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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재분배·복지 등이란 단어로도 치환 가능한 이 조어는 지난 2012년 대선 후보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공통 공약이었다. 여와 야,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수 없이 모든 후보가 앞다퉈 복지 국가의 꿈을 얘기했다. 하지만 그토록 강조했던 경제민주화가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이 다 돼가도록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인지, 아예 공언이 되고 있는 것인지는 물음표를 던지는 목소리가 많다.
지난 20여년간 복지 국가와 재분배 문제에 천착해 온 강명세 세종연구소 박사(수석연구위원)는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재의 정치 제도는 국민이 강력히 선호하는 복지의 확대를 실현시킬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고. 그래서 복지를, 재분배를 원한다면 "정치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 박사의 책 '민주주의 복지국가 그리고 재분배'는 정치 제도의 차이가 복지 국가 건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를 연구한 결과물이다. 사실 그의 연구 주제는 책 제목만큼이나 고루하다. 19세기 초반의 칼 마르크스부터 최근 국내·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까지. 자본주의 및 민주주의 발달, 이 가운데서 파생되는 불평등을 개선키 위한 복지·재분배 문제는 지난 200여년간 전세계 사회·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몰두해 온 연구 거리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박사의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특히 한국 정치에서의 이 두 관계가 왜 유권자의 바람대로 유기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가를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의 주장은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을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무책임한 정부·여당이나 견제 기능을 상실한 무능력한 야당, 혹은 보수적 언론 환경 등에서 찾는 기존의 논의들과 매우 다르다. 복지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 방안에만 골몰해 있는 최근의 조세 논쟁과도 초점을 달리한다.
대신 그는 "1등 만이 당선되는 승자 독식형 선거제도와 대통령 중심제는 사회적으로 세력이 약한 집단이 정치적 대표성을 갖기 불리한 제도"라며 '게임의 룰'을 바꾸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복지 국가 건설은 난망한 과제라고 단언한다. 특히 그는 다른 나라들의 사례 분석을 통해 의회제(의원내각제) 및 비례대표제 강화가 대통령제·다수제에 비해 재분배를 늘리고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훨씬 더 용이함을 경험적으로 증명해 내고 있다.
저자는 이 주장을 강화키 위해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재분배 정책이 얼마나 취약한 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수치도 나온다. 룩셈부르크소득연구원(LIS)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세전 지니계수(0.338)와 세후 지니계수(0.312)간 차이는 0.026에 그치고 있다. 조세 제도를 활용한 불평등 완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정부의 재분배 정책 효과가 한국보다 부실한 나라는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3곳(중국·과테말라·대만)에 불과하다.
저자는 말한다. "공언(空言)은 선거가 끝나면 사라지지만 제도는 계속되며, 어떤 정치 제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민주주의가 사회경제적 요구를 수용하는 정도와 폭은 달라진다"고. 복지를 원하거든 게임의 룰을 바꿔라. 2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