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선거 앞두고 종교인 과세 누더기 만든 정부

정부가 추진하던 종교인 과세안이 원래보다 크게 후퇴한 모양이다. 당초 소득세법 시행령을 개정해 넣으려 했던 종교단체의 원천징수 의무를 완전히 없애고 종교인의 연 1회 종합소득 자진신고만으로 과세한다는 방향으로 돌아섰다는 소식이다. 저소득 종교인에게는 근로장려금을 주는 방안까지 검토하겠다고 한다. 6월 지방선거를 볼모로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보인 종교단체와 정치권의 압력에 두 손을 든 셈이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 후퇴'라고 강변할 수 있다. 원안을 강행하면 종교계의 반발에 부담을 느낀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과세 자체를 폐기할 수 있으니 양보를 해서라도 국회 문턱을 넘어보자는 절실함이 반영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 뜻을 이루기는 힘들 것 같다. 물러서기만 하고 아무런 성과도 못 거둔 정부만 우습게 됐다. 종교계에 빌미만 제공한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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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은 큰 문제다. 원천징수 의무 포기로 과세대상자가 축소 신고해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사라졌는데 어느 누가 곧이곧대로 밝히려 할까. 오히려 탈세를 부추길지 모른다. 원칙도 무너졌다. 저임금 근로자의 생계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근로장려금을 종교인에게 지급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종교인 누가 어떻게 노동했는지 어느 기관이 증빙할 것인가. 국회예산정책처는 근로장려금을 지급할 경우 개신교에서만 737억원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원안 수정으로 배(세수)보다 배꼽(근로장려금)이 더 커지게 됐다.

정부는 종교인 과세를 추진하면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선거 때만 되면 표를 가진 이들에게 고개 숙이는 정책을 보면 이 말을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이미 누더기로 변한 정부안이지만 넉 달이나 남은 지방선거 기간을 고려하면 얼마나 더 찢겨져 나갈지 아무도 모른다. 스스로 원칙을 지키지 못한 탓이다. 지금이라도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조세정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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