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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새로운 개발 중심축으로 기대를 모았던 용산 일대가 잇따른 사업 표류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00년 서울시가 용산역을 중심으로 서울역과 삼각지 일대를 아우르는 대규모 부도심 육성방안을 내놓았지만 일부 사업을 제외하고는 첫 삽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2일 기자가 방문한 용산역 주변은 최근 순위 내 청약을 마감한 용산전면3구역 주상복합 '용산 푸르지오 써밋'과 6월 분양을 앞둔 전면2구역 '래미안 용산'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근 국제빌딩3구역에는 최근 준공된 '아스테리움 용산'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크고 작은 9개 구역으로 나뉘어 추진되던 용산 일대 나머지 사업들은 추진 자체가 불투명한 상태다.
2009년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의 현장인 '국제빌딩4구역'은 여전히 잡초만 무성한 채 사업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 무산으로 1조원대 토지 반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용산역 뒤편 철도기지창 부지 역시 토지 정화사업이 멈춘 채 방치된 가건물들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상처만 남긴 장밋빛 청사진=서울시의 용산 청사진은 강남 중심의 도시공간 구조를 바꾸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관심을 모았었다. 37만2,000㎡ 규모의 철도정비창 기지에는 100층 이상의 랜드마크 빌딩을 비롯한 마천루 숲이 들어설 계획이었다. KTX 개발계획이 맞물려 교통기능이 확대되는 용산역에는 대규모 복합역사건물이 들어서고 집창촌이 있던 역사 앞과 낙후된 국제빌딩 인근의 개발계획도 확정됐다.
이 같은 개발계획은 한때 용산 전체 부동산 시장을 들썩거리게 했다. 실제로 옛 세계일보 부지를 개발해 2004년에 분양한 '용산 시티파크' 주상복합은 '강북의 타워팰리스'로 불리며 부동산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개발업체들이 몰리면서 장부가액 3,000억원에 불과했던 철도기지창 부지는 8조원에 팔렸다. 용산국제업무지구에 편입된 서부이촌동은 한때 땅값이 3.3㎡당 2억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를 겪으면서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개발 프로젝트가 멈춘 상태다. 서부이촌동 일대 땅값은 고점의 절반 수준인 3.3㎡당 1억원선까지 떨어진 상태로 매물이 나와 있지만 그마저도 매수세가 거의 없어 거래가 끊겨 있다. 국제빌딩4구역의 경우 공사비를 둘러싼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으로 사업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완공된 국제빌딩3구역의 '아스테리움 서울'은 준공 후에도 상당수 아파트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다.
◇대규모 개발에 컨트롤타워조차 없어=전문가들은 용산 일대 개발이 이처럼 지지부진한 이유로 부동산 경기 침체 외에 공공 차원의 컨트롤타워 부재를 꼽고 있다.
보통 10년 이상의 중장기 개발의 경우 경기에 따라 사업 주체의 이해관계가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서울시가 이 같은 이해관계 조정을 민간에만 맡긴 탓에 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용산국제업무지구의 경우 수십조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데도 불구하고 정부나 서울시가 사업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방치하면서 결국 좌초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미 1980~1990년대 용산과 같은 개발의 후유증을 겪은 서구 선진국은 이 같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공공 디벨로퍼'가 개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보스턴개발청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대충 계획을 만들어도 통하던 시기가 아닌 이상 수요와 공급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며 "특히 이해관계 조정까지 공공 디벨로퍼가 맡아야 하지만 현재 서울시의 경우 그럴 능력도 조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공 부문에 중장기 프로젝트를 이끌어갈 전문가를 양성하고 전담 조직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