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거대 국유 석유기업 인수합병(M&A)으로 세계 최대 오일메이저를 설립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엑손모빌·로열더치셸·BP 등 전통 오일메이저 등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전략이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중국 정부가 글로벌 오일메이저 등과 경쟁할 수 있는 석유기업을 만들기 위해 중국석유천연가스(CNPC)와 중국석유화학(SINOPEC) 간 M&A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WSJ는 또 중국해양석유(SNOOC)와 중국화공(CHEMCHINA)의 합병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국유기업의 합병을 위해서는 해외 투자자, 은행 등의 동의를 얻어야 하지만 중국 지도부가 국유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성사 가능성이 높다고 WSJ는 분석했다. 실제로 하루 생산량 기준으로 세계 3위인 시노펙과 8위인 CNPC가 합칠 경우 엑손모빌을 가볍게 제치고 1위에 올라선다.
중국 정부가 세계 최대 오일메이저 설립에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외부적으로는 유가급락 이후 기존 오일메이저들이 휘청거리는 상황을 이용해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가급락 이후 오일메이저들은 비상경영에 들어가며 현재 진행 중인 에너지 개발 프로젝트를 축소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개발 프로젝트는 유가가 80달러 이상이어야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며 "차이나머니를 등에 업은 중국 국유 석유회사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또 지난 1990년 유가폭락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유가급락은 오일메이저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고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한 이들이 자산매각을 통해 살길을 찾을 경우 중국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헐값에 몸집을 키울 기회를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국유기업 개혁도 시노펙과 CNPC 등 국유 석유기업 합병의 빌미가 되고 있다. 특히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 겸 정법위 서기 체포 이후 석유방 부패 조사는 국유 석유기업을 개혁 1순위로 꼽고 있다. 중국 경제전문 매체인 차이징은 "국유 석유기업들이 소모적인 경쟁으로 비효율을 드러내고 있으며 최근 국제유가 급락은 이 같은 비효율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한 고위관료는 WSJ에 "우리는 거대한 중국 브랜드를 만들어 해외 굴지의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합병을 통한 거대기업 탄생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합병 추진 여부 확인은 물론 구체적인 시간표도 제시하지 않았으며 합병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한편 중국 정부는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개혁을 위해 국유기업 M&A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16일 국무원은 중국전력투자그룹과 국가핵전기술회사 간 합병을 승인했다. 이번 합병은 원전운영 라이선스를 가진 중국전력과 3세대 원전기술인 AP1000을 보유한 국가핵전 간 합병으로 중국산 원전의 세계 시장 진출 기반을 만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말에는 양대 고속철도 제조사인 중궈베이처(CNR)와 중궈난처(CSR)를 합병해 '공룡 고속철 국유기업'을 만든 뒤 세계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또 중국 화푸무역발전공사가 중국 최대 식품 국영기업인 중량그룹(COFCO)에 합병되기도 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중국 정부가 정보통신 산업 생산과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이나유니콤과 차이나텔레콤을 합병하고 차이나모바일과 광전네트워크를 합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우진시 칭와대 전랙신흥산업연구센터 주임은 "경쟁력 확보와 개혁이라는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중앙 국유기업들 간 합병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