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기 징후를 보이고 있는 인도ㆍ인도네시아ㆍ브라질ㆍ터키 등 신흥 국가들은 실제로 지난 1990년대 말의 아시아 위기와 같은 상황에 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해당국 정부나 파워 집단이 어떤 정치력과 지도력을 발휘하느냐가 국가별 희비를 가를 것입니다."
미국 월가의 투자회사인 크레이그드릴캐피털의 앨버트 워닐로어(사진) 수석고문은 22일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는 신흥국의 금융위기 조짐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눈앞의 단기 리스크나 경제 데이터에만 관심을 갖고 가장 중요한 요소인 정치에는 주목하지 않는다"며 "각 신흥국 위기도 어떤 노선을 갖고 어느 정책을 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닐로어 고문은 신흥국의 금융불안을 촉발시킨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출구전략에 대해서는 "오는 9월에 시작하더라도 정말로 적은(really too small) 규모로 채권매입을 축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역시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계획 자체가 경제가 아닌 정치적ㆍ사회적 이슈라는 이유에서다.
그는 "내년 1월 퇴임하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은 개인적으로 양적완화 축소의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한다"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미국의 경기회복이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경제 외적인 요소가 출구전략을 재촉하는 만큼 연준이 양적완화 규모를 조심스럽게 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준의 출구전략을 실시할 경우 글로벌 경제 영향은.
▲간단하다. 미 장기금리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몇 년 전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현재의 금리 수준은 유지될 수 없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인 미국의 금리 인상은 유럽ㆍ일본ㆍ터키 등 선진국이나 후진국을 막론하고 대다수 국가의 금리 상승을 부를 것이다. 또 기축통화인 달러 가치가 올라간다. 금리가 낮은 미국에서 달러를 빌려 금리가 높은 브라질ㆍ인도 등 신흥국에 투자하다가 대규모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 투자가들의 태도도 바뀔 것이다.
-신흥국의 금융위기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일률적으로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말하기는 어렵다. 개별 국가의 충격은 정부 당국자가 어느 정도로 해외자본 유출을 제어하고 외국인투자가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가령 중국의 경우 정책 운용의 여지가 상대적으로 많다. 또 일반적으로 투자가들은 한 나라를 볼 때 단기적인 경제 리스크를 우려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 리스크에 더 주목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다른 신흥국에 비해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생각한다.
-최대 신흥국인 중국에 대해 위기론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섀도 뱅킹(그림자 금융)을 최대 위협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데.
▲중국의 섀도 뱅킹은 한마디로 은행 없는 은행 시스템이다. 정부가 예금을 간접적으로 보장하니 부실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사람들이 안심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인가 징후가 좋지 않다는 속삭임이 퍼지면 많은 사람들이 섀도 뱅킹에서 탈출할 것이고 몇 년 안에, 2018년 정도에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다만 중국은 성장률 등의 측면에서 다른 신흥국보다 사정이 괜찮다. 섀도 뱅킹으로 유동성 경색 문제가 터져도 중국 정부가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섀도 뱅킹은 그동안 중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한마디로 작은 리스크에 불과하다.
-중국 경제에 다른 위협요인은 없나.
▲개인적으로 중국의 위기는 경제요인이 아닌 정치요인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이나 경제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떤 노선을 가진 파워 집단이 어떤 정책을, 어떻게 집행하느냐가 중국의 미래에 중요하다. 인도ㆍ브라질ㆍ인도네시아ㆍ터키 등 다른 신흥국들도 마찬가지다.
-연준이 9월에 출구전략에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자신이 도입한 양적완화 조치에 대한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만큼) 오직 출구전략 시그널을 주고 시간표를 제시했다는 세간의 평가를 듣고 싶을 뿐이다. 경제적 이유보다는 개인적 목적 때문이다. 따라서 연준이 처음에는 정말로 조금씩 채권매입 규모를 줄인 뒤 앞으로도 천천히 줄여나갈 것으로 본다. 물가ㆍ성장률 등 그 어떤 경제지표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점진적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
▲경기회복은 막대한 통화완화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의 결과 정부 재정적자와 연준의 부채가 크게 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자가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군사비 등 예산 삭감, 세금 인상이 뒤따를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교육ㆍ헬스케어 등의 부문이 위축되고 있다. 연준의 통화정책도 앞으로 덜 완화적(less easy)으로 바뀔 것이다. 앞으로 몇 년간, 적어도 내년까지는 경기회복도 느려지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25~2.5%에 그칠 것으로 본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경제는 어떻게 보나.
▲단기적으로는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비관적으로 전망한다. 유로존이 처음 창립됐을 때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 등을 가진 여러 국가를 하나로 통합해 놓은 탓에 오래 가지 못할 것으로 봤다. 내부적으로 개와 고양이의 관계인 나라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예측하지 못한 측면은 한번 공동통화를 쓰기 시작하면 유로존을 완전히 해체하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즘 독일 경제가 회복되는 반면 프랑스는 물론 (네덜란드 등) 네덜란드 경제도 좋지 않은 사실을 볼 때 태생적인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아베노믹스는 어떻게 보고 있나.
▲공격적인 통화완화정책 등에서 보듯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시도하려 한다는 점에서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다. 은행 건전성도 아직 부족하지만 20년 전에 비해서는 상당히 개선됐다. 특히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해 소비세 인상을 제기한 게 인상적이다. 미국은 세금 인상 문제에 대해 전혀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대기업들이 해외로만 나가면서 내수 부문이 취약하다는 게 여전한 위험요인이라고 본다.
앨버트 워닐로어 크레이그드릴캐피털 수석고문은 무려 60여년 동안 뉴욕 금융계에서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해온 월가의 구루다. 그는 지난 1951~1962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에서 근무했고 국내 리서치 부문장으로도 활동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서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 월가의 전설적인 이코노미스트인 헨리 카우프만과 막역한 동료로 지냈고 지금도 교류하고 있다. 이후 1966년부터 22년 동안 시티뱅크에서 근무했고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턴의 수석이코노미스트로도 활동했다.
앨버트 워닐로어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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