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인 비트코인에 대한 각국 중앙은행들의 견제가 시작됐다.
비트코인 거래가 불법은 아니지만 공식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최근 비트코인 열풍은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처럼 결국 거품 붕괴로 끝나고 마약 거래나 테러 세력의 돈세탁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경고도 속속 내놓고 있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거품 붕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의 금융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비트코인 역시 티셔츠, 커피, 음식 등을 사는 데나 이용하는 오락용 화폐나 틈새용 결제수단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 "화폐로 인정 않겠다"= 5일(현지시간) 비트코인 가격은 코인당 1,04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 1일 각각 1,214 달러에 거래된 점을 감안하면 불과 4일만에 20%나 폭락한 셈이다.
이 같은 가격 하락은 중국을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 등 각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투기 열풍을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날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PBOC)은 금융기관들에게 실물 화폐와 연계해 비트코인을 유통하거나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통화당국이 발행하지 않아 법적인 보장성도 갖추지 못해 진정한 화폐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인민은행은 개인 차원의 비트코인 온라인 거래는 허용하면서도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중앙은행도 이날 보고서에서 "법적인 보장성을 갖추지 못해 지불 거절의 위협이 있어 비트코인 사용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특히 보고서는 "비트코인은 변동성이 높아 자산 가격을 측정할 수 없고 신뢰성 있는 투자 수단도 아니기 때문에 금융안정성마저 위협할 수 있다"며 "해킹에 의해 비트코인을 도둑맞더라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지금은 문제가 없다고 보지만 비트코인이 현재보다 더 많이 지불 수단으로 쓰인다면 통화·금융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누트 벨링크 전 네덜란드 중앙은행장도 최근 비트코인을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투기에 비유해 "그나마 튤립은 최소한 한 송이를 얻을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아무것도 없다"며 "비트코인은 허풍으로 곧 무너질 건물과 같다"고 비꼬았다. 한국은행 역시 현재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각국, 비트코인에 칼 뽑아 드나= 비트코인 규제도 가시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의 미첼 바니에르 금융부문 위원은 "비트코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비트코인이 사기 등 범죄에 이용될 경우 법적 규제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미 규제당국은 비트코인을 금융정보분석원(FIU) 규제 대상으로 분류하고 돈세탁 등과 관련된 일부 거래소나 관련 계좌를 폐쇄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비트코인 거래소인 트레이드힐이 한 비트코인 업체와의 거래가 법적 규정에 어긋난 것으로 밝혀지면서 문을 닫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또 미 금융당국은 일본에 기반을 둔 비트코인 거래업체인 마운트곡스의 웰스파고 은행 계정을 폐쇄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달 "비트코인 관련 업체는 은행들과 사업을 하기 이전에 현행 돈세탁 방지 규정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연방수사국(FBI)은 비트코인이 불법 온라인 거래 사이트인 '실크로드'에서 마약거래, 돈세탁 등의 수단으로 악용된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시중은행들도 비트코인 업체와 거래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객들이 자금 세탁을 했을 때 법적 책임을 은행이 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미은행가협회(ABA)의 리차드 리즈 수석 부회장은 "회원사들의 비트코인 관심도는 대마초 판매업체와의 거래보다도 떨어진다"고 비꼬았다. 현재 콜로라도주와 워싱턴주는 오락용 대마초 사용은 합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시장의 성장성에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전통적인 은행 결제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하거나 다른 통화로 바꿀 수 없다면 틈새 화폐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 사업 환경이 악화되자 비트코인 거래소들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트레이드힐 설립자인 제러드 케나의 경우 영국이나 일본, 중국에 비트코인 거래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라이트스피트벤퍼파트너스의 경우 지난달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인 BTC차이나에 5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도 중국·유럽 등에 이어 규제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태국은 비트코인을 불법화폐로 규정하고 매매·전송, 물품 구매는 물론 채굴(발행)마저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