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산일반

[월세시대, 스무딩 오퍼레이션 전략짜라] <상> 중산층 흔드는 월세

치솟는 전셋값에 월세전환 '울며겨자먹기'… 월소득 ⅓이 주거비로

여유자금·대출여력 없는 서민 허리띠 더 졸라매

종잣돈 마련 기회마저 박탈… 사회 양극화 심화

전세의 월세 전환이 급격하게 이뤄지면서 주거비용 부담이 늘어나면서 중산층까지 ''렌트푸어''의 위기에 처하고 있다. 서울 잠실의 한 중개업소 입구에 아파트 전월세 매물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이호재기자



#수도권에 2억원짜리 전세를 살고 있는 중소기업 차장 A씨(40)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보증금을 3,000만원 올리는 대신 매달 20만원씩 월세를 달라는 것. 처음에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고 했지만 인근에서 비슷한 가격의 전세를 구하기 쉽지가 않은데다 매물 대부분이 월세여서 결국 집주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막상 월세를 내기로 했지만 가뜩이나 살림이 빠듯한 그는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내와 함께 아무리 가계부를 들여다봐도 줄일 부분이 없었다. 내년이면 딸아이도 초등학교 입학을 하는 탓에 월세를 내려면 생활비를 더 줄일 수밖에 없다.

A씨는 "당분간은 내 용돈을 줄이거나 외식이나 여행 같은 걸 줄일 수밖에 없겠다"며 "월세가 더 오르면 저축이나 보험이라도 깨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서울 중계동의 전용 84㎡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는 B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2년 전 3억4,000만원이었던 전세보증금을 4억원으로 6,000만원 올려주든지 월세를 30만원씩 내는 보증부월세로 전환해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기존 전세대출이 1억원 정도 있어 추가 대출을 받기가 부담스러웠던 김씨는 결국 월세 30만원을 더 내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했다. B씨 가족은 앞으로 매년 360만원에 달하는 월세를 내야 하는 탓에 씀씀이를 줄여야 할 판이다.

"매물이 잘 안 빠진다고 얘기를 해봐야 소용없어요. 무조건 월세를 놓겠다는데요."(서울 잠실동 A공인 관계자)

전세는 씨가 말랐는데 월세는 넘쳐난다. 요즘 웬만한 서울시내 아파트 단지라면 예외 없이 공통적인 현상이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주택 임대차 시장도 양극화하는 모습이다. 치솟는 전세보증금을 여유자금이나 은행 대출 등으로 감당할 수 있는 계층은 계속 전세로 눌러앉는 반면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세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월세로 이동하고 있다. 절대다수의 세입자들이 월세보다 비용부담이 적은 전세를 선호하지만 자금 여력에 따라 전세 잔류 및 월세 전환이 결정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세시장에서 밀려나 월세로 옮겨간 서민들은 당장 크게 늘어난 주거비 부담에 걱정이 태산이다.


◇서민 부담만 늘리는 '임대차 구조 변화'=경제적 취약계층이 월세로 내몰리는 이유는 전세물건이 크게 줄어들면서 전셋값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9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3억1,341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66만원(9.3%) 상승했고 2년 전에 비해서는 4,986만원이나 올랐다. 이 같은 전셋값 급등에는 최근 가속화한 저금리 기조와 집값 상승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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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을 보유해 세를 놓은 집주인 입장에서는 시중금리가 계속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받아봤자 돈을 굴릴 데가 마땅치 않다. 시중은행의 예금금리가 2% 초반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맡겨봤자 물가상승률과 세금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지경이다.

또 과거 집값 급등기에는 전세보증금을 주택 구입 자금으로 활용해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에는 급격한 시세상승 기대감이 사라진 지 오래다. 따라서 집주인들이 전세매물을 거둬들이고 이를 월세로 전환하는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반면 대다수 서민은 등 떠밀리듯 전세에서 월세로 이동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체 월세거래에서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보증금 1,000만원 이하 거래의 비중은 지난 2011년 23.9%에서 올해 26.8%로 높아졌고 고액전세에서 보증부월세로 전환한 보증금 1억원 이상 월세 비중은 같은 기간 4.6%에서 7.0%로 상승했다.

◇소비심리에도 악영향=이 같은 전세의 급격한 월세 전환은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을 크게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2012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전체 임차가구의 소득 대비 월세 비중(RIR)은 26.4%인 반면 소득 1~4분위 저소득층은 이 비중이 33.6%로 훨씬 높다. 월세로 밀려난 저소득층은 한 달 소득의 3분의1가량을 월세를 내는 데 써야 한다는 의미다.

월세 전환에 따른 가처분소득 감소는 내수회복에도 악영향을 준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전세의 빠른 월세 전환으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들면서 젊은 층은 내 집 마련을 위한 종잣돈을 모을 기회를 박탈당하고 이미 높은 사교육비 부담을 안고 있는 중장년층은 현재보다 소비를 줄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월세 가구는 전세에 비해 많은 임대료를 부담하는데도 주거 수준은 더 열악하다는 점도 문제다. 전세의 월세 전환이 수도권보다 지방, 아파트보다 다가구·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에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다. 8월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거래는 2만3,463건으로 월세거래(9,774건)의 두 배가 넘는 반면 지방 비아파트의 경우 월세가 전세보다 700건가량 많은 역전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소형 저가 주택을 중심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이 이뤄지고 있어 월세화가 빨라질수록 저소득층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게 된다"며 "또 월세 전환 가속화는 서민들의 자산축적 기회를 앗아가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붕괴시키면서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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