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60만 재일동포 오늘:1(한민족경제권이 떠오른다)

◎‘가난과 한 50년’ 딛고 ‘부의 아성’ 쌓는다/기업체 1만개… 세계적 「SW강자」 탄생까지/신용조합 34곳 설립 제조업 진출·성장 도움/20만명 취업… 의료·예술 등 전문직 종사자 점점 늘어식민지시절시절부터 해방후까지 계속된 일본정부의 조선인 차별정책. 인고의 세월속에서 재일동포가 꿋꿋이 펼쳐온 「살아남기」작업…. 60만 재일동포의 삶은 한민족의 해외이주사를 대표하는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이들은 한반도주변과 전세계를 무대로 펼쳐질 한민족경제권의 전개과정에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 재일동포들의 「오늘」을 집중 조명, 그 가능성을 점검해본다.<편집자주>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대판)의 상징인 오사카성에서 지하철로 10분쯤 걸려 도착한 쓰루하시(학교)역. 바랜 연회색 시멘트로 덧칠해진 역구내를 빠져나와 다시 10여분쯤 대로를 걸어나가면 한국의 재래시장에서나 익숙하던 냄새가 갑자기 코를 찌른다. 샛길로 들어서자 김치와 조림, 고추장, 심지어 젓갈까지 한국식 밑반찬 가게가 즐비하다. 입구의 목좋은 반찬가게는 하루 매상이 1백만엔, 우리 돈으로 7백50만원을 웃돈다. 일본말로 떠들지언정, 물건값을 한푼이라도 깎기위해 주인과 손님이 서로 옥신각신하는 광경은 한국의 장터모습 그대로다. 1백여미터 가량을 더 들어서자 치마저고리가 가득 걸린 한복집도 쉽사리 눈에 띈다. 일본 최대의 한민족 상권으로 자리잡고 있는 쓰루하시 상점가의 국제시장 모습이다. 이곳 주민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고려시장이라 부르는데 주저치 않는다. 한민족이 이곳 상권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징표다. 하얀저고리와 검은색 치마를 입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간혹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조총련계 상점도 상당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코리아타운 곳곳에 생겨 다시 30분여를 걸어 모모다니(도곡)지역. 일본내 한민족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코리아 타운」이 눈에 들어온다. 일직선으로 5백미터 이상 뻗은 길에는 동포들이 운영하는 가게 일색이다. 코리아타운 옆에는 히라노(평야)강이 길게 펼쳐져 있다. 식민지 시절 징용온 한국인들이 직접 둑 공사에 뛰어들기도 해 수많은 사연과 아픔이 서린 곳이다. 코리아타운이 히라노강 주변에 들어선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코리아타운은 말그대로 한국판이다. 현재 이곳에 들어선 2백여개 점포중 70%가 재일동포 소유다. 이곳에서 가게를 차렸던 일본인들도 이젠 재일동포의 「텃새」에 못 이겨 가게문을 닫고 여기를 떠나곤 한다. 동경 중심 신주쿠의 쇼쿠안(직안)거리. 오사카의 코리아타운은 일본의 심장부격인 이곳에까지 뻗히고 있다. 산부인과, 미용실, 떡집등…. 각종 간판이 대부분 한글로 쓰여진 채 동경 한복판에 보란듯이 걸려있다. 민단 관계자는 『동경에 「코리아타운」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한다. 동경 쇼쿠안거리의 이런 모습은 나고야 한복판의 사카야(영) 거리에도 이어지고 있다. 나고야의 「코리아타운」이라는 음식점은 아예 올해부터 실시된 위성방송을 통해 한국TV 프로를 온종일 틀어놓고 있다. 교토(경도)나 온천 관광지 아타미에도 한국인의 숨결은 가라앉지 않는다. 이들 지역에 한국계 기업들이 뿌리를 내린 지는 이미 오래다. 일제시절 징용에서 시작, 일본인의 차별 속에서 「한의 50년」을 보낸 일본내 60만 한민족. 그들이 고난의 세월을 이겨내고 튼튼한 자리매김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경제력」이었다. 해방직후 막노동과 날품팔이, 고물상 등 밑바닥생활을 전전한 끝에 일본 소프트웨어 산업의 걸출한 스타 손정의가 탄생하기까지…. ○빠찡꼬 운영 연 15조엔 매출 일본내 한민족은 반세기 인고의 세월을 딛고 21세기를 몇년 앞두면서 조금씩 꽃망울을 맺어가고 있다. 한민족의 경제력은 무엇보다 외형 규모면에서 확연해졌다. 현재 재일동포 사업가 모임인 재일상공회의소연합회에 등록된 재일동포 기업수만도 1만4개. 이중 80% 가까이가 빠찡꼬와 서민금융(신용조합), 불고기음식점 등이다. 일본내 한민족에게 빠찡꼬 산업은 오늘날의 부를 이룬 원천으로 꼽힌다. 지난 95년말 30조엔(2백25조원)에 이르렀던 일본내 빠찡꼬 시장은 지난해초 일본정부의 대대적 빠찡꼬 단속으로 급속히 위축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20조엔을 넘어서고 있다. 현지 빠찡꼬 사업자들에 따르면 업계 매출의 70% 이상을 재일동포가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빠찡꼬 사업 하나에서만 재일동포는 연간 15조엔에 가까운 부를 쌓고 있는 셈이다. 이는 일본 자동차 업계의 1년 매출액과 맞먹는 규모. 재일동포 빠찡꼬사업자들이 세금으로 내는 돈만도 연간 3천억엔이 넘는다. 재일상공인연합회 회장이자 일본 빠찡꼬산업의 대부격인 한창우 마루한사 사장은 빠찡꼬사업이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로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취직은 안되고, 일본 금융기관에서 돈도 빌려주지 않으니, 어쩔수 없이 시작한게 현금이 들어오는 빠찡꼬 산업이었던 것이다. 빠찡꼬 사업으로부터 벌어들인 돈은 곧장 금융기관 설립으로 이어졌다. 50년대 암시장을 통해 성장한 한민족 금융기관은 이제 재일한국인신용조합협회(한신협) 산하 34개와 조총련계의 재일본조선신용조합협회 산하 38개 등 72개에 이른다. 한국 신한은행 회장이자 한신협회장으로 있는 이희건씨 소유의 간사이고긴(관서흥은)이 일본내 신용조합에서 5위안에 랭크될만큼 한국계 금융기관의 외형규모도 급속히 팽창되고 있다. 간사이고긴은 현재 일본내 전체 금융기관중에서도 1백6위에 올라서는 발군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한민족 금융기관의 성장은 제조업체의 탄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한민족에게는 80년대 초반까지만도 현금이 없어 제조업체 설립은 매우 힘들었던게 사실. 그러나 한민족 금융기관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제조업체는 그 성장속도에서도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의 플라스틱업체로 꼽히는 아이리스 오야마사(사장 조용세)가 대표적 사례. 이 회사는 이제 연매출 규모만도 5백억엔을 넘어서며 세계 가정용플라스틱업체중에서도 「톱3」안에 들 정도가 됐다. 재일 한민족의 직업 분포도 다양해졌다. 현재 20만여명 가량으로 추산되는 재일동포 취업자중 화이트칼라로 분류되는 사무·관리직 비율이 35%에 근접하고 있다. 의료와 예술분야 종사비율도 20%에 가깝다. 그만큼 고급인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기업 수가 늘어난 것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 주재하는 한국기업들의 모임인 주일한국기업연합회에 속한 3백20개 회원사가 채용한 직원중 3분의 1이 재일동포이며, 그 비율은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조총련 월 1,000명씩 전향 그렇다면 현재 일본내 한민족에게 남은과제는 무엇일까. 그것은 또다른 분단의 상처인 조총련과 민단간의 화합이다. 다행히 지난 95년이후 이 두단체의 화합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어쩌면 민단이 조총련을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른다. 현지 한국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월 5백명을 밑돌던 조총련계의 전향자 수가 최근들어 1천명 이상으로 늘었다. 최소한 일본내에서는 남북간 통일이 서서히 진전되는 양상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민단 고위관계자의 지적처럼, 일본내 한민족의 힘은 민단과 조총련이 진정한 화합을 이루는 시점부터 본격 분출할 기반을 갖출 것으로 기대된다.<동경=김영기 특파원> ◎민단·조총련 약사/민단­「건청」「건동」 46년 통합 출범/조총련­51년 「민전」 재건… 현재 세 약화 일본의 동포단체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지난 45년 10월 설립된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했던 이 단체는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며 강한 정치색을 띠다 49년 9월 미국점령군사령부에 의해 강제해산됐다. 비공산단체로는 조선건국촉진청년동맹(건청)과 신조선건설동맹(건동)이 45년 9월과 46년 1월 각각 설립됐지만 조련에 비해 턱없이 세력이 약했다. 두 단체는 46년 10월 재일조선거류민단으로 통합된 후, 48년 9월 재일대한민국거류민단으로, 94년 재일대한민국민단으로 개칭됐다. 조련세력은 51년 1월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을 재건, 한국에 대한 주일미군의 무기수송을 방해하는 공작을 펼쳤다. 민전은 그해 6월 군사조직으로 출범한 조국방위위원회(조방)와도 공동전선을 폈고 55년 5월 북한의 지령에 따라 조총련으로 통합됐다. 현재는 상당수가 민단으로 전향하는 등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신용상 재일민단 중앙본부 단장> ◎인터뷰/신용상 재일민단 중앙본부 단장/“교포참정권 문제 일인 시각 달라져 지자체취직 가능/조총련과 화해도 노인회 등 통해 결실” 『버블경제 붕괴후 한국계 신용조합 등 금융기관들도 적지않은 어려움에 빠져있는게 사실입니다. 한신협과 공동으로 경영난에 빠진 신용조합을 합병토록 유도하는 등 정상화를 위해 적극적 대책을 강구할 예정입니다.』 지난 3월27일 3년 임기의 재일대한민국 민단 중앙본부 단장에 재선된 신용상 단장(71)은 『민단단장이 일본내 한민족의 전체 지도자 역할을 해야한다』며 재일동포의 참정권 확보문제와 함께 한국계 금융기관들의 경영정상화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교포들도 적지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일본의 불황은 중소기업과 서비스업 쪽에서 특히 심각하다. 재일동포가 소유중인 빠찡꼬와 중소제조업체들도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민족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이미 뿌리를 내렸다. 사업부분도 다양화돼가고 있는 만큼 불황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들어 조총련측과의 화해무드가 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총련측과의 교류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 ▲재임 1기때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 민단내부의 화합과 조총련과의 화해였다. 이를 위해 북한체제의 모순점 등을 이론으로 정립시켜 책자를 펴내 조총련계에 집중 홍보했다. 그 결과 중앙본부에서는 양측에 반목이 남아있지만, 지방은 상당히 달라졌다. 올들어서만 5천명 이상이 한국국적으로 옮겼다. 앞으로도 골프와 노인회 등을 통해 화해에 나설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민단과 조총련의 양 단체를 하나로 만드는게 목표다. ­재일동포의 참정권 문제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가. ▲일본내 3천3백2개 자치단체중 1천3백15개 지방의회가 재일동포에게 참정권을 주자는 결의를 했다. 일본인들의 시각도 많이 달라져, 재일동포의 취직범위도 의사등 전문직에서 이제는 지방정부의 일반 관리직까지 채용이 허가되는 추세다. ­한국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재일동포는 해외동포중 유일하게 한국국적을 갖고 있는 「한국인」이다. 한국정부도 이 점을 먼저 인식하는게 시급하다. 재일동포 2·3세의 교육문제와 경제적 지원 등은 이런 인식이 선결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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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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