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유천일 STX팬오션 전 대표 통한의 서한] "피눈물 흘리며 떠난 동료들 웃는 얼굴로 다시 돌아 왔으면"

회생계획안 내는 날까지 뜬 눈으로 밤새며 고민<br>직원 200명 해고 사인… 지금 생각해도 가슴 먹먹<br>어쩔 수 없는 고통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 없기를

구조조정 과정은 험난하고도 고통스럽다. 36%에 이르는 전 직원을 내보내고 자신도 버린 유천일 전 대표는 STX팬오션이 정상화에 성공해 피눈물을 흘리며 떠난 동료들이 웃는 얼굴로 다시 돌아올 시간이 앞당겨지길 고대했다. STX그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지난 2009년 STX팬오션의 탱커선이 운항하는 모습. /서울경제 DB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가족과 같은 회사 직원들을 제 손으로 200명 가까이 잘라내야 했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지만 예상보다 커진 인력 구조조정에 가슴이 미어질 뿐입니다. 30년 넘게 월급쟁이로 일해왔지만 자리에 연연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누군가는 현 상황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이 바로 그 시기라 판단해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유천일 전 STX팬오션 대표의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떨렸다.


유 전 대표는 지난달 말 법원에 STX팬오션의 인력 구조조정안을 내면서 사퇴 의사를 밝혔고 지난 6일 사임이 최종 확정됐다.

그는 10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웠던 인력 구조조정을 매듭 지어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라면서도 "회사 직원들을 200명 가까이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인력 구조조정의 폭이 예상보다 컸다. 회사는 9월 1차 관계인 집회에서 10월까지 인력을 30%까지 줄이겠다고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목표 수치였을 뿐 업계에서도 30%를 최종 데드라인으로 봤다.

유 전 대표는 "회사 회생을 위해 법원과 채권단의 동의를 얻으려면 인력 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면서도 "부모와 자식이 있는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실직자 위기에 놓이게 된 점을 생각하면 아직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통상 부도가 난 기업을 회생시킬 때 가장 어려운 게 인력 구조조정이라고 한다. 과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을 보면 인력 구조조정 문제를 풀지 못해 회생의 문턱에서 번번이 쓰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유 전 대표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조직 슬림화에 매진했다. 6월 공동법정관리인으로 선정된 직후 회사 부실의 원흉인 장기용선계약을 정리하는 것부터 법원에 제출할 회생계획안 마련을 위해 채무변제 계획을 세우는 데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았다.


유 전 대표는 "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일에 매달렸다"면서 "하지만 구조조정의 마지막 단계인 인력 구조조정을 앞두고서는 심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되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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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 했던가. 조직 슬림화 과정에서 피눈물 흘리며 조직을 떠나야 했던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은 그가 서울경제신문에 보내온 편지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유 전 대표는 "국내외 해운산업이 장기간 불황에 흔들리면서 그나마도 국내에서는 가장 버틸 만하다고 여겨졌던 팬오션마저 법정관리 수순을 밟는 등 하루 앞을 알 수 없는 어두운 상황이 국내 해운업계를 강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STX팬오션의 법정관리와 관련해 여러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9월 말 조직 슬림화가 있었고 그 후속조치로서 인적자원 조정이 불가피했다. 노조가 결성됐고 조합과 충분한 협의 조정을 거쳐 10월31일부로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법원 승인신청서류를 제출하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저로서는 회사의 경영자로서, 또한 법정관리 중인 회사의 관리인으로서 경영 부실화 및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입장이며 진심으로 이번 조직 슬림화 과정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었다"며 사임계를 제출한 이유가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유 전 대표는 회사 임직원들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도 "30년 이상 회사생활을 해오면서 이번과 같은 대규모 조직 슬림화가 제 인생에 두 번 다시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지만 결코 비켜갈 수 없는 운명에 다시 한 번 고개 숙일 줄 아는 것도 배우게 됐다"면서 "회생 절차 중인 채무자회사 팬오션이 하루 빨리 조기 정상화돼 이번 조직 슬림화 과정에서 피눈물 흘리며 정든 직장을 떠나야만 하는 직장동료들이 다시 웃는 얼굴로 회사와 재결합할 수 있는 시간을 당겨 주길 부탁 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오는 22일 관계인집회를 열어 회사가 마련한 회생계획안에 대해 심리한 후 통과 여부를 결정한다. 업계에서는 STX팬오션이 부실한 장기용선계약을 상당 부분 털어냈고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도 단행한 만큼 회생계획안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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