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제체험 통해 돈의 소중함 배웠어요

교실 내 '마을활동' 으로 돈 벌어 세금 내고 파산도 해보고<br>각자 역할 맡아 3주간 평등·자유·공정경제 익혀<br>부유층·빈곤층 사회적 갈등까지 경험하기도

안양 비산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공무원 역할을 하는 다른 학생에게 통장을 검사받고 있다. 마을활동 안에서 학생들은 다양한 직업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제공=좋은교사운동본부

"경제는 개념으로만 배우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잖아요. 재미있게 게임처럼 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이 경제를 체득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안산초등학교 이진영 교사)

"평등경제 시스템에서 버는 돈의 3분의1이 세금ㆍ생활비ㆍ토지세 등으로 나가서 힘들었어요. 진짜 사회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나갈 것 같아요. 부모님이 왜 그렇게 돈을 아끼는지 이해가 됐어요."(비산초등학교 5학년 박종훤군)


지난 17일 서울시 관악구 청룡동 좋은교사운동 사무실에서 열린 '아름다운 경제 교육을 위한 마을활동' 연수에는 학생들에게 경제를 흥미롭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교사 16명이 모였다.

마을활동은 6년 전 딱딱한 경제교육에 회의를 느낀 문경민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이 개발한 경제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이 교실 안에서 공무원, 슈퍼마켓 주인, 문방구 주인 등 직업을 갖고 교실에서만 통용되는 가상의 화폐로 물건을 사고팔며 일종의 모의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에서 경제활동이 차지하는 비중과 영역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학교 현장의 경제교육은 여전히 그래프나 수식, 또는 전문용어 중심이다. 마을활동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은 이 같은 빈약한 경제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보다 재미있게 경제교육을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마을활동 연수에 참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선화 경의초등학교 교사는 "보통 경제에 관한 내용이 6학년 사회과정에 몰린 데다 교과서도 개념 위주"라며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개념이 아니라 용돈을 어떻게 쓰고 저축을 어떻게 할지 하는 일상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 특수학급 담당 최선정 교사는 "특수학급 학생들이야말로 이 사회에 대한 이해와 일반인들과의 상호작용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적합한 프로그램이 없다"며 "마을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로 교실에서 물건을 사고팔거나 월급을 받고 세금을 내는 활동을 해보면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고 일반 학생들과 상호작용도 늘어날 것 같아 기대된다"고 말했다.

마을활동은 3주 동안 매주 다른 경제 시스템 속에서 학생들이 직접 생활해볼 수 있게 설계됐다. 토지는 학생들이 앉아 있는 자리로, 화폐는 학생들의 통장에 적는 숫자로 표현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이 마련해준 물건을 사고팔 수 있다.

첫 주는 '평등경제 시스템'으로 시작한다. 평등경제에서 학생들은 다른 학생들의 통장을 관리하고 제대로 적혔는지를 확인하는 공무원이 되기도 하고 슈퍼나 문구점 주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평등경제이기 때문에 매상이 얼마든 모두 똑같은 월급을 받고 세금도 같다.


2주째에는 '자유경제 시스템'이 가동된다. 평등경제와 가장 대비되는 점은 버는 만큼 가진다는 것이다. 대신 소득에서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토지(자리) 매매도 가능해 아이들이 앉고 싶은 자리를 경매에 붙이기도 한다. 직업의 자유도 생겨서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여러 개 가질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많지만 파산자도 생기는 등 부유층과 빈곤층 간의 경제적 격차가 발생한다. 특히 계층 간 묘한 긴장감이 흘러 사회적 갈등의 현상을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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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주는 '공정경제 시스템'으로 마무리된다. 양극화된 아이들의 재산을 비슷하게 맞춰주기 위해 비싼 토지에는 높은 세금을 매기는 등 부자와 가난한 사람 간의 재산을 조정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슈퍼나 문방구처럼 인기 직업에 아이들이 몰리지 않도록 규제도 생긴다. 아이들은 마을활동을 통해 3주간 다양한 경제 구조를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마을활동 연수 강연자로 나선 안양 비산초등학교의 김혜영(37) 교사는 지난해 담임한 5학년 학생들과 마을활동을 한 기록을 '교실 속 마을활동'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그는 3주간의 마을활동을 통해 계획 없이 펑펑 쓰던 지출 버릇을 고친 아이, 기상천외한 창업 아이디어로 파산에서 재기에 성공한 아이, 파산하고 나서 빈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아이까지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김 교사에 따르면 처음에는 가짜 돈으로 간식도 사 먹을 수 있고 복권 같은 것도 살 수 있어 규모 없이 지출을 하다 하루 이틀 만에 파산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비싼 토지(자리)를 알아두고 사뒀다가 다시 파는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풍선아트가게를 창업해 나중에는 동급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는 사례까지 생긴다. 집에서 계란프라이나 만두를 가져와 점심시간에 파는 반찬가게와 만화 대여점도 대박을 터뜨렸다. 반면 경제활동이 활성화될수록 교실에는 쓰레기가 쌓여가고 규칙 위반도 늘어나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가짜 돈으로 허구의 직업을 갖고 가상의 거래를 하면서도 아이들은 교실에서 진짜 사회의 일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마을활동 교육을 실시한 교사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실제로 마을활동 교육을 받은 비산초등학교 5학년 김희훈군은 "평등경제 시스템을 할 때 파산했고 자유경제 시스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버텼지만 공정경제 시스템에서는 무려 2만1,390냥을 모았다"며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힘든 사람의 기분과 부자의 기분을 알게 됐다. 부자는 겉으로는 기쁘지만 속으로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것 같다"고 말했다.

박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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