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브레턴우즈 3.0시대 열리나] 1944년 달러 매개 금본위제 수립… 닉슨 불태환 선언후 2.0시대 돌입

■ 브레턴우즈의 역사

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 브레턴우즈의 마운트워싱턴호텔에서 44개국 대표가 새로운 통화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가운데 영국 대표로 참석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왼쪽 두번째)가 연설하고 있다. /출처=CFS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지난 1941년, 영국은 20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에게 SOS를 쳤다.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글로벌 금융질서를 주무르는 사태를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고심 끝에 세계의 중앙은행인 결제동맹(Clearing Union)을 세워 회원국들에 '방코르(Bancor)'라는 회계단위, 일종의 초국적 통화를 쓰게 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1944년 7월 주요 44개국 대표들이 전후 경제질서를 논의하기 위해 미국 뉴햄프셔주의 휴양 도시인 브레턴우즈로 몰려들었다. 박테리아성 심내막염으로 고생하던 케인스는 아픈 몸을 이끌고 심혈을 다해 단일 기축통화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협상단을 이끄는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똑똑한데다 노련했고 달러 패권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결국 그해 7월22일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을 두 축으로 한 브레턴우즈 체제가 출범했다. 미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삼고 다른 주요 통화들은 달러에 대해 고정환율제를 유지하되 미국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했다. 달러에 연동된 금본위제인 셈이다. 미국 달러가 금을 대신할 기축통화가 되면서 미국은 무역적자를 걱정하지 않고 해외 상품을 흥청망청 수입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됐다. 본격적인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작이었다.

관련기사



하지만 금공급이 제한적인 가운데 유럽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미국 무역적자가 급증하면서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됐다. 더구나 금투기까지 극성을 부리며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자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달러화 금태환 정지 조치를 취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27년 만에 막을 내리며 신브레턴우즈 체제에 들어선 셈이다.

그해 12월 영국·프랑스 등 10개국 대표는 미 스미스소니언박물관에 모여 금 1온스당 가격을 38달러에 재조정했다. 스미소니언 체제도 미봉책에 불과한 탓에 1973년 달러화는 제2차 평가절하로 무너졌고 우여곡절 끝에 주요국들은 1976년 자메이카 수도 킹스턴에 모여 변동환율제 실시를 골자로 한 '킹스턴 체제'를 출범시켰다. 미국으로서는 금교환 부담도 없이 마음대로 달러를 찍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의 막대한 경상적자와 중국 등 신흥국의 경상흑자로 대비되는 지역 간 불균형 현상, 이른바 글로벌 임밸런스(global imbalance) 심화로 이어지며 주기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을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단일 기축통화의 구조적 모순이 누적된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게다가 미국의 천문학적인 경상적자, 미 정치권의 이전투구에 따른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등으로 달러화 신뢰가 하락하면서 대안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주요20개국(G20) 정상이 영국과 프랑스의 주도로 브레턴우즈 체제 대체, 초국가적 금융감독기구 창설 등을 논의한 게 단적인 사례다. 2010년에는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가 "1971년 시작된 브레턴우즈 2.0 체제의 대안으로 달러·유로·엔·파운드·위안화 등 주요 5개국 통화를 금가치에 연동시키는 변형된 금본위제를 채택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