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하우징 페어] 대담-집을 다시 생각한다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집, 재산 증식 아닌 자아실현 공간돼야"<br>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 "한옥 붐 유행 아니다… 법·제도 정비 필요"


김희정(왼쪽)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과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가 12일 서울 신사동 가온건축 사무실에서 만나 노 대표가 설계한 단독주택 모형을 보며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재기자


"아파트서… 이런 나라는 한국이 유일"
"전세계적으로 공동주택 거주비율 60% 넘는 곳은 한국 뿐"[하우징 페어] 대담-집을 다시 생각한다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집, 재산 증식 아닌 자아실현 공간돼야"김희정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 "한옥 붐 유행 아니다… 법·제도 정비 필요"

















아래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 없음






김희정(왼쪽) 피데스개발 R&D센터 소장과 노은주 가온건축 대표가 12일 서울 신사동 가온건축 사무실에서 만나 노 대표가 설계한 단독주택 모형을 보며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호재기자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국민 10명 중 6명이 아파트에 산다. 우리 국민에게 아파트는 단순한 거주공간 그 이상이다. 환금성과 경제성을 지닌 재테크 수단으로 절대적 추앙을 받았다. 사람들은 더 넓고 보다 비싼 집으로 옮겨가고 싶어했고, 강남 집값은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겨났다.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영원히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아파트 신화에도 균열이 생겼다. 단독주택이 부활하고, 한옥이 재발견되고 있다. 아파트 구매 패턴도 확대지향에서 축소지향으로 전환 중이다. 집에 대한 생각도 바뀌고 있다. 교환가치를 중시하던 풍조가 퇴조하고 투자 보다는 거주의 개념이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징후들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과연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해 '지금 행복한 집에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가온건축의 노은주 대표와 해마다 미래 주거 트렌드를 예측, 제시하는 피데스개발 R&D센터의 김희정 소장의 만남을 주선했다. 대담은 3월1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온건축 사무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탈아파트와 단독주택의 부활

사회 단독주택을 짓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김희정 주택 소비자들을 만나보면 대개 단독주택에 대한 로망(Romanㆍ동경)을 가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시작된 것도 단독주택 인기에 한 몫 했다. 이는 향후 10년 동안 주택시장의 주된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실제로 전세계적으로 공동주택 거주비율이 60%가 넘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반면 외국은 단독주택이 60% 이상이다.

노은주 단독주택을 짓기 위해 설계를 의뢰하는 건축주의 70%가 베이비부머다. 은퇴하면서 아파트를 팔고 단독주택을 지어 자신의 오랜 꿈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취미로 DIY 목공을 배우고 있는데 교외에 작업실을 갖는다든지, 당분간 도시생활을 유지하면서 주말에 왔다 갔다 하면서 농사를 짓다가 도시생활이 정리되면 완전히 이주하겠다는 식이다. 그래서 방 하나만 있는 20평짜리로 작게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젊은층도 꽤 있다. 대부분 자유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단독주택을 지어 주거ㆍ업무공간으로 쓰고 서재를 도서관처럼 만들어 공동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다.

김 요즘은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지어 살던 50~60대들은 살아보니 너무 심심해서 서울로 다시 복귀하고 그 집에 30~40대가 전세로 입주하고 있다고 한다. 집을 전세로 내놓으면 당일날 빠질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전언이다. 아파트 문화에 염증을 느끼는 젊은층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인 셈이다.

사회 그렇다면 아파트의 시대는 끝난 것인가.

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모두 어디로 갈 것인가. 집 지을 땅도 없는데. 더 좋고 더 비싸고 더 넓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을 전제로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참고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언젠가 생활을 업그레이드 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말이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이 아무리 삭막하다고 하더라도 한 곳에서 5년 이상 살다 보면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이웃이라는 개념도 생겨난다. 다른 집 아이들이 크는 것도 지켜보면서 진득하게 눌러 살다보면 마음가짐도 바뀔 것이다. 일본에 가서 길거리가 너무 깨끗해서 놀랐는데, 지자체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나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밤 10시에 주민들이 나와서 집앞을 쓸더라. 반면 우리는 자기 집이라는 개념이 없으니까 눈이 와도 안 치운다. 정주가치를 생각하면 거주공간에 애착이 생기게 마련이다. 단독주택이 다양한 거주의 대안 중 하나가 되겠지만 한계가 있다. 주거형태는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김 땅값이 많이 오를 때는 자산가치를 중시하지만 지금은 정주가치를 중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주변 지인들 중에 도심의 오래된 단독주택을 자기 돈 들여서 리모델링하는 이들이 있다. 예전 같았으면 재개발 딱지를 노리고 불편하더라도 그냥 참고 살았다. 아파트도 재건축이 힘들다면 잘 고쳐서 쓰고 30년 이상된 노후 아파트는 헐고 다시 짓는 것이 경제적이다.

노 사람들이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편리성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아파트는 환금성이 뛰어나다. 그렇다면 부동산 경기 침체로 아파트 불패신화가 깨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교통이나 교육환경이 좋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때문에 수요가 늘 있을 수 밖에 없다. 사교육 신화와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아파트 불패신화가 모두 깨져야 아파트 위주의 주거문화가 바뀔 것이다.


'작은 집이 아름답다' 주거 다운사이징

관련기사



사회 요즘 들어 작은 집이 각광받고 있다.

김 작은 집이란 단지 크기가 작은 집이 아니라 규모가 적당한 집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비영리 조사 및 교육기관인 ULI(Urban Land Institute)가 제시한 '2050년 주거 트렌드'를 보면 '디맨드 포 스몰러(demand for smaller)' 즉 더 작은 집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대목이 있다. 작고 적정한 규모의 집에 대한 요구는 전세계적인 흐름이다. 개발시대에는 확대소비가 주류였다. 20대에 10평대 전세 아파트로 신혼살림을 시작해 20평, 30평, 40평형으로 계속 넓혀가는 게 미덕이었다. 2010년 이후부터는 베이비부머의 가족 축소기로 접어들었다. 이들이 앞으로 어떤 주택소비를 할 지가 관건이다. 일부는 계속 큰 평형을 유지하겠지만 집을 줄여서 남는 돈으로 노후자금을 쓰겠다는 이들이 다수다. 주택 다운사이징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노 평균 수명이 늘어나서 과거 은퇴 후 10년의 시대에서 이제는 은퇴 후에도 40년을 더 버텨야 하는 세상이 됐다. 은퇴 후 자금마련을 위해 다운사이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김 몇해 전 대전에서 전용 85㎡형으로만 구성된 아파트를 분양했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대덕연구단지 인근이어서 나이든 연구원들이 많았는데 같은 30평형대라도 방 2개짜리가 가장 먼저 팔렸다. 자녀들을 분가시킨 뒤 집을 줄여서 이주하지만 50평형대 같은 30평형을 원했기 때문이다. 방을 하나 없애더라도 거실과 주방ㆍ다이닝룸을 넓게 해 손님들이 와도 넓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은 그만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세대다. 다운사이징이 대세지만 줄이더라도 어떻게 줄이느냐가 중요하다.

노 지금 설계하고 있는 단독주택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젊든 나이가 들든 주방공간을 굉장히 중시한다. 가족끼리 식사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침실은 1개만 있어도 주방과 다이닝룸을 넓게 해달라고 주문한다. 화장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단독주택이 아파트와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화장실이다. 화장실 욕조에서 정원이 보이거나 TV를 볼 수 있도록 설계해 달라는 요구가 많다. 20~25평짜리 단독주택에도 손님을 위한 화장실을 별도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진정한 고급주택은 방이 많은 집이 아니라 화장실이 많고 좋은 집이라는 것을 단독주택을 설계할 때마다 느끼게 된다.(웃음)

전통 한옥의 재발견과 거품

사회 한옥이 재발견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거품이라는 시각도 있다.

노 한옥을 패션(유행)으로 보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북촌마을의 경우 한옥에 사는 사람들이 집을 이상하게 고치니까 나라에서 지원을 해줄테니 원형 그대로 유지하라고 한다. 제대로 고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세입자는 임대비용이 오르니까 다른 동네로 이사나가고 땅값이 비싸지면서 문화시설이나 상업시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 일종의 관광지화된 것이다. 기존의 역사를 살리려는 사람은 밀려나고 밤에는 불꺼진 동네가 됐다. 한옥을 제대로 보존하려면 사람이 살고 있어야 한다. 사람이 살고 있고 삶이 있어야 진정한 집의 의미가 살아난다. 한옥이 패션으로 인식되면서 일반인이 짓거나 살 수 없는 비싼 집이 돼 버렸다. 아쉬운 부분이다.

김 지금의 한옥 열풍은 패션이라고 보진 않는다. 한옥에 대한 관심은 소득수준과 관련이 있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 정도 되면 음식과 주거 등 모든 방면에 걸쳐 자기 나라의 전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서면 큰 트렌드가 될 것이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이 그랬다. 잠깐 유행하다 사라지는 경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량상 한옥이 주거의 메인스트림(주류)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이 한옥을 사업화하려면 개인 단독주택으로는 사업성이 떨어진다. 반면 한옥마을은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출 수 있기 때문에 사업화가 가능하다. 30~100가구 정도면 채산성이 있다. 동호회처럼 미리 수요자가 정해져야 하고 다양한 한옥 유형을 제공해서 맞춤주택의 형태로 가는 식이다. 안전이나 사후 관리(A/S) 등도 신경써야 한다. 한옥은 단독주택처럼 유지 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다. 한옥이 대중화하려면 공사비를 낮추고 원하는 사람을 모아서 분양할 수 있도록 법.제도의 정비도 필요하다. 회사에서 경기도 양주에 실험한옥 2동을 지었다. 개인이 한옥을 지으려면 최소한 3.3㎡당 1,000만원이 들어간다. 천연재료를 많이 쓰는 등 좀 신경쓰면 2,000만원으로 훌쩍 뛴다. 정부나 관련 기관에서 한옥을 대중화하기 위해 저렴한 플라스틱 기와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곤란하다. 구운 기와를 써야 하고 대청 마루도 있어야 한다. 최대한 건축비를 줄이면 3.3㎡당 600만~700만원선까지 낮출 수 있다. 또 주택법에는 분양가구 수가 19가구를 넘으면 청약제도를 반드시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한옥은 그렇게 하면 망한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분양하는 아파트와 달리 한옥은 이미 수요자가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공급해야 한다.

노 외암리 민속마을이나 경주 양동마을을 보면 건축 시기가 모두 다르고 나름대로 입지의 원칙이 있다. 은평뉴타운이나 동탄2신도시 등 택지지구 한 곳에 한옥을 모아놓으면 마을 같지가 않을 것 같다. 북촌마을도 1930년대 개발업자가 대감님들의 집을 구입해서 필지를 여러 개로 나눠서 쪼개서 팔았던 곳이다. 기존의 주거 필지 나누듯이 주요 시설을 배치하고 자투리 땅에 한옥마을을 조성하는 것은 취지는 좋지만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다. 북촌마을 등 한옥 마을은 여러가지 한옥적 풍경이나 골목길 등 기존 인프라가 있고 무엇보다 옛스러운 분위기와 정서가 있는 곳이다. 정서가 좋아서 북촌이나 서촌으로 가는 것이지 사람들이 한옥 그 자체가 좋아서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시대 행복한 주거의 조건

사회 집이란 무엇인가. 또 행복한 주거란 어떻게 가능할까.

노 과거에는 집을 마련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다. 왜 집을 마련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빠지고 무조건 집을 사고 크기를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게 집을 어렵게 마련했는데 정작 집에는 아무도 없다. 집은 가족이 모여서 편하게 쉬는 공간이다. 집의 주인공이 가족이 돼야 한다. 4인가구가 함께 모이는 경우도 많이 없다. 밥을 같이 먹어서 식구이고 물을 같이 마시기 때문에 마을이다. 같이 살기 위해 집을 마련했는데, 편하게 쉬는 공간이 아니라 가족끼리 서로 의무만 지우는 불편한 공간이 되고 있다. 잠만 자는 공간이라면 여관이나 호텔과 다를 바가 없다. 원초적인 의미로 돌아가서 집에는 가족이 있어야 하고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공간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집을 설계할 때 보면 건축주가 원하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집에서 원하는게 뭔지를 여태 생각을 안해본 거다. 평수와 같은 남에게 보이는 것만 생각했던 것이다. 경제적인 가치로서의 집의 의미는 앞으로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재산 증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들어가 머물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꿈이고 자기실현의 공간이 돼야 한다. 그동안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서만 집에 투자를 했다. 3년 뒤에는 집값이 오를거야, 그래서 현재를 희생한다는 식이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행복한 집이 되려면 그 행복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김 노 대표의 말도 맞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집에 대한 역할이나 기능이 달라지고 있다. 집은 전통적으로는 휴식의 공간이거나 가족의 삶을 담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현재의 라이프 사이클을 보면 가족의 센터이자 베이스캠프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서로 너무 바쁘기 때문에 밥도 같이 먹을 시간이 없다. 전통적으로 집은 따뜻하고 휴식을 통해 재충전하면서 가족이 같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현실적으로 가족들이 시간을 공유(타임 쉐어)하는 베이스캠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굳이 내 집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필요하면 베이스캠프를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전세제도가 무너지면서 월세가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주택의 기능이나 인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집값 오를 때는 집이 부족한 시대였다. 짓기만 하면 팔렸다. 이제는 부족의 시대에서 풍족을 지나 자족으로 가는 중간 정도의 단계에 있다고 본다. '작은 집도 내 생활에 맞으면 돼'라는 자족, 만족의 개념을 고려하는 상황이다. 자족의 시대가 되면 남에게 보여주는 집, 즉 경제적 가치 보다는 정주가치, 특히 매슬로우(Maslow)가 말하는 욕구 5단계의 최상위 가치인 자아실현을 위한 집으로 인식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람은 결국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죽을테니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