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IMF 1년] 어떻게 달라졌나

국제통화기금(IMF)체제 1년을 맞아 누구나 자신과 주변이, 그리고 사회전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되새겨본다.한글 읽기조차 힘겨운 시골 촌부(村夫)도 이젠 은행문턱에 들어서자마자 『이 은행은 BIS비율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불과 1년전만 해도 국제결제은행(BIS)을 알 턱이 없고, 알 필요도 없었던 할아버지들조차 IMF체제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IMF체제는 우리 경제의 근본틀을 바꾸고 재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당연히 맞는 얘기고 지금의 어려움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칠 부분은 제대로 고쳐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기에 다행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너무 크다는게 보통사람들의 하소연이다. ◆IMF는 이렇게 우리곁으로 다가왔다 = 지난해 11월 중순 국민들은 고장난 녹음기에서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이 튼튼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설마」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졸였다. 그해 11월16일 미셸 캉드쉬 IMF총재가 10월에 이어 2차 극비 방한해 강경식(姜慶植) 부총리겸재경원장관과 이경식(李經植) 한국은행총재, 김인호(金仁浩)청와대경제수석 등 당시 경제팀을 만나 구제금융을 협의했다. 당시 캉드쉬총재를 공항에서 영접했던 김석동(金錫東)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은 우리나라 사람중 캉드시총재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캉드쉬총재는 방한중 가명을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우리는 눈앞으로 덮쳐오는 위기에 둔감했다. 20일 스탠리 피셔 IMF부총재가 극비방한, 임창열(林昌烈)부총리, 박영철(朴英哲)금융연구원장등과 연쇄접촉했다. 서울경제신문이 이 사실을 단독 확인, 우리나라가 IMF에 600억달러규모의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는 특종보도를 하면서 한국의 IMF행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다음날 밤10시 임창열(林昌烈) 당시 부총리겸 재경원장관은 결국 『우리는 IMF로 간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은 아직도 IMF로 가는게 뭘 의미하는지 제대로 몰랐다. 우여곡절끝에 12월3일 林부총리와 李한은총재가 캉드쉬총재에게 「항복문서」를 제출하면서 한국은 본격적으로 IMF체제에 들어갔다. 외환보유고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IMF1년 동안 우리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우리는 국가부도 위기를 해소하고 구조개혁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힘을 집중했다. 이때 들여온 IMF, 세계은행(IBRD)등 국제기구의 자금은 250억달러. 금융기관의 단기외채 218억달러의 만기가 중장기로 연장됐고 4월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40억달러어치를 성공적으로 발행,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시작했다. 외환위기의 본질은 역시 신용경색이었다. 가뜩이나 돈 구경하기 힘든데다 금리는 연30%를 웃돌아 웬만큼 튼튼한 기업이라도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갔다. IMF 이후 매달 도산기업수는 천정부지로 치솟아 지난 2월엔 3,377개 기업이 부도를 냈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에 안주했던 30대그룹 가운데 해태, 한라, 진로, 뉴코아, 동아, 쌍용, 고합, 아남, 신호, 거평, 강원산업 등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거나 워크아웃을 자청했다. IMF는 처음부터 고금리, 긴축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이에 끌려다니느라 힘을 소진했다. 구조조정의 틀이 마련된 것도 이 때다. 올 1월 김대중(金大中)대통령당선자와 5대 그룹총수들은 5대 과제에 합의했고 노사정위원회는 2월 고용조정과 근로자파견제를 골자로 한 노동개혁입법에 합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5∼6월은 금융구조조정의 태풍이 몰아쳤다. 「퇴출」중심의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64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결론도 내려졌다. 6월엔 5개 은행과 55개 기업이 퇴출대상으로 결정됐다. 7월이후는 구조조정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중심의 「살리기」쪽으로 흐르기 시작했고 9월말 금융부문 구조조정은 38조원의 국민세금을 쏟아부으며 1차 마무리됐다. 9월로 접어들면서 경기활성화가 화두로 등장했다. 무너지고있는 내수를 살리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경기의 수직추락을 막아야 했다. 통화는 충분히 공급하기로 했고 금리는 어느새 한자리로 떨어졌다. 외환보유고는 10월말 IMF와 약속한 연말목표 430억달러를 넘어 450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로 커졌다. 만성적인 적자재정국가로 전락할 지 모른다는 우려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IMF1년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95년 처음으로 1만달러선을 돌파했고 96년엔 1만543달러로 올라섰지만 외환위기로 불과 2년동안의 1만달러 시대를 마감했다. 지난해 9,511달러로 하락한 1인당 국민소득은 마이너스 6%대의 감속성장이 예상되는 올해 6,600달러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내년엔 10년전 수준인 5,000달러대로 곤두박질칠게 분명하다. 거의 10년 이상 2%대 초반에 머물러 사실상 완전고용을 자랑하던 실업률은 7%대로 치솟았다. 지난 9월말현재 157만명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공원과 지하철역으로 노숙자들이 몰리고 있다. 그나마 구조조정의 험한 파고를 이겨내며 직장에 남아있는 사람들도 소득이 급격히 줄어드는 고통에 빠졌고 특히 저소득층의 충격이 컸다. 경제성장 가도를 달려오면서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던 명목소득은 올들어 처음 감소했고 한 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국민들은 소득이 줄어든 것보다 소비를 더 줄였다. 소비가 안되니 생산도 위축됐다. 지난해까지 80%대를 유지하던 공장가동률은 60%대초반으로 떨어졌다가 지난 9월에야 겨우 70%대에 복귀했다. 그나마 가동중인 제조업체들중 설비가 남아돌아 골치를 썩히는 업체가 지난해의 3배로 늘어났다. 신규투자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부동산을 쏟아내 부동산 가격은 바닥을 모르게 폭락했다. 집줄이기가 유행처럼 번졌고 세입자들이 제때 전세금을 받지 못하는 전세대란도 벌어졌다. 주가폭락까지 겹치는 「자산디플레」가 현실화했다. 정부가 IMF체제에 들어서면서 총력을 기울인 금융·기업구조조정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금융구조조정은 인원과 조직감축, 합병등이 진행중이다. 기업구조조정은 핵심인 5대 그룹의 구조조정에서 벽에 부딪치고있다. 구조조정의 강도를 높이려는 정부와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재계가 힘겨루기를 하고있다. 공공부문 특히 정부부문의 구조조정은 가장 더디다. 일부 공조직은 정치논리에 막혀 통폐합은 엄두를 못내고있다. ◆IMF체제 1년은 한국경제 재도약의 발판이다 = 앞으로 과제는 분명하다. 기업의 생사는 어느 집단에 속해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자체 경영효율이 기준이 될 수 밖에 없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 기준에 따라 자율적으로 대출을 해주게 된다. 정부주도형 구조조정이 지금까지 위기탈출의 추진력이었다면 앞으로는 금융기관의 자율에 의한 구조조정이 그 역할을 한다. 바닥이 어디냐를 두고 한창 논쟁이 진행중이다. 정부나 관변연구기관들은 늦어도 내년 3∼4월이면 바닥에 도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U자형 곡선을 그리며 다시 상승할 것으로 보고있다. 마침 9월이후 어음부도율은 외환위기 이전수준으로 되돌아갔고 창업은 다시 늘고있다. 9∼10월중 대기업 대출이 1조5,000억원이나 감소한데 비해 중소기업대출은 2조8,795억원이나 증가했다. 외부평가도 좋다. 캉드쉬총재는 지난 10월초 IMF연차총회에서 『한국은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중 모범』이라고 추켜세웠고 미국의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은 『금융시장 붕괴에서 촉발된 경제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있는 나라』로 한국을 평가했다. 외부변수가 호전된데 힘입은 이런 낙관적 전망이 현실화하려면 이번 기회에 구조조정을 확실하게 마무리하려는 열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빛이 보일 때 경계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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