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물갈이론 홍역… "정책혁신 우선" 주장도<br>野, 지도부 주도 통합전대 추진… 일부 반발
| 손학규(왼쪽) 민주당 대표와 문제인 혁신과통합 상임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던 중 활짝 웃고 있다. /고영권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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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정오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 식당가. 불과 1㎞가량 떨어진 두 식당에서는 쇄신과 혁신이라는 단어를 앞세운 별도의 여야 회동이 열렸다. 한 곳에서는 이른바 한나라당 쇄신파의 오찬회동이 열렸고 다른 곳에서는 야권 대통합 논의를 위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혁신과통합 상임대표의 만남이 있었다.
여야 모두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확인된 정당정치 공멸의 길을 벗어나기 위해 '쇄신'이라는 단어를 꺼내든 모양새지만 속내를 보면 내년도 총선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인들의 복잡한 수싸움이 읽혀진다. 이제 바야흐로 여의도 정치판에는 내년 총선을 앞둔 본격적인 공천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쏘아진 것이다.
◇한나라, '물갈이론' 제기 속 공천전쟁 본격화=한나라당은 이날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쇄신방안으로 '물갈이론'이 제기되는 것을 두고 하루 종일 홍역을 앓았다. 특히 고령 의원과 영남 물갈이 등의 내용이 담긴 여의도연구소 내부문건이 유출된 것과 관련해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졌다. 총선 때마다 '쇄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공천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유승민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여의도연구소는 공천기준을 만드는 곳이 아니다"라며 "연령과 지역과 선수, 이런 것이 공천기준이 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공천을 둘러싼 대선주자 간 이해관계도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정몽준 전 대표와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최근 대대적인 물갈이 공천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달리 박근혜 전 대표는 "순서가 맞지 않다. 지금은 맞지 않는 이야기"라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것.
이와 관련해 당내 쇄신파 의원들은 이날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오찬회동을 한 뒤 공천 물갈이보다 정책혁신이 우선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박 전 대표의 인식과 같은 것이어서 향후 친박계와의 연대 가능성이 예측된다.
◇민주당은 '통합전대' 제안으로 공천전쟁 시작=민주당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범야권에 다음달 17일 통합전대 제안을 시작으로 공천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문 상임대표를 만나기 전 손 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역사와 정신 말고는 다 바꾸겠다는 특단의 결심을 하고 통합논의에 임하겠다"며 "(단독 전당대회 없는) 통합 전당대회를 다음달 17일까지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다시 한번 확인한다"고 말했다. 전날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을 중심으로 한 '단독 전대 후 통합 논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한 셈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이어진 비공개회의를 통해 다음달 17일 원샷 통합전대를 범야권 측에 제안하기로 했다.
곧이어 문 대표와 만난 손 대표는 민주당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설명하고 범야권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에 속도를 내기로 합의했다. 특히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진보정당과 시민사회ㆍ노동단체 등을 포함한 '대표자 연석회의'를 개최하기로 의견을 같이 했다. 이를 통해 통합추진기구를 만든 뒤 ▦통합전대 방식 ▦지도부 구성 ▦내년도 선거 공천기준 등 세부 사항에 대해 합의를 이뤄내자는 게 민주당 측 제안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의원은 "통합기구나 연석회의 등을 통해 통합안이 논의ㆍ발표돼야 (개별세력 간 이해다툼 등의) 비효율을 없앨 수 있다는 데 문 대표와 손 대표의 뜻이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통합논의 움직임에 의구심을 갖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특히 민주당 내 향후 전대 후보군을 중심으로 손 대표 등 현지도부 주도의 통합논의 자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다음달 18일 임기만료를 앞둔 손 대표가 통합논의를 주도하는 것은 내년에 있을 총선에서 공천권 등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조경태 민주당 의원은 "말년병장(손학규)가 내무반 규칙(통합논의)을 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며 "본인이 계속 정치적 기득권이나 공천권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범야권 통합을 위해 통합전대라는 칼을 빼든 민주당 지도부에는 범야권 전체의 이해관계 조정에 앞서 당내 공천전쟁에서의 주도권 싸움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는 과제가 놓인 셈이다. 여야 모두 공천전쟁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