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반갑다 숭례문아


아! 숭례문, 5년 전 화마가 님을 덮쳐 전국이 발칵 뒤집어졌을 때 우리는 불씨를 던진 특정인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은, 숭례문 참변에 나름 분노한 고등학생들의 대화 속의 한 질문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원래 문은 벽에 다는 것인데 숭례문은 왜 벽도 없이 몸체만 덩그마니 복잡한 도로 한가운데 서 있었니?"순간, 님을 불태운 범인은 역사와 문화에 무심했던 우리 모두였음을 내심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민족의 고난 함께 겪은 문화재

숭례문은 애초에 조선시대 한성을 드나들기 위한 문이었지요. 내사산(內四山)인 백악산ㆍ타락산ㆍ인왕산ㆍ목멱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성곽이 한성이었고 한성에 들어가는 것이 수도인 한양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성 안은 임금님이 사시는 곳이었고 성곽은 수도의 방어기능을 하고 있었기에 숭례문을 통과하려면 무장한 억센 군사들에게 검색을 당하고 통행세를 내고서야 가능했지요. 성안으로 들어가는 사대문(흥인지문ㆍ돈의문ㆍ숭례문ㆍ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ㆍ소의문ㆍ광희문ㆍ창의문)중에서도 숭례문은 미적 가치로나 상권인 운종가로 가려는 통행자들의 이용 빈도로나 가장 사랑 받던 '정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들의 의문처럼 왜 성벽도 없이 님은 몸체만 남게 됐던가요. 일제의 압제가 점점 강해지던 순종황제 시절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본 황태자 요시히토친왕이 우리의 비루한 성문으로 고개를 넣어 통과할 수 없다며 좌우 성벽을 허물게 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곽은 급속도로 훼손돼 갔고 사대문과 사소문들은 몸체만 남거나 그마저도 사라져갔습니다. 님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지를 잘려 몸뚱아리만 남은 짐승처럼 도시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며 역사의 시간을 버티다 불의 재앙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관련기사



아 숭례문, 산과 들에는 투명한 봄바람이 흐르고 초록이 빛처럼 뒤덮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계절이 온 세상을 향해 축복하듯 외세 이방인이건 우리 민족이건 님에게 범한 모든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숭례문, 님은 이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고 봄의 생명들처럼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청컨대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튼실한 문이 돼주십시오. 문은 우선 닫아서 지키는 역할이 있으니 무엇보다도 혼란스런 국내외의 정세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과 문화적인 정신을 고이 지키는 방패가 돼주십시오. 그리고 열어젖혀 우리나라와 세계를 잇는 문, 우리나라 각지와 각계와 각층과 각 개인을 잇는 소통의 문, 우리 사회 겹겹이 서 있던 불통의 벽을 연결하는 마음의 문이기를 기대합니다.

아름다운 5월의 숭례문 복원 기념식! 님은 앞으로 우리의 자부심이 돼주기를 바랍니다. 숭례문 자체로도 문화적 볼거리이지만 우리 삶 속 깊숙한 곳에 들어와서 우리 정서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으소서.

새시대 우리 자부심이 돼 주길

우리가 문화재를 귀히 여기지 못하는 이유가 문화재를 역사의 전리품이나 지식의 대상만으로 생각할 뿐 정서적인 애착을 갖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화적인 정서는 우리 마음에 혼란과 증오보다 사랑과 기쁨을 가졌을 때 더욱 깊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숭례문 복원 기념식 행사의 주제인 '비나리'처럼 지난날의 부정적인 정서를 씻어내고 새로운 희망과 기대가 우리 주변을 봄 햇살처럼 가득 채우기를 기대합니다.

이 편지는 님의 새로운 출발과 우리 미래의 자부심에 보내는 축하 메시지입니다. 토요일 주말을 맞아 외출을 하는 시민들께 여쭤 보겠습니다. 오늘 숭례문 산책은 어떻습니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