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독일 정부 간의 날 선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의 시리아 공습 여부, 미 국가안보국(NSA)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 도청 의혹 파문 등을 놓고 사사건건 갈등을 빚더니 이번에는 독일의 수출주도형 경제 모델을 두고 또다시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독일 경제부는 성명을 통해 전날 미 재무부가 의회에 제출한 '주요국 경제ㆍ환율정책' 반기보고서에서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물론 세계 경제에도 피해를 주고 있다"고 비판한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정면 반박했다.
독일 경제부는 "경상흑자는 독일 경제와 제품이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유로존이나 세계 경제에 전혀 걱정거리가 아니다"라며 "독일에 개선이 필요한 불균형 현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나아가 메르켈 총리의 측근이자 현 집권당인 기독사회민주당(CDU)의 미카엘 아미스타 의원은 "막대한 미국의 정부 부채가 글로벌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역공을 가했다.
전날 미 재무부 보고서는 "독일의 무기력한 내수성장과 과도한 수출의존도 때문에 글로벌 경제가 디플레이션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재무부 보고서가 중국 위안화 저평가 문제 등과 똑같은 비중으로 독일 경제정책을 강력히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미국과 독일이 세계 경제 주도권을 놓고 갈등양상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분석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은 유로존의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이 수출로 해외 돈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그리스 등 유럽 재정위기국은 물론 세계 경제까지 내수둔화로 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에 달하는 무역적자의 주범으로 중국에 이어 독일을 꼽고 있다. 독일이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10% 정도 저평가된 유로화 뒤에 숨어 막대한 경상흑자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무역흑자가 GDP 대비 2.5%로 떨어지고 일본은 무역적자를 기록한 반면 독일은 무역흑자가 6.9%에 달한다"며 "미국이 독일을 비판하는 것은 이 같은 무역판도 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그동안 누적된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반면 독일은 '희생양 찾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또 메르켈 정부는 시리아나 리비아 사태 때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전통적 우방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보다 중국과 러시아와의 협의를 더 중시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등 외교정책을 놓고도 갈등을 빚어왔다. 또 최근에는 메르켈 총리 도청 의혹에 항의해 미국 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FT 역시 이날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을 하나 꼽으라면 디폴트(채무불이행) 카드를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미 의회"라며 "이처럼 생각이 모자라는 행동은 앞으로 몇 달간 더 세계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어 "수출 드라이브를 건 오바마 행정부가 독일의 수출주도 경제를 비판하는 것은 질투 때문"이라며 "독일이 각종 유로존 구제기금에 낸 금액이 이미 독일의 한 해 예산규모라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