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이사회가 7일 그간의 관례를 깨고 표결을 통해 지방은행 매각을 위한 인적분할 철회 요건을 바꿨다.
2월 국회에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경남·광주은행 매각 작업을 무위로 돌릴 수 있는 길을 튼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의 보신주의를 탓하기도 하지만 '성과주의'에 급급한 당국의 매각 강행 등 리더십 부족에 대한 비판도 비등하다. 조속한 민영화 원칙 속에 매각을 밀어붙이면서도 정치권과의 협조나 이사회와의 갈등 조율 등에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고위 인사는 "당국이 6월 지방선거 이전에 지방은행 매각 절차를 끝내기 위해 분할과 매각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며 "어찌 보면 당국이 과거 사고에 매몰돼 우리금융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과소평가한 측면도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사외이사가 방어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한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면서 "현재 매각 방식도 과거 실패를 감안해 정한 만큼 소모적 공방보다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처리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사회 반발, 당국의 무리한 추진이 한 원인=애초 조특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까지 처리한다는 게 당국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 의원들의 반발로 2월로 처리가 연기됐다.
그러자 이사회는 곧바로 분할을 철회할 수 있는 요건 변경을 추진했다. 결국 이사회는 표결 처리로 분할 철회 요건을 '매각 절차가 중단되고 조특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서 조특법 개정안만 불발돼도 가능하게 바꿨다. 이사회는 다만 부대 조건에서 "분할 철회 시 공적자금관리위원회의 협조 아래 진행한다"는 내용을 넣었지만 의미 부여를 하긴 어렵다. 당국은 그간 세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예보가 매각 대금을 덜 받는 방안 등 다른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애초 계획대로 인적분할을 통한 매각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당국 고위 관계자는 "만약 조특법 개정안 처리가 국회에서 불발되면 우리금융에 세금과 관련한 불이익이 없도록 배려할 텐데 이사회가 사안을 너무 좁게 보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그는 "꼬리(세금)가 몸통(우리금융 민영화)을 뒤흔들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6,500억원에 달하는 세금 문제가 지방은행 매각의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란 전망이 일찌감치 대두됐음에도 별다른 조치가 없었던 점은 문제다. 당국은 세금 폭탄을 피하지 못할 경우 배임 혐의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이사회에 '큰 그림에 입각한 판단을 해달라'는 원론적 주문만 되풀이했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세금 문제에 따른 이사회 반발이 충분히 예상 가능했지만 이를 미연에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매각 강행이란 원칙론만 강조하면서 일을 더 꼬이게 만들었다"며 "사외이사의 몸 사리기가 부각됐던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물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때와 이번 지방은행 매각 문제는 초점이 조금 다르다"고 말했다.
◇지방은행 매각, 국회로 공 넘어가=이달 28일 우리금융 임시주주총회에서 인적분할 안건이 통과된다고 가정하면 결국 지방은행 매각의 키는 국회가 쥔 형국이다. 공자위 고위 관계자는 "1월 지역 민심의 향배가 중요하다"며 "경남 지역 반발이 지난해 말처럼 계속되면 2월 국회에서 조특법 개정안 처리를 장담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지역 여론이 차츰 안정을 찾은 것으로 알고 있어 통과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고 덧붙였다. 금융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마저 선정된 마당에 매각 작업이 무위로 돌아갈 경우 당국 정책 신뢰도 추락 등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현명한 판단을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금융당국의 입장을 얼마나 헤아려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심하게 표현하면 금융위원회가 국회의 입법 절차를 사실상 무시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지방선거라는 정치적 잣대가 아닌 국회와 행정부 간의 위계질서를 명분으로 끝까지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