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성 리더' 키운다면서…여대, 이공계는 30%도 안뽑아

[동덕사태가 불 지핀 '여대 위기론']

여대 7곳 이공계 평균 27.1% 선발

인문 쏠림 여전…공학은 40% 초과

사회·산업구조 변화 못읽고 제자리

교수진·교과 다양성도 공학이 우위

"5년 내 도산 가능, 차별화 시급"

동덕여대 총학생회가 처장단과의 면담에서 남녀 공학 반대 의견을 전달한 이달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외벽에 공학 반대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동덕여대 총학생회가 처장단과의 면담에서 남녀 공학 반대 의견을 전달한 이달 21일 오전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외벽에 공학 반대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두고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동덕여대가 수업 재개에 합의하고 봉쇄를 부분적으로 해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규모 락카 낙서와 점거 등 폭력 행위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동덕여대 사태는 한편으로 여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와 산업 구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위기에 직면한 단면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국가의 미래 성장 동력을 이끌 젊은 이공계 인재 양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지만 여대의 이공계 전공 비중은 대부분 20%대에 머물러 있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재정난까지 겹치며 여대가 단순히 ‘여성 교육기회 확대’ ‘성차별 완화’라는 기존 사명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4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내 주요 여대 7곳의 2025학년도 정시·수시 선발 인원을 분석한 결과 여대의 이공계 비중은 평균 27.1%였다. 이화여대가 30.8%로 가장 높았고 숙명여대(29.0%), 성신여대(28.7%), 서울여대(28.5%), 덕성여대(25.8%)가 뒤를 이었다. 동덕여대(18.4%)와 광주여대(20.1%)는 20%를 넘지 못했다. 반면 성균관대(44.2%), 중앙대(40.8%) 등 남녀공학 대학은 이공계 비중이 대부분 40%를 초과했고 교수진 구성과 교과목 다양성에서도 상대적 우위를 보였다.





여대는 전공 구성에서 인문사회와 예체능 계열에 편중된 모습을 보였다. 인문·사회과학·경영대 비중은 평균 36.3%로 이공계 비중의 약 1.5배였으며, 예체능대학과 사범대학은 각각 16.5%, 4.7%였다. 과거와 달리 여학생들 역시 인공지능(AI), 바이오, 컴퓨터공학 등 이공계 분야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여대가 이러한 수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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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난관까지 더해지며 여대의 생존 가능성은 더욱 불확실해지고 있다. 현재 고3 학생 수는 약 40만 명으로 집계됐다. 교육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이 수치는 2034년까지 30만 명대 초반으로 감소하고 2035년에는 27만명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후 감소세는 더욱 가팔라져 2039년에는 19만 4371명으로 주저앉고 장기적으로는 16만~17만 명대에서 머무를 전망이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앞으로 5년 내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충원이 더욱 어려워지면 일부 여대는 도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여대의 정체성과 차별성이 희미해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과거에는 여성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여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여성의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면서 그 의미가 옅어지고 있다. 여대의 필수교양과목은 영어회화, 글쓰기, 코딩 등 일반 4년제 대학과 차이가 없으며 여성학이나 젠더 관련 과목은 선택 사항이다. 소수자 인권과 성평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룰 학문적 지원과 체계적인 교육 모델도 부족하다.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나 동아리 차원의 논의에서 벗어나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학문적 성과로 발전시킬 구조적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서울여대와 숙명여대는 각각 2004년과 2008년에 여성학 협동과정을 폐지했으며 현재 여성학과를 운영하는 여대는 이화여대가 유일하다.

일부 여대의 교육이념도 시대 변화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다. 예컨대 숙명여대의 교육이념인 ‘정숙, 현명, 정대’ 중 ‘정숙’은 ‘여자로서 행실이 곧고 마음씨가 맑고 고움’을 뜻하는 단어다. 곽윤숙 여주대 심리재활치료학과 교수는 “여대의 설립 목적은 여성의 전문성 강화보다는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를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역할과 가치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동덕여대 사태를 계기로 여대의 생존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여대가 가진 강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하거나 일부 전공을 공학으로 전환하는 등 혁신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대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서울의 한 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교의 최고경영자(CEO) 과정이 2년 연속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며 “남성 신입생을 배제하는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네트워킹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대가 단순히 여성만 선발하고 모이는 공간을 넘어 사회적 변화에 부응하는 개방적 논의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교수도 “여대가 스스로 어떤 가치를 지키고 어떤 형태로 특성화할 수 있을지 결론내려야 한다”며 “기존 남녀공학 대학과 동일한 구조를 따라가기보다는 여대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독창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채윤 기자·박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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