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책임장관제 한다더니… 여전히 인사권 행사 못하는 장관들

핵심 실세·정치권이 좌지우지<br>청와대와 가까운 일부 기관장<br>장관까지 우습게 아는 촌극도

이명박 정부 때 장관까지 지낸 A인사가 밝힌 장관의 인사권한은 초라했다. 주되게 정책을 발표ㆍ집행하는 장관일 뿐 인사와 관련해서는 위만 쳐다보고 있어야 했다고 한다. A인사는 "힘이 있는 척해봐도 산하기관 등에서 더 빨리 알아채더라"고 말했다. 그는 "국장 이상 인사도 쉽지 않더라. 고작 할 수 있는 것이 사외이사 몇 명이었고 그나마 청와대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가능했다"고 푸념했다.

차관까지 거친 B인사도 "한 부처의 경우 장관과 산하 기관장이 대립하는 모습도 보였는데 정권 실세와 가까워 청와대의 힘을 믿는 기관장이 장관까지 우습게 아는 촌극이 펼쳐졌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부처가 비슷한 수모를 당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힘없는 장관들의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인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책임장관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인사권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겠다는 게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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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몇 이뤄졌던 굵직한 산하기관 인사만 놓고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모피아 독식만 하더라도 청와대는 신제윤 금융위원장 등 관료들을 화근으로 지목하지만 실제는 친박계의 핵심 실세나 현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전직 고위관료 혹은 정치권이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3~4명의 실세들이 경쟁하고 있다는 소문이 많았다"면서 "최근 일부 금융지주회사 회장을 선임하는 과정에 특히 그런 모습이 심하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때로는 실세들 간 경쟁하는데다 그 사이를 관료들이 비집고 들어가 함께 다투는 모습이 나타나자 청와대가 공공기관 수장 인선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해당 부처 장관이 기관장 인사를 은퇴관료들 중심으로 배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제동을 건 셈이다. 이래저래 장관의 인사권 실종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한 고위관계자는 "청와대도 책임장관제를 시행하려는 의지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당초 우려대로 기관장 자리에 관료가 쏠리는 흐름이 감지되자 장관 중심의 인사에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추진되던 산하기관장 인사가 무더기로 지연되면서 정책의 공백도 심하다. 정부의 한 인사담당자는 "이전 정부에서 임명한 공공기관장들을 어떻게 할지 명확한 지침이 없는 탓도 있지만 추천을 올린 인사들 이외 인사를 추가해 기관장 등의 후보 배수를 높이라는 지시 때문에 전반적으로 늦춰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야 한다는 취지도 있지만 판만 장관이 짤 뿐 실질적인 결정은 과거 정부 때처럼 청와대가 하겠다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이때문에 일각에서는 아예 관련 법을 개정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현행 국가공무원법에도 5급 이상 공무원에 대한 임용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으며 이를 장관에게 위임하도록 돼 있다. 역으로 위임하지 않고 직접 청와대가 임용할 수 있는 만큼 장관이 할 수 있는 인사의 폭을 법으로 정하자는 취지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제한적이라도 인사권에 대한 가르마를 타고 가는 것도 장관의 권한을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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