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207> 정치와 미학적 쇼잉(aesthetical showing)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관련 법안 통과에 주변국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일본이 자발적으로 무력행사에 나설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80%에 달한다. 정치에 관심 없기로 유명한 일본의 20대들이 연대해 ‘실즈’라는 단체까지 만들 정도다. 일본 20대들은 공동 외신기자회견을 통해 현재의 집단적 자위권, 내년으로 예상되는 헌법 9조 개정이 일본을 ‘전쟁하는 나라’로 만들 것이라며 아베 정부를 강력 규탄했다. 이들은 한편 내년부터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연령이 18세로 낮아짐과 동시에 일본이 징병제를 도입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고 있다. 병역 의무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여기는 일본 젊은이들은 아베식 ‘보통국가론’에 대해 이래저래 심사가 복잡할 것이다.


이 와중에 한 일본 정치인이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야마모토 타로(山本太郞)을 배우 출신의 생활당 참의원 의원. 그가 지난 9월 18일 일본 참의원의 집단적 자위권 관련 법안 가결 전에 보인 퍼포먼스는 가히 압권이었다. 그는 ‘죽어버린 자민당에 대한 조문’ 차원의 분향과 참배 시늉을 했다. 손에는 염주를 들고, 연설대 근처에서 사람들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은 법안 반대를 위해 몸을 날리는 그 어떤 정치인보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야마모토 타로 의원의 연기는 일본 전역 그리고 세계 사회를 향한 강한 메시지요 웅변이었다. 이렇듯 안팎의 반응이 뜨겁자 몰염치한 아베까지 움찔했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식 투쟁을 벌이고, 거리 행진을 해도 아베 정권은 귀를 막았지만 그의 분향과 참배 퍼포먼스에는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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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배우 출신 야마모토 의원은 일찍이 2012년 도쿄에서 유명 자민당 정치인인 이시하라 노부테루 후보와 중의원 선거에서 맞붙었을 때부터 만만치 않은 ‘내공’을 보여줬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시하라가 전직 도쿄 도지사인 아버지, 자신의 장관 경력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였던 반면, 야마모토는 배우였다는 것 외에는 딱히 내세울 만한 이력이 없었다. 정치적 자산이 부족했던 그는 본인의 신념으로 정면승부를 걸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불거지자마자 원전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한국과 독도를 둘러싼 영토 분쟁이 일자 ‘다케시마를 한국에 주는 것이 맞다’며 당당하게 소신을 밝혔던 것처럼. 야마모토는 비록 낙선하긴 했지만 7만1,028표로 2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의 신념이 유권자들에게 꽤 매력적이었다는 증거다.

‘정치는 가장 훌륭한 배우들이 무대 위에 서는 분야’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작 정치판에서 그럴듯한 배우를 찾기 어렵기는 일본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다. 오로지 자기 아집과 이해관계에만 골몰하는 천박한 모리배들만 넘쳐날 뿐이다. 그런 점에서 배우 출신 정치인 야마모토가 보여준 ‘미학적 쇼잉’(aesthetical showing)은 반갑다. ‘정치란 땅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난다. 정치와 쇼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 ‘품위있는 쇼’를 많이 볼 수 있기 바란다. 자극적이고 작위적인 연기는 당장은 호응을 얻을지 몰라도 금세 질리고 만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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