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천에서 20년 넘게 자동차부품업체를 운영해온 A대표는 최근 고민이 늘었다. 이제 환갑도 넘어 경영승계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데 교사가 된 아들은 제조업에 관심이 없다. 아직은 거뜬하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규 투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2. 주물업체 대표 B씨는 대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회사에 과장으로 취직시킨 뒤 갈등이 잦아졌다. 일하는 방식과 태도가 번번히 마음에 들지 않다 보니 대화도 전보다 줄었다. 그는 후임자로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거나 직원 중에 뽑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고령화가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의 고령화는 고용창출ㆍ연구개발(R&D)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책이 시급하다.
IBK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CEO가 고령화된 기업의 매출액 대비R&D 비용은 0.80%으로 일반기업(1.36%)에 비해 떨어졌다. 고용증가율도 -0.0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일반 기업의 고용증가율은 2.47%다. 적절한 시기에 원활한 기업승계가 이뤄지는 것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자칫 제조업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철규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은 "과거 고도성장기를 이끌어온 창업 1세대들이 고령화되고 있어 청년창업이 늘지 않으면 성장동력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자체가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장기 전략 마련해야=중소기업 창업세대가 경영 일선에서 대거 은퇴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경영 공백 우려가 산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과거 과다한 상속세 부담 등이 애로사항이었다면 후임자가 없다는 게 또 다른 심각한 문제다. 아버지가 힘들게 '월화수목금금금'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자란 2세들은 같은 어려움을 반복하기를 꺼린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기업승계 전략을 마련하고 세대 간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조업 2세 경영자가 경영 승계를 기피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젊은 세대의 지속적인 유입으로 산업의 활력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장수 기업이 여럿 탄생할 수 있다.
또한 자녀에게 사업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는 식으로 CEO들의 인식전환도 요구된다. 백필규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후계자가 없으면 기업 내부에서 경영을 잘 할 사람을 키우거나 종업원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우리사주 형태로 전환하는 방향도 모색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중소기업 오너들도 지속적인 자기계발로 유명한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 겸 일본항공(JAL) 회장처럼 역량강화에 힘을 쏟고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여 현역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조언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그는 78세의 나이로 일본항공(JAL) 경영을 맡아 1년 만에 법정관리에서 벗어나게 했다.
◇생산직도 고령화 심화=CEO뿐 아니라 중소기업 생산직의 고령화 역시 심각한 문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 현장 기술직의 기능 승계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생산직으로 젊은 인력들이 유입되지 않아 기술전수가 이뤄지지 못하고 중소기업의 허리가 끊기는 것이다. 젊은층이 기피하면서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지만 이들은 잠시 머물다 떠나버린다.
마이스터고 학생들의 중소기업 취업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현재 마이스터고 졸업생들은 대기업 취업이 많은 편이다. 따라서 우수한 인력이 우량 중소기업으로 가서 기술창업 마이스터로 연결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비전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례로 중기 성공스토리를 많이 개발해 '중소기업이 기회'라는 마인드를 심어줄 필요가 있다.
태원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 경력 가산제 등 미스매칭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만 의무적으로 갈 수는 없는 만큼 일자리 자체가 매력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퇴직전문가 활용도 한 방편=퇴직전문가들의 중소기업 재취업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를 위해서는 조기에 경력개발 플랜에 참여하는 문화 조성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에 비해 중ㆍ고령자의 직업훈련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25~64세 인구의 직업훈련 참가 비율을 보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이 40.8%인데 반해 우리는 30.5%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40세 이상이 됐을 때 경력개발 프로그램에 들어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다수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야 뒤늦게 찾아보기 일쑤다. 대기업에서 퇴직 이후 관리제도를 시행하는 곳은 포스코(그린 라이프) 등 몇 군데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 교육을 받는다면 '자신이 해고되겠다'고 해석되기 쉽다. 그렇다 보니 당사자 입장에서는 체감도 되지 않고 실질적으로 취업으로 연결이 안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손유미 직업능력개발원 박사는 "현재는 학습휴가제도 등 제2의 직업을 구하기 위해 미리 대비하는 시스템이 전혀 안 돼 있고 그저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달려 있을 뿐"이라며 "이로 인해 55~64세가 일자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취업 상담과 고용을 통합적으로 서비스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