를 들어봤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사진 차병선 기자 acha@hmgp.co.kr
"사실 두 번째라 별로 바쁘지 않았어요. 이런 걸 얘기해도 될까요? (웃음)” 김태섭 바른전자 대표(52)는 최근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탔다. ‘ 김태섭은 누구?’ 라는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다. 산업 뉴스가 아닌 ‘연예 뉴스’란에서 그의 이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최근 그는 귀순가수 김혜영 씨와 결혼했다. 기자는 먼저 알콩달콩한 연애스토리가 궁금했다. 하지만 조금은 망설여졌다. 김 대표는 이번이 두 번째 결혼이았다. 결혼과 관련한 질문이 다소 민감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일단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궁금증은 인터뷰 말미에 풀기로 하고 그와의 대화부터 시작하기로했다.
그의 직업은 CEO다. 30여 년 가까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 종사한 벤처 1세대 기업인이다. 반도체종합기업 바른전자의 성공신화 역시 그의 작품이다. 연 매출 600억 원대의 기업을 불과 5년 만에 3,000억 원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최근에는 기존 메모리반도체 영역에서 벗어나 사물인터넷에 포함되는 통신 모듈 칩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기준 사물인터넷 통신 모듈 칩 분야 매출은 약 100억 원 규모였다.
그가 말하는 바른전자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김 대표는 바로 ‘소통과 신뢰’를 성장의 키워드로 꼽았다. “구성원과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리더가 생각하는 가치와 목표를 구성원들이 신뢰하고 따라와야 회사의 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바른전자 인수 직후부터, 구성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결과물이 바로 편지였습니다.”
사실 편지라는 매개체는 다른 기업 CEO들도 자주 애용하는 소통 도구다. 김 대표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편지에 진정성을 담기로 했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편지 소통으로 구성원들에게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말한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그저 그런 뉴스레터로 바라보는 직원들도 많았고요. 진정성을 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때론 개인적인 고민과 회사가 처한 상황 같은 민감한 내용도 편지에 담았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임직원들에게 답장이 오기 시작 하더군요. 개인적인 애로사항부터 집안 대소사까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한 거죠. 반응이 점점 뜨거워졌어요. 어떤 달에는 답장이 2,000통 넘게 온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김 대표가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는 200여 통에 이른다. 바쁜 업무와 대외활동을 고려하면 절대로 적지 않은 숫자다. 그 가운데 김 대표에데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가 있었는지 물어봤다. “지난 2010년 초쯤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회사 상황이 최악이었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가 저희에게도 덮쳤죠. 실패로 끝난 기업 인수 합병(M&A)도 큰 타격이었고요. 궁극적으론 경영책임자인 저의 판단오류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중 개인적인 아픔도 겪었습니다. 2009년에 이혼을 했어요. 그때까진 제 이혼 사실은 임직원 누구도 알지못했습니다.”
말 그대로 심각한 위기 상황이었다. 김 대표는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회사가 처해있는 상황을 임직원들에게 가감 없이 알리기로 했다. 이후 돌아올 비난에 대해선 묵묵히 감내하겠다는 마음의 준비도 마쳤다. 그렇게 김 대표는 임직원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 회사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은 경영책임자인 저의 불찰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저의 탐욕이 회사를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난해 이혼의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회사의 상황뿐 아니라 사적으로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우선 회사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다양한 구조조정과 혁신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먼저 제 입지에 관해 먼저 임직원분들에게 평가를 받겠습니다. 제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시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여러분이 기회를 주신다고 해도, 저는 두 번째로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의 평가를 받겠습니다. 재신임 여부에 따라 물러나야 한다면 물러나겠습니다. 물러나기 위해 여러분을 설득하거나 사정하지도 않겠습니다. 하지만 제 실수를 한 번 더 만회할 기회를 얻고 싶습니다. 여러분께서 저를 다시 믿어주신다면 두 번의 실수 없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편지를 보낸 김 대표의 마음은 타들어 갔다. 과연 임직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걱정은 곧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아무런 반응도 없지 않을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하지만 걱정과 실제는 달랐다. 임직원들의 답장이 이어졌다. 김 대표는 떨리는 마음으로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답장에 담긴 임직원들의 말에 눈시울이 불거졌다. 김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놀랍게도 응원과 격려의 내용이 대다수였습니다. 비난과 질타는 거의 없었죠.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아픔까지 걱정해주는 임직원들의 모습에 오히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힘을 얻었죠. 회사의 정상화를 위해, 그리고 저를 신뢰하는 임직원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일에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임직원들의 반응이 더욱 감동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88년 첫 창업 이후 계속된 실패와 재기, 회사의 경영자로서 맞닥뜨린 수많은 어려움이 주마등( 走馬燈)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김태섭 대표가 처음 사업에 뛰어든 때는 1988년이었다. 그는 군 제대 후 막연히 사업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은행에 근무하던 친구의 도움을 받아 신용카드를 마련하고 남대문으로 달려가 신용카드로 ‘ 카드깡’ 을 했다. 그렇게 마련한 85만 원이 그의 사업 자본금 전부였다. 그는 인사동 허름한 골목에 보증금 35만 원, 월세 5만 원 짜리 사무실을 구해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첫 아이템은 조립컴퓨터 판매업. 당시 정부는 ‘ 1가정 1PC’ 보급을 외치는 정보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일단 그의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당시 조립PC 한 대의 가격은 약 40만 원 수준으로 결코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지만, 당시 분위기를 타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머지않아 문제가 찾아왔다. 대기업의 PC 시장 침공이 시작된 것이엇다. 조립PC에만 매달렸던 김 대표는 대기업의 공세에 제대로 반격 한번 못하고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는 각종 무역 관련 정보제공 서비스와 DB 구축을 전문으로 하는 ‘데이터 베이스라인’을 창업해 다시 한 번 도전에 나섰다. 그는 이 분야에서도 나름의 발자취를 남겼다. 국내 최초의 별정통신(인터넷폰) 및 IT 유지보수 사업 등 신규 사업 론칭에 성공했다. 우수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돼 국무총리 표창도 받으며 벤처 1세대 성공신화 중 한 명이라는 찬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국내 대표 네트워크, ICT 중견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케이디씨와의 인연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1990년대 초부터 해외 사업을 함께 하면서 비즈니스 관계를 맺어 오던 중, 2003년 케이디씨의 전 소유주인 인원식 회장이 김 대표에게 인수를 제안한 것이었다. 당시 은퇴를 앞두고 있던 인 회장은 가족 승계보단 케이디씨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 기업을 물려주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현재 김 대표는 바른전자 대표직 외에도 케이디씨 회장직을 겸임하고 있다.
잘나가던 김 대표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 건 앞서 말한 기업 M&A 실패의 후 폭풍 때문이었다. 김 대표는 다소 격한 어조로 당시를 회상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잘 쓰는 단어 가운데 ‘코스프레’라는 게 있더군요. 제가 당시에 ‘재벌 코스프레’를 했습니다. 재벌흉내를 냈던 거죠. 회사가 잘 나가니까 규모를 키워보고 싶었어요.
이곳저곳 수익성이 있다 싶은 사업이 있다면 일단 인수 작업부터 돌입했습니다. 마치 제가 재벌이라도 된 듯, 착각에 빠져 있었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사업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실패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면 성공을 하려면 비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사업과 경영에선 더한다고 풍족해지거나 덜어 낸다고 빈곤해지지 않습니다. 가진 것이 하나씩 없어지고 나면 오롯이 자신이 추구하는 것들이 드러나기 마련이죠. 사업이든 인생이든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 더욱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 ‘ 비움의 미학’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당시의 경험은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였습니다.”
그렇다면 김태섭 대표가 말하는 소통 경영의 필요성은 무엇일까? 그는 특히 대기업이 아닌 중소규모의 기업일수록 임직원들과의 소통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더와 임직원들은 원활한 소통 속에 하나의 목표를 바라봐야 합니다. 특히 중소규모의 회사는 더욱 그래야 하죠. 소통의 기본적인 개념은 리더가 가리키는 곳을 임직원들도 함께 보게 하는 것입니다. 리더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임직원들이 손가락만 본다면 회사는 결코 성장할 수 없습니다. 소통의 리더십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직원 스스로가 단순 구성원을 넘어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인식한다면 더욱 능동적인 업무가 가능해질 수밖에 없는 거죠.”
김 대표의 말처럼 바른전자 내부에 자리 잡은 ‘ 소통 문화’ 는 회사 성장에 혁혁한 기여를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바른전자의 3대 혁신 프로젝트 중 하나인 ‘톰톰프로젝트’다. 현재 바른전자는 수익성 개선과 해외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해 △원가절감 및 경영 효율성 상승을 위한 ‘톰톰프로젝트’ △신사업개발 관련 ‘퍼드림 아이디어 공모전’ △장·단기 리스크 관리 프로젝트인 ‘예측21’을 진행하고 있다. 이중 톰톰 프로젝트는 회사에 대한 임직원들의 신뢰가 기반이 된 능동적 업무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톰톰 프로젝트는 현명한 고양이가 되어 사업장 곳곳에서 새는 비용, 즉 쥐를 잡자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바른전자의 혁신전략이다.
바른전자는 장비 제조 기업이다. 장비산업은 매출 규모보다 영업이익률이 낮은 경우가 일반적이다. 때문에 장비산업에선 매출을 올리는 것만큼 영업이익률 제고가 중요하게 인식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목표를 이루는 방안 중 하나로 ‘새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과정에서 현장 근무 직원들의 다양하고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비용 절감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바른전자의 톰톰 프로젝트는 올해로 4년째 진행 중이다. 김 대표의 소통 리더십에 화답하듯 임직원의 90% 이상이 톰톰 프로젝트에 동참하며 다양한 의견을 쏟아내고있다. 실제로 지난해 톰톰프로젝트 1위에 당선된 아이디어의 경우, 원가절감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는 것이 바른전자 측의 설명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김태섭 대표는 30여 년 간 IT 분야에 몸담아온 IT 전문가다. 하지만 경영과 전문지식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김 대표가 생각하는 리더의 조건을 물어봤다. “경영은 자산을 다루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저는 기업의 자산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잘 다뤄야 진정한 경영자가 될 수 있죠. 직원들이 잘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 경영자의 업무입니다. 경영자가 특정 분야에 지식이 많다고 해서 직원들을 기술과 전문지식만으로 평가해선 안 됩니다. 낮은 자세로 직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큰 틀의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소통이야말로 리더가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