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의 정치지형이 바뀌고 있다. 지난 6일 프랑스 사회당은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대선후보로 꼽히지 않았던 프랑수와 올랑드를 내세워 17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이로써 2009년 아일랜드와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 이후 정권이 바뀐 유럽 국가는 모두 16개국에 달한다. 거대한 정치적 쓰나미가 유럽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바꿔보자 심리에 16개국 정권 갈려
유럽 국가들의 정권 교체는 책임정치 차원에서 보자면 일견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특히 재정위기가 유럽 각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에서 집권당이 실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이데올로기적 지향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와 같이 중도우파에서 중도좌파로 바뀐 나라도 있지만 지난해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좌파정부가 선거에서 패퇴, 우파로 집권당이 바뀌었다. 한마디로 말해 현 정권이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까 바꿔보자는 것이다. 또한 현재 그리스에서 목도하고 있듯이 그동안 거의 40년 동안 정권을 주고받던 중도 좌ㆍ우파 당이 다 합쳐도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의 표출이다. 여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독일이 주도하는 긴축정책에 대한 위기국 국민들의 엄청난 반감이 도사리고 있다.
문제는 유럽 신(新)재정협약으로 대표되는 긴축정책이다. 입에 쓴 약과 같은 긴축정책이 해당국의 체제 개혁을 더욱 압박할 수는 있으나, 경제의 총수요를 위축시켜 경제회복을 더디게 한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연금이 삭감되고 실업수당이 줄어들고 세금은 더 내야 하는 현실을 일반 국민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긴축정책에 대한 비난이 꼭 인기영합주의적인 주장으로만 들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아시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보듯이 긴축정책은 해당국에 엄청난 부작용을 주기는 하지만 일정 부분 경제체질 개선에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아시아의 경우에서처럼 위기가 몇 나라에 국한되면 몰라도 유럽처럼 엄청난 경제적 수요로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세계최대 경제권이라면 긴축정책의 부작용은 그 나라들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 더 나아가 세계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로 부상한다. 작으면 문제가 없지만 커지면 스캔들이 된다는 말이다.
신재정협약 넘는 성장 촉진책 필요
사정이 이러하다면 긴축정책에 대해 조금 더 이성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신재정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자금 지원과 부채 탕감으로 긴급한 상황을 넘기기 어렵다면 이 협약을 준수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협약은 협약대로 이행하되 이를 넘어서는 성장촉진 정책이 필요하다. 부채의 집중화 및 별도 관리를 통해 숨통을 틔워주고 통화정책 부문에서 양적 완화를 시행하며, 필수적 소비 부문에서는 국민들에게 쿠폰을 발행해 소비를 유지시켜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올랑드는 신재정협약의 재협상을 주장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공약에서 주장한 모든 내용을 다 이행하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프랑스가 독일과 ECB, 그리고 IMF와 만날 때 그럭저럭 체면을 유지하고 뭔가 프랑스 국민을 다독일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을 받아오는 것은 유럽 위기 완화와 세계경제의 지속적 성장에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라. 유로화의 가치는 더 떨어질 여지가 있다. 그리고 독일은 돈을 더 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 유로존의 미래는 지극히 불확실해진다. 모두가 패배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