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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에 우는 서민] 은행들은 비 오면 우산 뺏는다?
경기 안 좋을땐 자금 회수 '혈안'… 좋아지면 저금리로 '대출 유혹'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
지난 2009년 겨울. 중견 조선회사에 다니던 H과장은 은행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이 쓰고 있는 신용대출한도가 한번에 20%나 줄었다는 얘기였다.
갑자기 한도가 줄어든 그는 은행에 그 이유를 물었다. 은행 측 답변은 간단했다. 그가 다니는 회사가 채권단의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는 것이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회사는 우수 거래처로 지정돼 임직원 우대대출까지 가능했었다. H씨는 할 수 없이 400만원을 다른 곳에서 빌려 은행에 돈을 갚았다. 그러나 그는 은행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꼈다.
은행들은 비오면 우산을 빼앗는다.
경기가 어려워지면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H과장의 사례는 특별한 게 아니다. 처음에는 대출을 쓰라며 권유를 하다가도 본점 차원에서 관리가 들어가면 바로 한도를 줄이거나 때로는 부분상환을 요구하기도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갑자기 씀씀이를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다. 특히 대출은 한번 받게 되면 다른 곳에서 또 빌려서 갚는다는 게(대환) 말처럼 쉽지 않다. 금리가 더 오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고객이 충성을 다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에 상응하는 것을 베풀지는 않는다.
개인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도 비슷한 상황을 많이 겪는다.
중소기업 대표인 A씨는 아직도 금융위기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자금난으로 주거래 은행에 추가 대출 2억원을 신청했지만 대출은커녕 기존 대출도 만기가 되면 회수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운영자금이 없으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그는 기업은행을 찾았고 겨우 추가 대출을 받았다. 그는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나 한번 가보라"는 당시 거래은행 직원의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맞자 대부분의 시중은행은 중소기업대출을 마구 줄였다. 금융당국에서 나서 중소기업 지원을 하라고 독려해야 했을 정도다.
실제로 은행권의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2009년 말 430조6,508억원에서 2010년 말에는 429조7,391억원으로 9,117억원 줄었다. 시중은행들이 몸을 사리며 우산을 뺏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안정되자 은행들이 다시 낮은 금리로 고객들을 유혹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들어서는 감독당국이 과당경쟁을 경고해야 했을 정도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경기가 안 좋을 때는 앞다퉈 자금을 회수하다가 경기가 다시 좋아지니 낮은 금리를 무기로 대출영업을 벌이고 있다"며 "은행권의 이중적인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