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별·광역시 구의회 폐지


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서울과 부산 등 6개 광역시 구의회·군의회 폐지안을 놓고 정치권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지방자치발전위원회 원안대로 통과되면 서울·광역시 구의회는 없어지고, 구청장과 군수는 지방선거를 통해 뽑지 않고 서울·광역시장에 의해 임명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구의회 폐지를 주장하는 쪽은 과도한 구의회 운영예산과 행정 비효율성을 없애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반대 측은 폐지안이 중앙집권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지방자치의 근간을 뒤흔들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육동일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교수·지방자치발전위원회 위원


전시성 행사·시설 중복 등 재정 낭비 커

행정 효율 제고 위해 읍면동 기능 강화를


지난 8일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마련한 '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범정부적 실천 의지가 담긴 이 계획에는 특별·광역시 내 구(區)의회·군의회 폐지 방안이 포함돼 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생활권역이 팽창했는데도 생활권과 행정권의 괴리가 주민 불편, 자치구간 서비스 및 복지 불균형, 그리고 유사시설 중복설치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 배경이다. 대도시의 종합 행정이 저해되고 이는 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자치제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구 자치제는 도입 당시부터 찬반론이 팽팽하게 대립해 논란이 많았다. 이제 구 자치제 시행 20년 만에 운영성과를 놓고 존폐를 다시 결정해야 할 시점에 놓인 것이다. 그간 구 자치제 운영성과는 적지 않게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구 자치제 시행에 따른 부작용과 폐해는 성과를 훨씬 능가한다. 특히 의장단 구성, 의정비 책정, 의원 해외연수 때마다 파행을 거듭해온 구의회에 대해 시민들이 갖는 불만과 불신은 인내의 한계를 넘은 지 오래다. 일부 구의원들의 빗나간 권위주의와 수준 낮은 의정활동은 구 자치제 무용론을 자초하는 데 한몫을 했다. 아무리 민주적인 제도라고 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절대로 정착할 수 없다. 여기에 자치구마다 공공건물 공동 이용을 외면하고 구 청사 및 문화·복지·체육시설을 과다 설치해 재정 낭비를 가져왔다. 자치구마다 추진하고 있는 축제를 비롯한 선심성·전시성 사업과 행사들은 구 살림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전국 74개 자치구·군의 75.4%인 52개가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치구 재정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협력 없는 지방자치는 낭비와 비효율만 초래할 뿐이다. 부담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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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회 폐지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서울특별시와 광역시 자치구들의 평균 인구 규모는 각각 40만명과 20만명이 넘는다. 이렇게 규모가 큰 자치구로는 실질적 자치가 불가능하다. 오히려 읍면동의 자치기능을 보다 강화한다면 민주주의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 사례들도 이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를 제외한 대부분의 대도시들이 완전한 구 자치제보다는 준자치제 내지 행정구로 도시행정을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한 국가 내에서도 대도시의 구 자치제는 다양하다. 런던을 제외한 영국의 36개 대도시들은 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구 270만명인 오사카는 자치권이 없는 24개 행정구로 구의회 없이 시장이 구청장을 임명한다.

물론 구의회 폐지가 정당화되려면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즉 비대해질 수 있는 특별·광역시장의 권한을 견제하는 장치는 충분히 마련해놓아야 한다. 광역 시의회 의원 정수와 기능을 확대하고 독립적인 지방행정 감사기구나 선출직 회계검사관을 두는 방안도 필요하다. 앞으로 보다 민주적이고 효율적으로 대도시 행정이 수행될 수 있도록 국회 입법과정에서 치밀한 보완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촉구한다.

● 반대-정세욱 명지대 명예교수·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폐지땐 다양한 행정수요에 대응 못해

문제점 보완해 근린 민주주의 구현해야


대통령 소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가 마련한 '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의 골자는 오는 2017년까지 서울과 6대 광역시의 자치구·군의회를 폐지하고 광역시장이 시의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구청장과 군수를 임명하도록 하는 것이다. 특별·광역시는 하나의 생활권이므로 시가 종합행정을 수행해야 하나 시 구역을 인위적으로 분할해 설치한 자치구들의 반발로 종합행정의 원활한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는 서울과 일부 광역시에는 맞지 않는다. 서울 종로구·강남구·은평구·구로구는 정체성·역사성과 행정 수요가 다르다. 인천 남동구와 옹진군은 동일 생활권이 아니며 행정 수요도 판이한데 구·군 자치제를 폐지하면 시가 다양한 행정 수요에 대응할 수 없다. 특별·광역시-구 간 갈등도 시-구 간의 불합리한 사무 배분과 구청장·구의원 선거에 정당공천제를 도입해 시장-구청장의 소속 정당이 다르게 됐기 때문이지 구 자치제 때문이 아니다. 지발위는 주민의 1차적 대의기관인 구의회의 민주적 기능을 경시하고 운영 비용이 과다하다며 비효율적 제도로 폄훼했다. 주민의 대의기관인 의회를 행정적 효율성의 잣대로만 평가한다면 비효율적인 시·도의회와 국회까지도 폐지해야 마땅하다. 지방자치의 이상은 '근접성의 민주주의' '근린(近隣) 민주주의' 구현에 있다. 대도시 정부에 의한 결정보다 주민 의견 수렴과 합의를 통한 결정이 더 존중되는 거버넌스 체제가 중요하다. 특별·광역시를 2계층제로 한 취지다. 지난 2006년 '4개 시군 자치제' 폐지 후 제주도는 주민 불편이 커져 시장 직선제, 기초자치단체 부활 등 다양한 보완책을 모색한 바 있다.

영국 런던은 1986년 대(大)런던의회를 폐지했다 2000년 '대런던정부'를 부활시켜 2계층제로 환원했으며 같은 해 일본도 도쿄도(東京都) 특별구를 보통지방공공단체로 승격시켜 2계층체제를 확립했다. 유럽의 파리시·로마시·비엔나시는 1계층제이나 획일적 행정의 폐해를 막기 위해 특례로 구의회와 민선 구청장(구의회 의장이 겸임)을 두고 있다. 정치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대도시 지역을 하나의 광역 정부가 일사불란하게 관할하는 단일중심체제보다 다수의 소규모 지방 정부들이 다양하게 관할하는 다(多)중심 거버넌스 체제가 민주주의는 물론 효율성 면에서도 우월하다고 지적했다. 다중심 거버넌스 체제는 혼란이 아니라 경쟁을 촉진하고 민주적 효율성을 증진하며 관료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치구제가 대민 서비스 및 발전에 불균형을 초래하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논리도 옳지 않다. 서울 강남·강북의 차이가 구 자치제 때문이라는 말인가. 마치 시·도 자치제 시행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이 초래됐다는 주장과 같다. 도민들은 도와 시·군 2계층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데 자치구가 폐지되면 광역시민들은 광역시 1계층 선거권·피선거권만 갖게 돼 광역시민의 참정권과 평등권 침해라는 위헌 소지가 있다. 구 자치제의 문제점을 보완해야지 여론 수렴 과정이나 국민적 합의도 없이 이를 폐지해 지난 20년 동안 일궈놓은 지방자치를 반(半)관치시대로 회귀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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