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실질적 변형'이 기준… 단순 가공은 인정 안해

■ '원산지 분쟁' 법원 판단은<br>OEM 제품은 주문국 아닌 생산국이 원산지<br>中대마로 국내서 만든 수의 국산지명 못붙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원산지 문제가 새로운 무역전쟁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개성공단에서 가동중인 한 봉제공장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식탁에 오른 해장국의 명태. 러시아 바다에서 잡혔지만 황태로 만들어지는 데는 강원도 어느 지역의 바람이 일을 도왔다. 매일같이 손에 지니고 있는 휴대폰 디자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했지만 부품 조립은 대부분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에서 이뤄졌다. 국가간 자유무역이 활발해져 기업의 지역 경계선이 허물어지면서 원산지의 경계도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제품을 선택할 때 원산지를 따지는 소비자나 꼼꼼히 관세를 따져보는 국가 기관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원산지 문제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나 최종적으로 이를 선택하는 소비자, 제품의 관세를 매기는 국가 모두에게 매우 중대하다. 기업과 국가로서는 관세 비율이 확정되는 사안인 만큼 큰 돈이 오가는 첨예한 이슈다. 세계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효력을 고려한다면 원산지 문제를 놓고 벌이는 법리 분쟁의 공간은 이른바 총성 없는 '무역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셈이다. 과연 국가의 해당 기관은 어떤 기준으로 원산지를 정하고 또 원산지 분쟁이 벌어졌을 때 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렸을까. ◇원산지 논란, 기준은 '실질적 변형'=원산지를 가려내는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곳은 관세청이다. 대외무역법과 시행령을 잣대 삼아 복잡한 원산지 판별 작업을 하는 곳이다. 최근 커피와 면도기 원산지 표시 문제가 불거져 관심이 쏠린 원산지 논란에서 업체와 관세 당국의 주장이 충돌했던 부분도 대외무역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였다. 대외무역법 시행령 제 61조1항은 '수입 물품의 생산ㆍ제조ㆍ가공 과정에 둘 이상의 국가가 관련된 경우에는 최종적으로 '실질적 변형'을 가해 그 물품에 본질적 특성을 부여하는 활동을 한 국가를 원산지로 할 것'이라고 정하고 있다. 다만 둘 이상의 국가가 관련된 경우 단순한 가공활동을 하는 국가를 원산지로 할 수는 없다고 규정했다. 관세청은 원산지 표기가 잘못된 사례를 적발하면 고의성을 따져 검찰 고발 여부를 가린다. 고의성이 없는 것으로 보이면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내리는데서 그치지만 일부러 원산지를 사실과 다르게 표시한 경우 등은 검찰에 고발해 형사처벌을 받게 한다. 원산지를 잘못 표기해 형사고발 당하고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례는 여러 건이지만 자주 언급되는 사례는 '북한산 면타올'사건이다. 타올을 생산하는 D모 업체는 원부자재 일체를 중국에서 북한으로 보낸 후, 북한에서는 타올 테두리 봉제작업만 한 후 다시 중국으로 재반입했다. D사는 완제품 타올의 원산지를 중국 대신 북한으로 표기했고 면세혜택을 받아 4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1999년 기소됐다. 검찰은 북한에서 이뤄진 작업은 단순한 봉제작업이기 때문에 타올의 원산지는 중국이라고 주장했고, D사는 타올이라는 완제품으로 만든 곳은 북한이라며 맞섰다. 1심은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D사에 벌금 4,000만원, 사장 구모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은 1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실질적 변형은 원재료에 부여되는 세번(관세율표상 분류된 상품 번호)과 다른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후 "실질적인 변형은 북한에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 '실질적 변형'도 경우에 따라 판단=그러나 가공작업을 했다고 해서 모두 '실질적인 변형'을 가한 경우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지난 1999년 공정위는 중국산 대마사를 순창과 보성에서 가공한 수의를 국산으로 판매한 유명 대학병원에 시정명령과 과징금을 부과했다. 병원들은 "삼베의 품질에 있어 원사의 품질보다 직조기술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담당한 서울고등법원은 "수의에 특정 지역명을 붙여 표시한다면 일반적으로 그 지역에서 모든 생산과정을 거쳐 그 지역의 특성이 반영된 삼베로 만든 수의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며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지역 이름을 붙인 삼베가 지닌 문화적 특성을 고려한 판결인 셈이다. 이 밖에도 OEM 방식으로 만든 제품은 주문 국가가 아닌 생산국을 기준으로 원산지를 표기해야 한다는 판단도 있다. 올해 4월 서울세관장은 의류 수입업체 M사에 142억원 상당의 등산의류 원산지를 이탈리아로 표시해 소비자들이 오인하도록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1억200여만원을 부과했다. 서울행정법원에 관세청 처분이 잘못됐다며 소송을 낸 M사는 "의류 라벨은 몰도바를 원산지로 표기했고, 별도로 달린 태그에 몰도바에 제작을 의뢰한 이탈리아의 국가명을 적었을 뿐 소비자들을 속이려고 쓴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업체명과 이태리(Italy)라고 함께 적혀있는 태그를 보면 소비자들이 원산지를 이탈리아로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며 물품판매업자인 M사가 원산지를 오인하게 하는 표시를 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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