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인사담당자에게 부실검증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인사위원회, 민정 라인, 정무 라인에 대한 경질은 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비자금 의혹에 낙마=한 내정자가 자진사퇴하기로 한 데는 해외 비자금 의혹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은 “한 내정자가 해외에 비자금 계좌를 운용하며 관련 세금을 탈루해온 혐의가 짙다”며 “국세청에 한 내정자의 해외 금융계좌 신고 여부, 계좌규모, 계좌개설 시점과 개설 국가 등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한 내정자가 2011년 7월 국세청에 2006~2010년 발생한 종합소득세 1억7,000만여원을 뒤늦게 납부했는데 이것이 해외 비자금과 관련된 세금일 가능성이 크며 이를 통해 추적할 수 있는 해외 비자금 규모는 20억~3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추가 검증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한 내정자가 사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전격 사퇴하기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불공정거래를 차단하고 경제법질서를 확립해야 하는 공정위 수장으로서 이 같은 의혹에 연루된 만큼 업무수행이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여겨진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2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청와대는 지난주에 한 내정자에 대한 의혹을 확인했고 어느 정도 사실로 드러난 부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연이어 터져나오는 부실검증에 ‘인사위원회의 업무태만’을 거론할 정도로 격앙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한 내정자의 경우 민정수석실에서 당연히 검증을 했다”며 “하지만 해외 계좌 추적은 단기간에 파악하기가 힘들고 현실적으로 한계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현재의 청와대 인사위원회와 민정수석실 검증 시스템으로는 이 같은 사태가 재발될 수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내각 인사 중 6번째 중도하차=박근혜 정부가 ‘고구마 줄기’ 인사부실에 시달리면서 국정운영에 대한 신뢰도를 잃고 있다. 한 내정자의 사퇴는 김용준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 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 김학의 법무부 차관,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에 이어 박근혜 내각에서 여섯 번째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가량 지난 점을 감안하면 5일에 한 번꼴로 고위공직자가 사퇴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된 셈이다. 청와대 일부 관계자는 역대 정권과 비교해 중도사퇴한 숫자가 많은 편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청와대의 인선검증 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청와대가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인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채 박 대통령의 의중에 기반해 ‘수첩 인사’를 하고 있는 게 이 같은 사단을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이 ‘전문성’과 ‘국정철학 공유’라는 두 가지 기준을 우선시해 인선을 하고 있어 도덕성 검증은 소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낙마한 6명의 경우 해당 부처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이거나 기업을 경영한 전문가들이지만 도덕성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졌는지 의문이 일고 있다.
이처럼 부실인사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한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청와대는 “경질은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지체로 인사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측면이 있고 짧은 기간 안에 고위공직자를 제대로 검증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며 “민정과 정무 라인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지만 그럴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