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협력사 두 곳에서 부도가 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B2B채권까지 결제를 못했으니 이제 줄도산이 시작된 겁니다. 협력업체들을 살리기 위해 워크아웃을 개시했다고 하는데 B2B채권 만기연장도 안 된다니 은행만 살고 협력업체는 죽이겠다는 거지요." (쌍용건설 A협력업체 사장)
"쌍용건설이 B2B전자채권 결제를 막지 못하면서 제 이름으로 받은 대출금리가 5%에서 9%로 올랐더군요. 이제 은행들이 대출금을 갚으라고 못살게 굴 텐데 도급계약을 맺은 다른 건설사마저 현장이 마비될 수 있다고 거래를 못 하겠다고 합니다. 이 사업을 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이제 문을 닫게 생겼어요." (쌍용건설 B협력업체 사장)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건설이 전자채권을 결제하지 못하면서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쓴 납품업체들이 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워크아웃 개시를 선언한 쌍용건설이 300억원 규모의 B2B전자채권(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을 결제하지 못해 800여 협력업체들이 은행의 빚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이 채권은 지난달 28일 만기를 맞았고 이달 11일까지 유예기간이 주어졌으나 결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협력사들의 피해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이달 말 약 300억~400억원 규모의 B2B전자채권 만기가 예정돼 있어 1,400여 협력업체가 모두 혹독한 자금난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통 원청사(구매업체)가 협력사(납품업체)에 B2B전자채권을 발행해주면 협력사는 납품금액만큼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아 운영자금으로 쓰게 된다. 하지만 원청사가 만기 때 자금결제를 못하면 금융기관은 협력사에 대출금 상환을 요구하게 된다. 만약 협력사가 만기 이후 90일이 지나도 돈을 못 갚으면 금융감독원에 신용불량 업체로 등록돼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이와 관련, C업체 사장은 "금융감독원과 채권은행을 오가며 대책마련을 촉구했고 채권을 미리 결제해주거나 만기를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아무 대책도 나오지 않았다"며 "당장 거래은행에서 계좌 잔액을 빼갔고 법인카드 결제까지 막은 상태인데다 약 90일 뒤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신용불량자 신세가 되게 생겼다"고 울분을 토했다.
사정이 급한데도 채권단은 다음달 중순 쌍용건설에 대한 실사가 끝나기 전까지 자금지원이 불가능하고 만기연장도 어렵다며 모른 체하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다음달에는 결국 모든 협력사들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다 줄도산할 것이라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D업체 사장은 "총 80억원이 물린 상황인데 직원들 월급은커녕 2ㆍ3차 협력업체에도 결제를 못해주고 있다"며 "이미 두 곳의 협력사가 부도를 맞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의 일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부분의 협력업체들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호소하고 싶어도 신용도 하락과 다른 건설사의 계약 파기 등이 우려돼 전면에 나서 대책마련을 촉구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토목 부문 협력사인 E업체 사장은 "최근 한 언론과 인터뷰를 하면서 대책 마련을 요구했더니 거래하고 있는 다른 대형 건설사에서 부도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거래가 힘들다고 하더라"며 "도산 위기에 몰린 마당에 어디에라도 매달려야 할 상황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납품업체들의 사정이 급박해지자 비올 때 우산을 뺏는 은행권에 대한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F업체 사장은 "자금지원보다 채권회수에만 골몰하는 은행은 정부에서 허가해준 사채업자"라며 "지난해 쌍용건설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까지 매입하며 함께 희생했는데 그 결과가 이거냐"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