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박근혜와 국민소통


중국 한나라 승상이 된 조조는 한 왕실을 폐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르려고 한다. 그런데 오랜 기간 조조의 충복이었던 순욱만은 말세라며 강하게 반대한다. 조조는 몸져 누워 있던 순욱에게 과일상자를 보낸다. 감탄한 순욱이 상자를 열어보니 비어 있었다. 순욱은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다.

얼마 전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대변인이 인수위원장 인선발표장에서 밀봉된 봉투에서 자신도 처음 본다는 명단을 꺼내는 장면을 보며 순욱의 고사가 생각났다. '스스로 그만두라는 의사표시인가….' 자세한 사정은 알 길이 없지만 수석대변인이라는 사람에게 인선의 배경설명은 고사하고 명단만 인편으로 건네주다니.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연이어 유승민 의원이 윤 수석대변인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의구심이 더 커졌다.


깔끔떨기 소통, 오해 부를수도

정치 고수들 간의 고도의 정치 커뮤니케이션을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박근혜 차기 대통령의 대국민 소통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소통은 이명박 정부에서 즐겨 쓴 용어 가운데 하나다. 이 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가장 먼저 없애겠다고 결정한 것이 국정홍보처였다. 실용정부를 표방한 이 대통령은 국정홍보가 국민들에 대한 선전과 기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6개월도 못 가 4대강 살리기, 세종시 이전반대 등을 추진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홍보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새롭게 만든 말이 바로 소통이었다. 그러나 소통을 내세우고 한 일은 홍보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소통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교환하는 것이 중요한 반면 홍보는 상대를 자기 생각대로 설득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 정권 후반부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국민 소통을 하라고 장관들을 질타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대국민 소통방식은 개인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했다. 국회에 가기조차 꺼렸고 기자회견도 하기 싫어했으며 오로지 열심히 일하는 모습만 보여주려 했던 이명박 대통령식 '새마을소통', 연설 외에 토론의 모습은 극구 보이기 싫어했던 김영삼 대통령식 '웅변소통' 등. 차라리 지금 생각해보면 공포의 독재정치를 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와 장관들을 대동한 기자회견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비록 관제회견이기는 했지만 기자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고 모르면 해당 장관들에게 답변을 돌려 장관들을 쩔쩔매게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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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의 장 두려워 말고 적극 나서야

박근혜 대통령의 의사소통은 '깔끔떨기' 소통이 될까 우려된다. 조금만 말이 일어도 싫어하고 남이 먼저 아는 것도 싫고, 말썽 없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금은 인수위 시기라 이해하지만 취임을 하면 달라졌으면 한다. 박근혜 당선인은 좋은 커뮤니케이션 자질을 타고 났다. 천성이 부드럽고 섬세하며 표정이나 제스처가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문법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편이며 호소력도 있다. 이러한 좋은 자질을 살려 두려워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좋겠다. 완벽ㆍ결벽ㆍ밀봉ㆍ밀담 등이 주는 공통된 의미는 논쟁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 결과에서 보듯이 모든 정책 이슈는 이제 51대49의 판으로 가기 쉽다.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보다 자신 있게 말해줬으면 한다. 공론의 장에 뛰어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만족하는 깔끔한 인사나 정책이 어디 있겠는가. 박근혜 차기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더 많이 말하며 문제를 제기하면 인정도 하고 때로는 받아 치는 배짱을 보였으면 한다. 지나친 깔끔소통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크다. 우선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국민대통합의 화두는 대국민 소통에서 시작된다. 대국민 소통은 대통령 스스로 소통 애호자로 거듭나는 데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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