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88> ‘여민락’과 게임의 재조명


어느 인류학자가 동남의 한 섬에서 한 연구가 생각납니다. 왜 원주민들이 닭싸움을 하는 것일까 고민했던 그는 오랫동안 그들과 살면서 그 의미를 파악해 보려고 했습니다. 수 개월 동안 투계 놀이를 바라보면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가난한 원주민들이 닭싸움을 통해 얻는 것은 누군가와의 경쟁, 즉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절차라는 것을 말입니다. 클리포드 기어츠라는 유명한 학자가 발리섬에서 살면서 주민들의 일상을 관찰한 결과 얻어낸 발견입니다. 이로 인해 사회과학자들은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 즉 해당 공간과 커뮤니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사물의 원리를 발견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됐죠.


그런데 발리섬의 닭싸움과 같은 원리가 오늘날 스마트폰 게임 속에서도 발견됩니다. 5년 전 우리들의 삶과 오늘이 현격이 달라진게 있다면 바로 스마트폰 때문일 겁니다. 지하철을 타 보아도 책이나 신문을 보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고, 작은 인터페이스에 자신의 시선을 맡기고 종착역까지 집중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말입니다. 손가락으로 약간의 조작만 가하면 성을 정복할 수도 있고, 하나의 국가도 건설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 모든 일들이 복잡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컴퓨터에 깔아야만 가능했지만, 이제는 조그마한 핸드폰에 ‘앱’ 하나만 다운받아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의 놀이를 즐길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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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그토록 사람들이 게임에 몰입하는 것일까요? 심리학자들은 막연하게나마 ‘중독’을 이야기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 중독처럼 무언가에 비정상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을 가리켜 우리는 중독이라고 말합니다. 게임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아이들과 어른들로 인해 반사회적 사고가 생겼던 일도 종종 있기에 ‘비전문가’들은 적정 시간 이상의 이용에 대해서는 ‘셧다운’(Shutdown)을 통해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닭싸움’ 관점으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이 그토록 단순하고도 작은 행위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자신이 누군가와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일종의 원초적 감각 때문일 겁니다. 게다가 아이들의 경우에는 게임을 빼앗으면 허탈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어릴 적 골목에서 놀았듯, 그들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친구들과 잠깐 동안이나마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누립니다. 게임 속에서 성적이나 경제적 여력과 같은 ‘오프라인 세계의 조건’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이 얼마나 놀이 자체에 숙달되어 있느냐에 따라 친구들 간의 경쟁 구도가 엇갈리는 ‘스릴’을 즐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막연하게 게임을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조금 자유로워 질 필요가 있습니다.

맹자는 ‘여민락’이라는 개념을 말했습니다. 군주의 사냥이나 잔치가 자신의 유희로 끝나지 않고 군중들의 즐거움과 함께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게임 사용자들도 같은 심정일 겁니다. 혼자서만 재미있다면 굳이 ‘아이템’ 하나 사려고 투자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정말 작은 세계이지만 이 시도를 누군가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니, 누군가가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관심을 가지는 것일 수 있다는 시각으로 다시 접근해보면 어떨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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