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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출시됐던 안심전환대출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하루 5조원씩 4일 만에 20조원을 채웠던 1차 판매와 달리 2차 판매 때는 신청규모가 20조원에 크게 못 미친 14조원(3일 오후3시 기준) 수준에 그쳤다. 요란하게 시작했지만 정작 막판에는 싱겁게 끝난 셈이다. 1차분 완판의 열기가 이어지기에는 원금을 매월 균등 상환하는 안심대출 구조상 가계의 기초체력이 받쳐주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1차분 신청 20조원까지 더하면 총 34조원가량의 대출이 고정금리,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로 전환돼 가계대출 구조개선 작업이 진전을 봤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정부가 앞장서 시장원칙을 깬 대출상품으로 금리체계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비판과 함께 형편이 어려운 서민이 수혜 대상에서 빠졌다는 형평성 논란이 불거진 점은 부담이다. 특히 안심전환대출 구조가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야 하는 것이어서 자칫 가계소비 여력 축소로 이어져 경기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안심전환대출 2차분 신청 규모가 한도인 20조원을 크게 밑도는 14조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2차 신청 마지막 날인 이날 신청 규모는 4조원 안팎에 달해 누적으로는 총 14조원가량을 기록했다. 이는 애초 계획했던 20조원의 70%에 그친 것으로 한도를 초과하지 않아 신청자 전원이 대출금리 인하 혜택을 보게 됐다. 신청 건수는 총 14만건(누적)으로 집계돼 1차분과 합치면 총 33만건에 달했다.
1차 신청 당시 기대 이상의 반응에 놀란 금융위는 이번에도 20조원을 초과하는 수요가 몰릴 경우 선착순이 아닌 주택가격이 낮은 신청자부터 대출을 바꿔 주겠다고 방침을 세웠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고객이 대출 전환 신청을 끝낸데다, 원금 상환 부담이 겹치면서 신청 규모가 한도를 밑돈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계 고위 관계자는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정 속에서 원금과 이자를 거치 기간 없이 한번에 갚는데 따른 부담감이 안심전환대출의 '완판' 행진을 저지한 요인"이라며 "하지만 안심전환대출이 기대 이상의 호응을 받았다는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고 진단했다.
안심전환대출로 가계 부채의 금리 변동 리스크는 덜었지만, 경기 회복에 짐이 될 것이란 지적도 적지 않다. 당장 안심전환대출 신청자들은 5월부터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도 갚아 나가야 한다. 전반적으로 가계가 긴축으로 돌아서 외식이나 쇼핑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안 그래도 소비 부족으로 경기가 어려운 마당에 국가 경제가 더 깊은 수렁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국은행도 주택금융공사의 자본금 출자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기에 취약한 자영업자나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발생해 빚 돌려 막기 등 2차 부실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실제 금융위가 1차 안심전환대출 차주를 분석한 결과, 차주의 평균소득은 4,100만원에 불과했다. 연체율 등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악화가 장기화될 경우 정책 효과가 반감되는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주택저당증권(MBS) 발행 폭주로 인한 부작용도 염려된다. 주로 단기채 보유를 선호하는 은행들이 안심전환대출로 장기채를 대거 사들여야 하는 탓이다. 벌써부터 시장에서는 단기채를 싹쓸이하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금리 변동이 커지고 있다. 또 은행이 강제로 떠안은 MBS 물량이 의무 보유 1년만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경우 장기금리 시장의 왜곡현상도 해결할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