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의 권유에 따라 법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참신한 인물. 「대쪽」이미지가 강한 그는 무엇보다도 「법과 제도가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특히 그는 김영삼 대통령과 애증이 교차되는 관계를 맺고 있다. 개혁정부를 표방한 김대통령이 문민정부 들어 그의 대쪽 이미지를 살려 감사원장에 발탁한데 이어 국무총리로 전격 기용하면서 전반적인 국정운영에 참여했다.
그는 그러나 총리시절인 지난 94년 4월 통일안보조정회의의 권한문제를 놓고 총리의 헌법상 권한인 「통할권」을 주장, 김대통령의 통치권에 도전하는 항명으로 비쳐져 1백27일만에 사표를 던지고 물러났다.
그후 그는 변호사로 지내다가 지난 4·11 총선을 앞둔 96년 1월 YS의 끈질긴 권유에 따라 「보수를 위한 개혁」을 기치로 신한국당 고문으로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한 셈이다.
그는 입당 직후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사실상 정치판에 뛰어들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정치개혁을 내세운 결과 신한국당 승리에 상당한 기여를 했으며 전국구 1번으로 제15대 국회에 진입했다.
대중적 지지기반이 탄탄한 그는 집권여당의 강력한 대권주자로 부상하면서 나름대로 대권캠프를 운영하는 등 대권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그는 대권고지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적지 않다.
지난 연말 노동법과 안기부법 날치기 처리때 소신없이 행동한 것에 대해 국민적 비판이 적지않은 상태다.
경기고와 서울대법대를 졸업하고 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45세때 최연소 대법원 판사를 지냈으며 부인 한인옥씨(59)와 2남1녀를 두고 있다.<황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