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빈수레 된 신 재벌정책(사설)

의욕에 넘치고 야심차게 추진되던 공정거래법 개정 작업이 요란한 빈수레 꼴이 되었다.공정거래위원회가 힘있게 추진해온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압력과 로비에 부딪치며 약화되어 가더니 당정협의 과정에서 끝내 알맹이가 쏙 빠져 버렸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였다. 따라서 신재벌정책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공정거래법의 후퇴는 정부나 정치권이 재벌의 힘 앞에서 허약하고 재벌 견제를 위한 제도개혁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또 한번 보여줬다. 공정거래법 개정은 경제력 집중 억제와 공정거래 질서의 확립을 목표로 추진되어 왔다. 규제완화와 자율화 시대에 맞게 경쟁제한적 요소를 제거하고 새로운 경쟁 룰을 만들어 감독기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친족독립경영회사 제도의 도입과 계열사 채무보증한도 철폐 등 두가지다. 그러나 친족독립경영회사제도의 도입은 백지화 했고, 채무보증한도도 98년까지 1백%로 낮추기로 한 규정만 살리고 2000년까지 완전해소키로 한 부분은 삭제했다. 또 불공정 기업결합 방지를 위해 신고대상 지분율을 낮추려던 당초 안보다 오히려 높여 완화했고, 긴급중지명령제도 법원의 결정에 따르도록 했으며 이행강제금 전속 고발권 연결재무제표 등은 다시 협의키로 함으로써 뒤로 미뤄졌다. 결국 재벌견제장치와 감시기능은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 개정안이 입법예고된 이후 재계가 반발하면서 끈질기게 요구한대로 변질된 것이다. 재벌의 문어발 확장, 경제력 집중, 부당 내부거래, 경영의 불투명성 등이 결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국민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적지 않음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도 여러 차례 여러 모양으로 나왔었지만 개선되기는 커녕 재벌의 문어발 확장과 시장독점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이번에도 재벌정책은 또 한번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물론 경제환경이 어려워져 경기가 나쁜 때이고 1년여 남긴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벌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게 없다는 속셈이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정부가 펴온 정책이 재벌중심이었고 재벌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점에다 시기적 상황이 겹쳐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예정된 수준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후반기로 접어든 현 정권아래서는 공정경쟁의 틀을 새로 짜는 제도개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